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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山冊 :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엄 홍길, 350쪽, 2003년 11월, 이레

5월 6일 "국내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엄홍길이
얄룽캉 원정에 성공해 세계 최초로 15좌 정복의 쾌거를 이뤘다."

지난해 10월에 도전, 정상을 150여m 남겨두고 눈사태로 인해
앞서 가던 2명의 동료를 잃은 쓰라린 경험을 준 로체샤르(8,400m)와 더불어,
얄룽캉은 8000m가 넘으면서도 세계 3위봉인 캉첸중가(8,586m)의 위성봉이라는 이유로
14좌에 포함되지 못한 곳이다.

하지만 입산료가 14좌와 마찬가지로 1만달러에 이를만큼
최근 들어서는 점차독립봉으로 인정 받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등반가치도 높다.

엄홍길은 이번 얄룽캉 원정을 마친 뒤 8월에 로체샤르 원정에 나섬으로써
'14+2(얄룽캉, 로체샤르)'로 명명되는 히말라야 16좌 완등에
세계 최초로 도전한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엄홍길이 1985년부터 16년 동안 오른 히말라야 8000m 14좌.
그 영광의 기록 뒤에는 꼭 14번의 실패가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을 따지자면 셀 수도 없다.
이틀 동안 눈 속에 갇혀 비박을 해 보기도 했고,
1992년 낭가파르바트 원정때는 동상에 걸려
오른쪽 엄지와 검지발가락의 일부를 잘라야 했다.

폭풍에 몸이 날아가 죽을 뻔한 일은 부지기수.
친형제나 다름없는 셀파들의 죽음.
같이 원정을 떠났던 대원들의 실종, 사고사.

특히 1998년 안나푸르나 정상을 400m 남겨둔 상황에서
발목이 180˚ 돌아가는 중상을 입고 다시는 산에 오르지 못할 지도 모르는 상태에 빠진다.
히말라야의 고봉들은 그에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련들을 안겨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88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93년 초오유와 시샤팡마,
'95년 마칼루, 브로드피크와 로체를 '96년 다울라기리와 마나슬루를 '
97년 가셔브룸1과 가셔브룸2를 '99년에는 안나푸르나와 낭가파르바트,
그리고 2000년 칸첸중가와 K2를 오르므로써 모든 시련들을 극복해 낸다.

그는 사람들은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듯
이 산이 마지막 안식처라며,
그의 인생에서 후세 사람들이 오를 커다란 산
하나를 만들고 싶은 것이 산에 가는 이유이고,
살아 있는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동료들의 죽음을 대가로 14좌에 올랐다는 혹평을 받기도 하는 그는
2003년 로체샤르에 도전할 때까지 10명의 동료를 잃었다.

그 중에는 1999년 칸첸중가에서의 방송국 생중계를 위해
카메라를 메고 빙벽을 오르던 현명근기자와
동양에서 에베레스트를 오른 몇 안되는 여성산악인중의 한사람으로서
가셔브룸1을 오르고 세번째 8000m인 안나푸르나에 등정한 후 하산중 추락사한 지현옥등이 있다.

하지만 엄홍길은 그들을 잊지 못하고,
그의 모산인 도봉산에 있는 망월사에서
당시의 원정대장과 동료들과 함께 천도제를 올리기도 했다.

혼자만 따뜻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고,
차디찬 얼음벽에 갇혀 숨진 동료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산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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