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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에베레스트 첫 단독등반 오은선씨  


흔히 어떤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실체와는 여러가지 점에서 판이하게 다를 때 ‘몇 번 놀랐다’는 말을 하곤 한다.
지난달 20일 한국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 단독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오은선(38)을 만났을 때도 두번 놀랐다.
무거운 산소통을 둘러메고 하늘과 맞닿은 까마득히 높은 산을 올라간 철녀(鐵女)라면 의레 기골이 장대할 것이라는 예상은 키 155㎝, 몸무게 48㎏의 가냘픈 체구 앞에서 여지없이 빗나갔다.

그는 또 눈물 많은 여자였다.
세계의 험산준령을 모조리 정복한 프로 산악인이라면 으레 강철같은 의지의 소유자일 것이며 따라서 눈물 따위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당초의 생각은 그의 굵은 눈물방울 앞에서 허물어졌다.
그는 등정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말하면서 눈물을 떨구었고 특히 동료 산악인의 시신을 발견하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말하면서 펑펑 울었다.
인터뷰는 오은선이 일하고 있는 서울 만리동 (주)영원무역의 지하 휴게실에서 있었다.

-11시간 사투끝에 승전보 ‘눈물많은 철녀’-2004년 5월20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오은선은 마침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마지막 캠프인 8,300m의 북동릉 루트 캠프5를 출발한 뒤 11시간의 사투끝에 이뤄진 쾌거였다.
그가 선택한 북동릉 루트는 정상에 오르기 전 마지막 구간이 급격한 경사의 바위지대여서 베테랑 남성 산악인들도 오르기 꺼려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오은선은 우선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을 무전으로 알린 뒤 태극기, 영원무역 사기(社旗), 후원업체인 노스 페이스 사기, 모교인 수원대 교기(校旗)를 휘두르며 각각 한장씩 사진을 찍었다.
오은선은 “나중에 현상해보니 태극기 사진밖에 나오지 않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회장님(영원무역 성기학 회장)과 노스 페이스측에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진촬영을 마친 그는 감회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고 있던 산소통 2개가 너무 무거워 하나를 버렸기 때문에 산소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은선이 계명대 산악부 박무택 대장(36)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정상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어렵다는 북동릉 루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8,750m의 세컨드 스텝을 올라서자마자 박대장이 로프에 숨진 채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오은선은 “다가갈 수 없는 암벽에 매달려 있는 그를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면서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르는 듯 어깨를 들먹이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평소 인상을 쓰면 이마에 굵은 주름살이 잡히곤 했던 박무택은 편안한 얼굴을 한 채 영면(永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의 감은 눈(眼) 위에 흰 눈(雪)이 살짝 덮여 있었다.
쾌활한 성격의 박무택은 평소 2살 위의 오은선을 깍듯이 선배로 모시면서 따르곤 했다.
오은선은 일단 베이스 캠프에 이 사실을 알린 뒤 ‘무택아, 널 두고 그냥 올라간다. 제발 도와다오’라고 울면서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어렵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도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하산은 상상하기 어려운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했다.
혼미한 상태에서 내려오느라 통상 3∼5시간 걸리는 캠프5까지 무려 11시간 만에 도착했다.
결국 그는 캠프의 불빛이 보일 무렵 완전히 탈진해 눈 위에 누워버렸고 다행히 타국 원정대 셰르파의 눈에 띄어 텐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은선은 “위성전화기로 가장 먼저 어머니와 통화했고 회사관계자에게서 ‘한국 여성 최초의 단독 등정’이란 사실을 들었다”고 말했다.

오은선의 단독 등정은 원래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현지에서 고용한 셰르파 한명과 함께 등정하려 했으나 그 셰르파가 타국 셰르파로부터 받기로 한 산소통과 레귤레이터 등 장비가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자 나서게 된 것이었다.
오은선은 “장비 사정 때문에 뜻하지 않은 영광을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하는 ‘꿈의 봉우리’라고 한다.
1993년 공무원 신분(서울시교위 산하 서울과학교육원 전산직 직원)이었던 오은선은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사표를 던졌다.
에베레스트 한국여성등반대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체력이 뒤처져 정상공격조에서는 제외됐고 결국 선배 3명(지현옥, 김순주, 최오순)만이 영광을 안았다.

-사선 넘나든 山처녀 좌우명 ‘인명 재천’-무릇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매어 있다고는 하지만 특히나 산악인들에게 죽음은 피안(彼岸)의 문제가 아니라 늘 곁에 달고 다니는 친숙한 어떤 것이다.
이번 에베레스트 등정에서도 그는 동료의 시신을 목격했고, 그 자신도 여러번 사선을 넘었다.
몇년전 오은선은 8,611m의 파키스탄 K-2봉을 오르다 50m 정도 절벽 아래로 추락하던 중 기적처럼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는 “비슷한 사고가 나더라도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면서 “인명재천이라는 것을 매순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에 오르면서 그가 목격한 최초의 죽음은 99년 파키스탄 브로드피크(8,000m) 등정때였다.
연세대 재학생이었던 허승관 대원이 밤 사이에 실종됐는데 결국 그가 입었던 빨간 재킷만 발견됐다.
오은선은 “참으로 천사같은 성품의 후배였는데 주인없는 재킷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등정과 관련한 그의 오랜 징크스는 ‘자료 따위를 정돈하지 않고 어질러 놓는 것’이다.
등정계획이 세워지면 산에 대한 이런 저런 자료를 섭렵하는데 집을 나서면서 방 가득히 어질러 놓은 상태에서 현지로 떠난다고 한다.
오은선은 “깨끗하게 정돈을 하면 마치 세상과 하직하는 느낌이 들고 어질러 놓아야 (살아서) 돌아와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오은선은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전국 여러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때 가족들과 함께 북한산에 놀러갔다가 인수봉에서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산에 대한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다.
오은선은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나중에 꼭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서울 휘경여중과 송곡여고를 다니면서도 산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으나 등산반이 없어서 뜻을 펼쳐보진 못했다.

오은선은 85년 수원대 전산학과에 입학하자마자 산악부에 들어갔다.
2학년때 인수봉에서 ‘첫바위(최초의 암벽등반훈련)’를 하면서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통상 첫바위를 한 뒤에는 대부분 파김치가 되는데 오은선은 여전히 힘이 남아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였다.
산악부의 선배들은 ‘너처럼 첫바위 뒤에 좋아하는 건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르며 ‘될성 부른 떡잎’을 알아봤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산악부로 쪼르르 달려갔고 집과 학교, 산을 왔다갔다하는 단조로운 생활은 4년내내 계속됐다.

산악인들에게는 우문(愚問)일 수밖에 없는, ‘왜 산에 가느냐’는 질문에 오은선은 “산에 있는 공기와 나무 등 자연과의 교감이 좋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그 무엇이 더 있는데 이걸 말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또 “흔히 높은 산을 오르고 나면 ‘정복’이라는 말을 하는데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에 오르는 태도나 자세에도 목표지상주의인 ‘등정주의(登頂主義)’와 그 과정을 중시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로 나뉘는데 자신은 철저한 등로주의자라고 강조했다.
그가 산악인으로 폴란드 출신의 예지 쿠크츠카를 존경하는 것도 ‘남이 하지 않는 고난을 만들어서 헤쳐나가는 철저한 등로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험로만을 골라서 다녔던 쿠크츠카는 히말라야산맥의 8,000m 이상 14좌에 올랐으며 결국 로체 남벽에서 추락사했다고 한다.

-7대륙 최고봉 공략후 ‘결혼봉’ 정복할터-세계 7대륙 최고봉 북미의 매킨리봉(6,195m)과 유럽의 엘부르즈(5,633m)에 이어 아시아의 에베레스트까지 올라 3개 대륙의 정상에 선 오은선은 7월초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5,693m)에 도전할 계획이다.
나머지 2개봉인 남극대륙의 빈신 매시프(4,897m)와 오세아니아의 칼스텐츠(4,884m)는 내년 안으로 오른다고 한다.
한국인으로는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한 산악인은 허영호(95년), 박영석(2002년) 등 2명뿐이다.
산이 좋아, 산 때문에 그동안 데이트 한번 제대로 못했다는 오은선은 “7대륙 최고봉을 다 오른 뒤에는 남심(男心)을 공략해 결혼봉(結婚峰)에 올라보겠다”며 깔깔 웃었다.

〈손동우기자 sdw@kyunghyang.com〉
ⓒ[경향신문 06/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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