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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등반지

글: 신영철회원

 

 

KKH의 경고..."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카라코함 하이웨이>






끝없는 사막 협곡 가로질러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폭후로 막히고 또 막히고...
차.도로, 운전사도 '인샬라'

문명은 진보하고 개발도상국은 발전한다. 파키스탄도 예전에 비하면 경제적 볼륨이 많이 커졌다. 따라서 물동량도 증가했다. 

이슬라마바드를 빠져 나온 KKH는 차량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전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한 중국과 연결된 KKH는, 파키스탄의 대동맥이며 젖줄이었다. 아직 뿌연 흙탕물 인더스 강도 만나지 못했고 해도 중천에 떠 있는데, 우리가 예견한 KKH 공포는 일찍 시작되었다. 
영국 식민지를 거친 탓인지 이곳 운전석은 반대편에 있었고 
역시 도로도 우측통행이었다. 

우리 운전기사는 미친 기사였다. 
아니 KKH를 달리는 모든 운전사들은 미치지 않으면 전진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앞지르기를 하면 꼭 정면충돌을 하러 마주 달리는 차를 탄 느낌이었다. 그러나 비명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모두 그렇게 하는데 우리 차만 정속 주행을 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미친 차 취급을 받을 것이다. 
뒤에 따르는 차들이 그렇게 놓아두지도 않을 것이며, 하- 세월 차 앞을 걷고 있는 낙타가 웃을 일이다. 
무엇보다 그리한다면 25시간을 예상한 주행거리는 몇 배쯤 늘어날 것이다. 
말 그대로 파키스탄 차량도, 도로도, 운전사도 인샬라였다. 

타콧(Thakot)이라는 도시를 지나 파인트리 숲이 늘씬한 고개를 넘어서 드디어 인더스 강을 만난다. 예전처럼 강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카라코람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강은 지금도 완전히 뿌연 탁류였고 역시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강 주변은 온통 어느 혹성처럼 황갈색 불모의 땅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모진 목숨인지 어쩌다 만나는 계곡의 푸른 나무들이 보이면 눈물겨운 삶을 살고 있을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 외엔 뜨거운 햇볕에 그을린 척박한 풍경이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이었다. 어떻게 이 인더스 강이 인류 4대 문명 발상지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까만 매연을 자랑스럽게 내품는 거북이걸음의 트럭들은 모두 요란한 치장을 했다. 트럭 뷰티샵은 미장원처럼 많았고 그중 몇 곳은 유명하여 가이드북인 ‘론니플래닛’에도 소개될 지경이다. 무슬림 경전인 코란에서 말하듯 술과 가무를 좋아하지 말라는 지침에 따라 이 나라 사람들의 감성이 다른 쪽으로 발달되었을까. 트럭마다 정교한 채색으로 화장한 트럭은 미인의 걸음처럼 아주 느리게 달렸다. 

그런 실없는 생각으로 애써 긴장을 풀려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가이드는 도시를 지날 때마다 커튼을 닫아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붉은 사원 후유증으로 혹시 이방인들에게 화풀이를 할지 모를 위험에서 차단시킨다는 이유였다. 음료수도 가이드가 나가서 사왔다. 로마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던가. 
우리는 착한 초등학교 학생처럼 가이드 말에 순종하는 순한 양이 되었다. 

너무 사실적으로 상식에 충실하여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득해졌다.
추락이 상상이 아니라 바로 한 바퀴 밖에 있다는 현실은, 온갖 상상을 자극한다. 추락하면 중상도 없다. 틀림없이 사망이다. 모험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곳에선 래프팅을 못할 정도로 물결은 거셌고, 협곡이었고, 깊었다. 

어둠이 짙어졌다. 운전사는 벌써 11시간째 노동을 하고 있다. 
혹시 졸고 있는가 운전사 살피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두 줄기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구절양장은 끝이 없었고,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앞을 살피는 운전사는 말 한마디 없다. 

낭가파르밧 산 분기점인 칠라스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두 시.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 있다. 
늦은 저녁인지 이른 아침인지 호텔의 식당에서 우린 짜파티를 먹고, 그 시간에 운전사는 한 숨 자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가 푹- 자고 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벌써부터 질리기 시작한 치킨 커리에, 모래알 씹는 기분으로 짜파티 방을 뜯어먹고 있는데, 잠을 자고 있어야 할 운전사가 나타났다. 
비가 오는 게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KKH가 폭우로 막혀 있다 며칠 만에 개통되었는데, 이 비가 다시 불안한 징조라는 것이다. 가득 시켜놓은 음식을 미련 없이 버리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운전사의 말은 맞았다. 산사태로 불통되었다 복구된 KKH 구간을 지나며 나는 인간 의지를 보았다. 

히말라야를 불도저로 몽땅 깎아내기 전엔 KKH는 완성된 도로가 아니었다. 
아니 완성이라는 게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도로였다. 그러나 중국 교역의 대동맥인 도로가 막혀 있다면 파키스탄은 빈사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중장비로, 인력으로, 막힌 도로를 뚫을 수밖에 없다. 
그건 도로와의 전쟁이었고, 그 상흔을 딛고 우리 차는 롤러코스터처럼 
전진하는 것이다. 
산이 흘린 급경사에 옆구리에, 
길을 뚫은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눈물 덩어리인지 모른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는 듯 여명이 밝아온다. 
굉장히 길었던 산사태 복구지역을 빠져나오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KKH와 헤어질 시간도 다 되었다. 
훈자 마을로 유명한 들머리 길기트와 스카루드의 갈림길. 
우리는 여기서 KKH를 버리고 인더스 본류를 충실히 따라 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강이 깎아낸 절벽 길은 계속될 것이고 스카루드에 도착하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드디어 시련이 닥쳤다. 
단단히 각오한 바는 있지만 당연하다는 듯 KKH는 통과의례를 요구했다. 
운전사 예감대로 계곡 물이 범람하여 길을 막아선 것이다. 차에서 내리니 고도를 올린 덕분인지 새벽 공기가 쌀쌀했다. 급류는 도로 하부를 침식시켜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어내었고 자갈은 언덕을 이루었다. 
우리 쪽과 건너편에 속속 차량들이 멈춰서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비는 그치고 있다. 우리는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를 보니 어깨를 들썩하며 한마디 한다. 인샬라 라고.

몇 시간이 지나자 눈에 띄게 물이 줄었다. 
용감한 지프 하나가 꽁지 빠지는 비명을 지르며 도강에 성공했다. 거기에 고무된 듯 우리 차도 물살에 뛰어들었고 무사히 건너섰다. 우린 통과의례가 끝난 것에 서로 축하를 했으나 그건 착각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번엔 자갈과 토사가 도로에 흘러내려 길을 막아섰다. 
차량은 양쪽으로 밀려 서있다. 
무조건 기다리는 수밖에 별 다른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한 명 두 명, 모이는 사람들이 어느 새 수십 명이 되었다. 
그들은 손으로 돌을 들어내고 다듬으며 인력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도 거들었다. 그 수밖에 없었으니까. 
몇 시간이 흐르자 평탄한 도로엔 언덕 자갈길이 생겼다. 
인간 의지의 승리라는 게 이런 건 아닐까. 

인샬라를 웅얼거리며 돌과 자갈을 들어 날랐다. 
문득 출발할 당시 우리의 슬로건이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라는 경구가 생각났다.


글.신영철, 사진 박재용
미주 한국일보 연재 1-11-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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