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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wpit Canyon



예로부터 우리 동양에서는 이 우주에서 으뜸가는 요소를 천지인 ( 天地人 ) , 하늘 땅 사람으로 보고 이를 삼재 ( 三才 )라는 말로 표현해 오고 있는데, 이곳 남가주의 산에 다니다보면 산불로 인해 초목들이 참혹하게 탄 것을 비교적 자주 보게 되고, 가끔씩은 인간에 의해 오래전에 세워졌던 구조물들이 수재로 유실되었거나 손괴되어 있는 모습들도 보게 되니, 그럴때는 우리의 이 새로운 삶의 터전인 남가주는 3( 三才 )에 의한 3( 三災 )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세상이 주지하는 것처럼 이 지역은 지각의 구조상 태평양판과 대륙판이 맞붙어 있는 까닭에, 땅에 의한, 지진이라는 지재( 地災 )가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둘째, 광활한 면적의 산악에 자생하는 산천초목들이, 유난히 건조한 날씨 속에서 바싹 말라있기 십상인 가운데, 사람에 의한 실화나 방화로 인한 대규모 산불이라는, 인재( 人災 )가 빈발한다.

셋째, 이따금 하늘로부터의 폭풍과 폭우가 몰아쳐 빚어지는, 홍수라는 천재( 天災 )가 발생한다.

 

이 세가지 재난중에 지진과 산불의 위험과 피해에 대한 인식은 두루 알려져 있다고 여겨지는데, 천재( 天災 )이면서 수재( 水災 )인 홍수에 대한 인식은, 다소 간과되거나 미흡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남가주는 평소에 비가 많이 부족한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산에 다니며 보게되는 피해의 흔적이나 사실의 기록을 보면 결코 홍수의 피해가  만만치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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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전인 1938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약간은 쌀쌀했던 2월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는 27일이었다. 이웃한 태평양에서 발생한 폭풍이 LA지역으로 불어오기 시작한다. 북쪽에 병풍으로 둘러있는 샌게브리얼 산맥에 부딪쳐 동쪽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이틀뒤인 31일 오전 6시까지 집중호우가 내린다.

강우량이 4.4인치(110mm)를 기록한 많은 비였지만 국지적인 소소한 피해가 보고됐을 뿐으로, 동터오는 아침과 함께 이제 평상의 날씨를 회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5시간이 지난 밤 9시가 가까와질 무렵에 다시한번 폭풍이 몰려온다.

그런데 이번의 폭풍은 시체말로 장난이 아니다. 일찍이 이 지역에선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는 엄청난 폭우로, 마치 하늘이 물을 동이로 퍼붓는 듯 했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많은 지역이 침수되었다. 이틀간에 걸친 강우량이 산악지역에는 32인치(810mm)를 기록했다고 하며, 113명 이상의 인명이 사망실종됐고, 7,000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 또는 유실되었다.

 

다행히 LA카운티는 San Gabriel Dam Big Tujunga Dam 등이 건설되어 있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오렌지, 샌버나디노, 리버사이드를 흘러가는 Santa Ana River는 이렇다 할만한 Dam이 없어, 아무런 통제없이, 미시시피강의 유수량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량인, 초당 9,000입방미터의 물이 흘러 내리며 범람하여. 낮은 지역은 거의 호수로 변하고, Santa Ana Anaheim 1.8m 깊이로 물에 잠기게 된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그 당시 이 지역은 주로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었기에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같이 도시화되어 있었다면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Icehouse Canyon의 얼음창고와 기타 건물들, Echo Mtn의 관광철도와 시설들,     Azusa 뒤쪽에 있는 San Gabriel River East Fork 를 따라 2 Hwy Vincent Gap 까지 연결하려던 도로와 교량들, Crystal Lake 의 서쪽으로 Islip Saddle 까지 연결되어 있던 도로 등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이때 휩쓸려 나갔는데, 이는 몇가지 내가 아는 사례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결국 우리 남가주에는 대체로 강우량이 적지만, 이렇듯 한꺼번에 퍼부어대는 하늘로부터의 엄청난 재해가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되고, 산자락과 계곡의 밑에는 크고 작은 홍수피해방지용 댐들이 적잖이 건설되어 있게 된 것이다.

 

“ 내 이름은 Mal Packer, 몬로비아캐년 팍의 레인저이자, Sawpit Dam의 관리인이다.

아마도 오늘이 33일일 것이다. 물론 1938년이다. 지난 4~5일은 제대로 눈한번 붙이지 못해 날짜까지 아리송하다.

며칠간 밤낮으로 유례가 없이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폭우로 하여, 댐으로 밀려드는 엄청난 량의 물을 상대로, 사나운 물줄기가 댐을 흘러 넘쳐 통제불능이 되지 않도록,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을 방출하여 계곡아래의 Monrovia Duarte가 휩쓸려 나가는 일이 없도록, 계곡을 휩쓸며 밀려오는 엄청난 량의 퇴적물로 댐의 배수구가 막혀 댐이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 왔다.

내가 맡은 이 일이 댐 아래에 있는 세 아이를 포함한 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전 도시민들의 생사에 직결된 일임이 명약관화하니 어찌 촌각인들 방심할 수 있었겠는가!

언제 그칠지 모르는 밑빠진 하늘을 보며 두려움에 떨었지만, 어쩌겠는가, 진인사하고 대천명하는 수 밖에! 다행히 이대로 더 이상 비가 오지 않는다면, 아래 도시의 간선도로들도 이미 침수되었지만, 최악의 인명피해는 막아졌기에, 아직은 불안한 가운데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한다.

태어난 이래 가장 힘들었던 요며칠이었지만, 또 내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사명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위의 상황은 그 당시 다섯 살의 유치원생으로 Monrovia에 살고 있던 Bob Packer가 대홍수를 겪을 때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서술해 본 것이다.

이미 1927년에 준공되어 있었던, Sawpit Dam에 얽힌 얘기인데, 1938년의 대홍수때 제 몫을 한번 제대로 해낸 셈이겠다.

오늘 안내코자 하는 Sawpit Canyon 에 있으며, 이 댐을 경유하며 Ben Overturff Trail을 따라 Deer Park 까지 왕복하면, 거리 7마일에, 순등반고도 1620‘의 전혀 힘들지 않은 산행이 되며, 4~5시간이 걸린다.

 

이 계곡의 이름 Sawpit이란 ‘톱 구덩이’쯤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 한데, 1771년에 설립된 미션 ‘ San Gabriel Arcangel' 에서 쓸 목재를 톱으로 켜내는 장소로 썼던 데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대홍수 이후에 오랫동안 묵혀져 있다가 1990년에야, DMV에서 Personalized License Plate를 통해 조성한 기금을 몬로비아시에서 받아, 지금의 등산로를 재건하여 일반에게 개방한 것이란다. 그래선지 숲이 매우 울창하고 사람의 자취가 많지 않아 호젓한 느낌이 든다.

 

사시사철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는데, Live Oak, Bay Laurel, Toyon, Laurel Sumac 등의 수목들이 지금 한창 가을의 정취를 물씬 자아내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 가는 길 >

 

Fwy 210 Myrtle Ave Exit 으로 나와 북쪽(산쪽)으로 약 1마일을 가면 Foothill Blvd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0.25마일을 가서 Canyon Blvd에서 좌회전을 한다. 이 길이 약 0.75마일을 가면 약간 오른쪽으로 굽어지는데, 이 길을 따라 1마일을 더 가면 Monrovia Canyon Park의 입구가 된다. 길 중앙에 Kiosk가 있어 여기에서 공원안내를 해주고, 주차요금( $5 )도 받는다. 주차료를 아낄 겸, 계곡을 끼고 나있는 아름다운 길을 더 많이 걸을 겸, 미리 1마일쯤 전의 주차가능한 길에다 차를 세우고 공원까지 걸어가는 것도 좋겠다.

LA 한인타운에서 공원입구까지는 대략 24마일의 거리이다.

 

< 등산 코스 >

 

Kiosk를 지나 200m쯤 들어간 곳에 오른쪽으로 나있는 Monrovia Canyon Fire Road를 따라 올라가는 것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초입의 Creek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넓은 다리를 건너면 잘 포장된 길이 왼쪽으로 휘어진 후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Sawpit Dam까지는 대략 10분이면 닿는데 이 초반구간이 약간 경사가 급한 편이다. 원래 이 댐은 홍수대비와 식수원 확보의 목적에서 건설되었으나, 지진에 의해 댐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되었기 때문에, 1969년부터는 저수는 하지 않고 단지 유사시의 홍수대비용으로만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길의 경사가 훨씬 완만해진다. 1.3마일 지점에 이르면 왼편에 Trask Boy Scout Reservation이라는 표지가 있는 시설의 입구가 있다. 여기까지가 포장도로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소방도로가 왼쪽으로 꺾이는데, 길 왼쪽에 1m정도의 높이로 자잘한 돌을 쌓아 만든 두 개의 돌기둥이 서있다. 편도 2마일의 Ben Overturff Trail 의 시작점이다.

 

약간 내리막인 트레일로 들어선다. 불과 1~2분 사이에 Sawpit Canyon 의 짙은 Live Oak의 녹음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맑은 물이 흐르는 Sawpit Creek을 건너며 우거진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시원한 터널도 지난다.

 

0.5마일쯤을 지나면 Meadow라고 불리는 곳에 이른다.

왼쪽으로 15m쯤의 높이의 딱 잘라진 절벽이 솟아있고 그 능선위에 나무들이 실루엣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아마도 이 곳은 원래 온전했었을 구릉이 대홍수때 거센 물살에 그 허리가 잘려나감으로써 평지가 된 곳 일 듯하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한동안 걷다보면 높은 등성이를 지나는 곳에 이른다. Razorback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왼쪽으로는 시야가 툭 터져 있어 멀리 몬로비아산의 줄기들을 볼 수 있다.

 

이 구간이 끝나갈 무렵이면 Sawpit Canyon 이 다하고, 높지않은 고개를 넘어가게 되는데, 등산로의 경사를 완화시키려한 것인지 마치 터널을 뚫듯 산줄기를 파낸 것 같은 지점을 지난다. The Gap 이라고 호칭되는 곳인데, 평탄한 등산로를 만들기 위해 산줄기를 잘라낸 아주 이례적인 흔적이란다.

 

Gap 을 지나 10분정도를 가면 Live Oak 이 주위가 어둑어둑할 정도로 우거져 있는 가운데 자연적으로 교량처럼 돋아져 있는 흙길 아래로 샘물이 흘러내리며 졸졸졸 소리를 내는 Twin Springs Canyon에 이르게 된다.

물이 흐르고 있는 Twin Springs Creek을 건너면, 길이 좌우로 갈라지는데 표지판도 있다. 우리가 가려는 Deer Park 은 왼쪽길이다.

 

버들잎을 닮은 California Bay Laurel 의 노오란 낙엽들이, 나무뿌리와 돌들 사이로 나있는 숲속 길을 온통 뒤덮고 있어 향기로운 가을의 정취에 옷이 젖어드는 듯 하다.

 

다시 꼬불꼬불 지그재그 숲길이 이어진다. 다소 미안한 마음으로, 지천으로 깔려있는 Live Oak Bay Laurel의 낙엽들을 밟으며 가노라면, 높지 않은 능선을 하나 더 넘게 된다. Twin Springs Creek Junction 을 떠난지 대략 20분쯤이 되었을때 다시 개울( Deer Park Creek )에 이르게 되는데 좌우로 길이 나뉜다.

 

좌측으로 완만한 경사길을 0.1마일쯤 올라가면, 키큰 나무들과 바위들 옆으로 풀밭 속에 누워있는 옛 돌집의 폐허에 이르게 된다. 오늘의 목적지인 Deer Park Cabin이 있던 자리다.

 

LA카운티 Deputy Sheriff를 역임했던 Monrovia Contractor, Ben Overturff 1907년에 사슴을 사냥하다가 이 곳 Deer Park에 발길이 닿았는데,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당국으로부터 땅을 리스하여 집을 짓게 된다. 나중엔 돌집을 짓고 등산객을 상대로 숙박을 제공하는 Lodge로 운영하여, 특히 1920년대엔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인기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주말에 숙식을 하는 비용으로 25센트를 받았다니,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라 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즉 불시에 닥친 1938년의 대홍수에 거의 모든 등산로가 멸실됨으로써, Lodge 의 기능도 끝이 나고, Ben과 그 가족만이 살거나 또는 그 가족들이 주말에만 이용하는 시설로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48년에 버려졌고, 1958년에 Forest Service에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철거했다고 한다.

 

이 폐허의 옆에는 이 곳의 옛 영광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 있는데, Clark Gable을 닮아 뵈는 Ben, 레몬파이를 잘 만들어 아주 인기가 있었다는 부인 Bertha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어, 거의 100년에 가까운 그 옛날에, 산이 좋아 산에서 살았고, 산이 좋아 산을 찾았던 산사람들의 요산요수의 삶을 생생히 느껴 볼 수 있다.

 

하산을 할 때는 처음으로 나오는 갈림길에서 그냥 직진하면 곧바로 소방도로에 이르게 되니, 이 길을 따라 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거리는 0.2마일이 길어지지만 길이 넓고도 평평하니, 걸음도 편하고 얼마든지 한눈을 팔 수 있어 좋은데, 가을 빛깔의 열매와 잎으로 한껏 멋을 낸 나무들과 마음으로의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아름다운 온갖 식물과 동물을 길러내고 품어주는 산줄기들과 계곡들의 넉넉한 품성과 금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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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산악회 등반이사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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