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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등반지

 

글: 신영철회원




- 절벽에 매달린 외길타고 아스꼴리로-






태양이 뜨겁게 내리 쪼이기 시작했고 언덕길을 돌아서니 드디어 스카루드 미루나무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격스러웠다. 이미 시간은 출발부터 총 30시간이 넘고 있다. 잠 한 숨 안자고 긴 길 달려온 채, 지금도 열심히 앞만 보고 운전을 하는 운전사가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 

스카루드 분지에 흐르는 인더스 강은 본래 진면목이라도 보이듯 굉장한 넓이의 하구언을 만들고, 실타래처럼 여러 갈래를 쳐 조용히 숨죽여 흐르고 있었다. 수량도 많이 작아졌다. 문득 이번 여정은 인더스 강 또 하나의 원류를 찾는 행정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길기트 갈림 길까지가 1막이었다면 거기서부터 이곳 스카루드까지가 2막인 셈이다. 이제 스카루드를 출발하여 인더스강의 지류이자 발토르 빙하에서 발원하는 부랄두 강을 만나면 제 3막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차는 드디어 스카루드 시내에 입성했다. 이 도시는 알프스 등반 기점이 되는 샤모니나 네팔의 남체와 같은 카라코람 히말라야의 등반 거점도시다. 스카루드 역시 밀려드는 문명 덕에 많이 커져 있었다. 시내 들머리 인더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는데 그 집 주인이 예전 처음 이곳에 묵었던 나를 기억하고 반긴다. 

여러 이유로 빨리 산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튿날 지프차를 불러 등반 깃점인 아스꼴리로 향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강행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과격파 무슬림을 만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 첫째고 빨리 조용한 빙하로 들어가 낯선 문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그 둘째다. 우리가 가려는 아스꼴리는 도로가 끝나는 곳인 동시에 마지막 인가가 있는 마을이다. 

스카루드를 관통하는 인더스 강과 헤어져 부랄두 강을 만났다. 세상 모든 길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강 따라 나 있는 법이다. 아스꼴리 마을 가는 길도 당연히 부랄두 강을따라 만들어져 있는데, 이건 숫제 길이 아니라 곡예를 위해 만들어놓은 청룡열차 길이었다. 가능한 강 따라 길을 만들고 절벽이 막히면 현수교를 만들어 우회하는 아슬아슬한 길. 일행 중 누군가 부랄두 강 이름을 빗대 거시기도 쪼그라진다고 웃긴다. 그러나 지프 짐칸에 짐과 함께 탄 포터들은 면역이 되어서 그런지 노래를 부른다. 

드디어 멀리 만년설을 쓴 설산이 보인다. 저 산을 왼쪽으로 넘으면 중국, 오른쪽으로 넘으면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가 있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참 멀리도 왔다는 생각이 든다. 차 두 대가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기우도 그렇지만 나보고 운전하라 하면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는 길이었다. 사륜구동은 필수고 이곳에선 몸으로 익힌 공식대로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타 지역 운전사들이 함부로 차를 몰 수 없는 구조였다. 자신만 알고 있는 지점에 차를 세우고 열 받은 엔진에 냉각수를 보충하는 포인트. 가파른 내리막길 중간에 잠깐 쉬어 후진 기어를 넣고 백을 한 후, 앞으로 쏠리는 그 관성으로 핸들을 꺾는 묘기. 모든 지프가 약속이나 한 대로 일본제인 랜드크루저라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백번 나았다. 

7시간 쯤 달리니 부랄두 강, 수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계곡 멀리 무지개가 떴다. 행운을 부른다는 길조다. 먼지 뽀얗게 뒤집어쓰는 행정은 이제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는다. 숨 막히는 먼지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포터들도 있는데.
아스꼴리 마을 푸른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암갈색 회색지대에 푸름이 있다면 거기엔 사람이 산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자연 그 자체다. 어떻게 이 험한 계곡 빗장을 열며 사람들이 아스꼴리로 이주했고 거주를 시작했을까. 문명과 거리가 먼 자급자족의 생활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그건 자연에 대한 목숨 건 투쟁일 수밖에 없다. 친친 산으로 쌓여 계곡만 빠끔히 열린 이런 변방 다랑 밭에 밀 심고 양치며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 한 일이다. 내 상념과는 상관없다는 듯 지프는 사륜구동 기어를 넣은 채 가파른 길을 기어오른다.


길이 아니라 곡예를 위해 만들어놓은 청룡열차같은 길을 지프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있다.

아스꼴리는 발토르 빙하 들머리답게 유일하게 녹색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등반대들을 위하여 버드나무 숲에 야영지를 만들어 놓았다. 얼굴 까맣게 그을린 채 하산한 원정대원들이 간간히 눈에 보인다. 얼굴은 허물이 벗겨져도 그들은 성취감으로 충만했고 그러므로 당당했다. 오히려 우리는 행색이 남루한 그들을 부러워한다. 우린 이제 시작이고 그들은 이미 끝난 행정이니까.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내가 만나야 할 한국 원정대들의 근황이 실감나게 전해진다. 

K2 베이스캠프엔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한국 원정대 두 팀이 있다. 
부산 팀과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산악인 오은선 팀이 그들이다. 그들은 한창 등반 중이라 했다. 브로드피크에 도전했던 고미영, 김재수씨는 등반에 성공했으며, 하산 캬라반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결국 우리를 만나게 되어 있다. 이제부터 길은 외길이고 믿을 건 두 다리밖에 없듯, 그들 역시 이 길을 걸어 내려올 테니까. 발토르 빙하를 에워싼 카라코람 히말라야 고봉을 넘어가지 못할진대, 모든 사람과 정보는 이 길로 통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제 3막이 시작될 것이다. 인더스 강의 원류인 발토르 빙하를 만날 테니까. 빙하는 장장 6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것이다. 발로르는 빙하 상단의 ‘콩고르디아’에서 Y자로 갈라진다. 왼쪽 K2로 가는 빙하는, 이 빙하를 처음 발견한 사람 이름을 따 ‘고드윈 오스틴’으로 불린다. 오른 쪽은 ‘어퍼 발토르’로서 8,000m급의 가셔브룸 1, 2봉 베이스캠프로 통한다. ‘검은 암석의 땅’을 의미하는 카라코람 산군은,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세계 2위봉 K2(8,611m) 브로드피크(8,047m) 가셔브롬 2(8,035m) 가셔브롬 1(8,068m) 등 히말라야 14좌 중 4개를 아우르고 있다. 물론 거기에 못 미치는 산들이 무수히 많은 이 곳은 산의 나라였다.

아스꼴리 첫 야영은 아주 좋았다. 전날 먹은 자축 소주 한 잔 덕분일까. 우리 짐에는 공항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술과 예비로 한 병이 더 있다. 그것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지만 음주는 해발 3,700m ‘빠유’가 끝이다. 고소에서 음주는 고소증을 불러일으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아니까. 

고도가 이미 3,000m를 넘어선 이 곳은 침낭의 따뜻함이 좋았고 새벽 신선한 공기 역시 달콤했다. 우리는 찌는 듯한 이슬라마바드 여름에서, 이제 가을로 계절을 거슬러온 것이다. 숨 막히는 이슬라마바드 더위에 투정을 부리던 시간이 언제였더라? 그러나 가을도 거슬러 곧 동토의 겨울로 접어들 것이다. 그때는 또 더위를 그리워하겠지. 이렇게 사람 마음은 수시로 바뀐다.



글 신영철·사진 박재용 

미주 한국일보 연재 1-18-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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