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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등반지

글: 정민디

 

“아 설레어라, 우리는 히말라야로 간다”

재미한인산악회 티벳-네팔 횡단 등반기 <1>
입력일자: 2009-12-25 (금)  
재미한인산악회(회장 배대관) 회원 18명은 지난 9월 중국을 통해 티벳과 네팔 횡단 등반을 실시했다. 이 등반은 히말라야 고봉 등정에 앞선 현장 파악을 위한 것으로 약 2주에 걸쳐 진행됐다.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신비의 산인 히말라야의 다양한 모습을 연재한다.



오래도록 갈망했던 산… 14박15일 원정길
티벳행 열차엔 중국인과는 다른얼굴의 사람들
낯선 이국풍경 즐기면서 기차는 밤새껏 달려



오랜 기다림이었다. 2007년도부터 계획했던 히말라야 원정이 2008년도에 티벳의 현지사정으로 무산됐던 것이 드디어 2009년에 이루어졌다. 재미한인산악회(회장 배대관·KAAC)의 산을 향한 열정은 계속됐다. 그동안 더 높고, 힘든 산을 오르고자 하는 정열은 국내·외 많은 등반을 가능하게 했다. 열심히 미국의 산에서 갈고 닦은 훈련을 바탕으로 8,000m급 3개봉 정찰로 등반 타당성을 검토한 후 3개봉 중 하나를 선택하여 도전을 하려함이 이번 원정대의 주된 목적이다.

원정대는 꼼꼼하게 일을 추진했다. 오랜 염원으로 갈망했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9월5일 오후 9시30분 북경 서역에서 티벳 라싸행 칭짱철도를 타고 가는 것이 이번 14박15일 대장정의 시발점이다.

우리 대원 18명은 인천공항 환승역에서 중국 북경행 오전 9시30분발 비행기를 탔다. 저녁기차 시간까지는 10시간 남짓 북경에서 머물러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을 처음 가보기 때문에 그 시간 또한 소중하게 보내고 싶었다. 북경 공항은 스산했다. 비슷한 얼굴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게 신기했다. 어떤 한국 여인은 잠깐 딸이 어디를 간 사이에 공항 검색대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짜증난 얼굴로 딸을 불러댔다. 공항을 나오니 깃발을 든 조선족 아가씨가 대형버스와 함께 대기하고 있다. 그 중국 동포 여행안내원은 북한과 경상도 억양을 섞은 듯한 말투로 중국과 북경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북경은 도시면적이 서울의 16배, 경기도의 1.5배나 되는 큰 도시로 인구는 2,200만 정도란다. 중국 국민들은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는 성격이고,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산다고 한다. 엄마를 빼고는 가짜가 많은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요즘 들어 가짜 상품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음식에 관한 한 물밑의 잠수함, 하늘의 비행기, 책상다리 걸상다리 빼놓고는 다 먹는다고 한다. 조선족 아가씨가 같은 한국 동족이라고 맘 놓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지금 중국은 건국 60주년을 맞이해 소요사태를 경계하고 있는 비상상태였다. 이런 비상체제에는 말 한 마디를 잘못 해도 구속되는 사태로 번진다고 한다. 공산당원 8,000만명만이 정치를 하고 일반 국민들은 전혀 관여할 수 없어 정부에 대해서는 모두들 무관심하다. 여러 가지 제약으로 단체행동을 허가해 주지 않아 우리 팀 기차표 사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여행사의 여러 명이 나누어서 기차표를 겨우 구입하였단다.

문을 연지 100년이나 되었다는 오리구이집에서 말로만 들었던 북경오리를 점심으로 먹고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으므로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당분간 자금성의 문을 굳게 잠가놓아 들어갈 수가 없어서 경상공원을 올라가 자금성을 내려다보아야 했다. 자금성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명과 청 왕조 때 지어진 세계 최대의 궁궐로 800채의 건물과 9,999개의 방으로 배치된 궁궐이다. 공원 위에서 내려다 본 궁궐은 반짝거리는 금색의 지붕이 보였고, 과연 큰 나라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다음엔 아시아의 별이라는 서태후의 여름 피서지 이화원으로 이동했다. 30만의 군대를 동원해서 수작업으로 파서 만든 호수 쿤밍호와 그 판 흙으로 만든 만수산을 뒤로하고 있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악녀가 현재는 북경의 효녀가 됐다고 한다. 당시 나라까지 망하게 한 그녀의 사치와 향락의 잔재들이 볼거리로 남아 돈벌이를 톡톡하게 하기 때문이다.

북경의 한국타운으로 가서 한국음식을 먹기로 하고 이동하는 중간에 대한민국 대사관을 지나는데 탈북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담을 높게 이중으로 다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듣고는 가슴이 아렸다.

북경 서역, 역사 앞은 이미 저물기 시작했다. 낮에 본 자금성 성문을 닮은 구조물로 건축 돼 있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원정대 짐이 많아 일반통로로는 통과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포터를 동원해 특별통로로 들어가야 한다. 역사에는 사과처럼 붉은 볼과 눈빛이 다정하게 보이는, 중국인과는 다른 생김새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티베트로 가는 라싸행 열차가 출발하는 역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북경에서 기차표를 여러 명이 나누어 사서 우리는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타게 됐다. 짐을 나누고 각자의 열차 객실을 찾아 가느라 우왕좌왕 정신없이 바빴다.

어찌어찌 자리를 잡고 보니 내가 탄 바로 옆 두 칸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사람들이 서 있는 입석 칸이었다. 입석 칸을 지나야 식당 칸이 나오고 나머지 일행들은 그 다음 칸에 나뉘어 타고 있었다.

여섯 명이 함께 쓰는 객실의 삼층으로 된 침대칸에서 피곤한 몸을 뉘였다. 다음 날 아침은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를 닦으려고 나섰는데 기차 안은 온통 잠옷 일색이었다. 하긴 침대가 있으니 호텔 같이 잠자는 곳이 맞긴 한데 여자들이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니 적응이 안 됐으나. 중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잠옷을 입고 다녔다.

밤새 어느 역에서 한 번 정차했었는지 입석 칸이 좀 널찍해져서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 칸에서 해후를 했다. 주문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북경에서 국적 불명의 이름인 ‘케니’라는 조선족 아가씨가 통역으로 같이 탄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나타나질 않았다. 같이 잤다는 대원 중 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멀미를 해 정신을 못 차린다고 한다.

통역이 없는 우리는 손짓 발짓 외에 다른 수는 없었다. 식당 관계자 중 누구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더 난감하다. 옆에 중국 사람들은 빵, 국수, 야채 볶음, 심지어 생선까지 시켜 먹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손짓으로 그것을 달라고 했다. 음식을 좀 먹겠구나 하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일행의 4개의 식탁에 생선 한 접시씩을 놓고 갔다. 밥 없는 생선을 먼저 먹을 수 없어 기다렸으나 또 다른 음식들 감감 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다시 물어보니 우리가 손짓으로 생선을 가리켜 그것만 가져다 준 것이라는 몸짓을 했다. 우리는 실소하며 밥, 빵, 야채 등을 일일이 가리켜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밥 먹는 중 김철웅 원정 대장님께서 한 말씀하신다. “나는 이렇게 잠옷 입은 여자들을 많이 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야.”


북쪽에서 바라본 자금성의 웅장한 모습. 엄청난 규모 때문에 처음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은 순간 방심했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티벳 횡단 등정에 나선 재미한인산악회 회원들이 베이징 공항에 도착해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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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행 ‘칭짱철도’ 2박3일을 달렸다

재미한인산악회
티벳-네팔 횡단 등반기 <2>
입력일자: 2010-01-01 (금)  
역사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길(路)도 진보한다. 금단의 땅, 은둔의 땅, 세계의 지붕이라는 수식이 낯설지 않은 땅을 기차가 관통했다. 서부 공정의 핵심적 숙원 사업으로 중국 정부가 추진해 온 티벳까지의 열차가 개통된 것은 2006년 7월1일의 일이다. 열차의 개통을 축하하는 축제의 물결이 한 여름의 중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티벳 망명 정부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가 ‘문화적 대학살’이라고까지 항변했지만 철로의 역사적 개통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원지대선 객실에 일제히 산소공급
숨이 가빠오자 일부 대원 고산증 호소
창밖 펼쳐진 설산·광활한 대륙 ‘장관’ 




북경에서 출발한 열차는 시안, 란저우, 시닝, 거얼무를 거쳐 티벳 주도 라싸까지 총 4,065킬로미터, 만리 길을 47시간28분만에 달리도록 설계됐다. 이 철도의 다른 애칭은 만리장철(萬里長鐵)이다. 가장 험난한 코스는 칭하이 성의 거얼무에서 라싸까지의 동토지대 1,142킬로미터. 평균 해발이 4,500미터나 되고 험준한 쿤룬산맥을 넘어야 하며 수많은 호수, 계곡을 관통해야 하는 이 마지막 구간의 철로 건설을 위해 중국 정부는 오랜 준비기간을 거쳤고, 330억달러 이상의 건설비와 연인원 수십만명의 인력을 동원해 완성했다. 

만년 동토 구간만 해도 550킬로미터나 되며, 5,072미터의 탕구라 고개를 지날 땐 빙하 층과 기차의 높이가 거의 같아지는 험한 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 철로를‘티엔루’(天路) 즉 ‘하늘 길’ 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수천 톤의 이 육중한 철마가 평균 4,500미터 티벳 고원을 등반하듯 올라 종단한다. 칭하이 성(靑海省)의 거얼무에 도착하면, 거기부터 라싸까지 이어지는 이 철도를, 중국 당국은 칭짱선(靑藏線)으로 부르고 있다.

티벳이 어떤 곳인가. 높기도 하거니와 쿤룬산맥, 탕그라산맥, 히말라야로 에워싸인 불모의 땅이다. 헬리콥터 조종 교본에도 비상시가 아니면 체류하지 말라고 했다는 아득한 높이의 땅덩어리. 동토 층인데, 그 곳을 쇳덩어리 기차가 달리는 거다. 그 계획을 처음 듣고 놀라운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것이 실현되었다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산소가 희박한 만큼, 인구 밀도도 희박한 그 곳에 철길을 놓은 중국의 속내야 이미 세계가 다 알고 있다. 혼곤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기차는 낯선 풍경 속을 달리고 있다. 희붐한 아침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모하비 사막만 지평선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이 곳 역시 그랬다. 다만 사막과는 다르게 창밖으로 질펀한 옥수수 밭이 끝 간 곳 없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경작 가능한 땅이 많으므로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먹거리는 넘쳐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를 보유하고 있다. 경작 가능한 땅으로는 세계 최고의 넓이다. 기절하듯 푹 잠자고 아침에 깨어나면 힘이 솟는 것처럼, 중국도 질곡의 역사를 뒤로하고 거듭 깨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진시 황릉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30분. 중간에 한번 정차한 후 꼬박 12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이 기차는 라싸까지 통과하는 각 성의 성(省)도 6개 도시만 정차한다. 그야말로 쾌속이라 할 수 있다. 성 하나는 한국 국토의 몇 배 크기를 가지고 있다.

허베이(河北)성 성도 스자좡(石家莊), 산시(陝西)성 성도 시안(西安), 간쑤(甘肅)성 성도 란저우(蘭州), 칭하이(靑海省)성 성도 시닝(西寧)과 거얼무(格爾木), 시짱자치구 나취(那曲) 등 5개 성 6개 역에만 정차하는 것이다.

2박3일은 가야 하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고도가 서서히 높아짐에 따라 대원들이 슬슬 여러 가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미국에서 3,000미터가 넘는 발디산 등에서 고소적응 훈련을 꾸준히 해 왔다. 그래도 멀미, 식욕 부진 등 닫힌 공간에서 오는 증상이 있었다. 한국에서 합류한 대원이 두통을 호소하며 많이 힘들어 하니 겁이 덜컥 났다. 기차에 상주하는 중국인 의사를 불러야 하는데 문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마침 우리 옆 칸에 타고 있는 젊은 여성이 미국인 무역회사에 다녀 영어를 곧잘 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남편이랑 라싸에 5박6일을 휴가를 보내러 간다는 ‘데이지’라는 여성을 통해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산소를 흡입하고, 자꾸 주위에서 고도를 알려주지 말고 물을 자주 마시게 하라고 했다. 심리적으로 고도가 높은 곳이라고 의식하면 더 심할 수 있단다. 그래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고도시계를 자주 본다. 

식당 칸 넓은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광활한 파노라마는 정말 장관이었다. 기차 길과 나란히 달리는 천장공로의 차들도 드문드문 보이고 호수도 보이고, 추수를 끝낸 볏단들도 보인다. 산 중턱에서 열심히 풀을 뜯는 양떼들, 고도가 높아지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야크들, 변화무쌍한 경치들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렇게도 고대했던 설산들도 저 멀리에서 위용을 드러낸다.

거얼무역에서는 해발 5,000미터가 넘는 탕구라라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다른 기관차를 연결시켜야 되기 때문에 20분 정도 정차를 했다. 희박한 산소 속을 달리게 설계된 미국제 고소기관차로 바뀌게 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기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역 구내를 산책했 다.

기차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숨이 가빠져오는 것을 신호로 만년 빙하에 덮인 탕구라 산맥의 연봉들이 다가왔다. 7시가 됐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다. 거리상으로 2시간 이상 시차를 두어야 하는 데도 중국 정부가 국가적 일체감을 갖게 하려고 광활한 대륙 전체를 통일 된 시간대로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진정한 하늘 길(天路)을 가게 될 것이다. 후진타오 말대로 ‘칭짱철도는 중국 철도사에 있어 위대한 업적일 뿐 아니라 세계 철도사의 기적’을, 눈으로 목격한다는 말일 터였다. 기차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강원도 정선선, 구절리 역의 스위치백을 생각했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후진하며 한 계단 오르는, 그런 오름을 계속 반복하며 티베트 고원을 오르는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역시 작은 나라에서 온 나그네의 상상이었다. 3량의 고소 기관차로 바꿔 단 우리 기차는, 직선으로 티벳 고원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어와 티벳어, 그리고 영어로 방송이 나왔다. 지금부터 산소를 공급한다는 말이다. 에어컨 있는 곳에서 슈-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자 밑에도 노즐 구멍이 있어 그 곳에서도 산소가 나온다. 그럼에도 고소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승무원은 고무튜브로 된 산소 호흡기를 나누어주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의자 아래, 혹은 곁에 있는 산소구멍에 그 튜브를 꼽고 콧구멍에 대는 것이다. 

기차는 나취에서 서서히 고도를 내리고 있다. 참고 자료로 산 중국 잡지에서 본 칭짱철도의 단면은 라싸를 향하여 줄 곳 내리막길이었다. 고도를 내리며 무수히 많은 양과 야크가 보이고, 티벳인들의 흙집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싸 강이 분명한 물줄기 양안의 곡저 평야에는 티벳인들의 주식인 짬바의 원료 ‘라이보리’가 추수를 앞두고 누렇게 익고 있었다. 

문성공주와 금성공주가 3년이 넘게 걸어왔던, 종착지 라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수필가 정민디>


티벳의 수도 라싸에 자리 잡은 포탈라 궁의 웅장한 모습.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하는 티벳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티벳으로 향하는 ‘칭짱철도’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악대원들. 50시간을 달려야 하는데다, 고지대를 지나기 때문에 산소공급 장비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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