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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3 04:59

티벳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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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

토번(吐蕃)왕조 흥성기

티벳의 기원 : 고대전설에 의하며, 마녀가 체탕(澤當)으로 와서 원숭이와 만나 자식을 낳고, 그 후손들이 번영하여 이 고원에 인류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역사에 의하면 티벳에는 아주 일찍부터 토착(土着)부락이 산남(山南)지역의 체탕(澤當)평원에 거주했다고 기록 되어 있다. 부락(部落)의 첫 번째 우두머리는 넨트리(?赤)첸포(贊普)였는데, 티벳어의 첸포(贊普)는 바로 ‘왕(王)’이라는 뜻이다. 7세기 초, 33대 왕인 송첸 감포(松贊干布)는 주변의 여러 부락들을 합병, 통일하여 티벳 최초로 강대한 노예제정권(奴隸制正權)인 토번 왕조(吐蕃王朝)를 건립하였다.


당·토번(唐·土蕃)의 혼례관계

송첸 감포(松贊干布)는 먼저 네팔의 브리쿠티(尺尊)공주를 아내로 삼았고, 후에 당나라(唐朝)와의 친분을 위해, 당태종(唐太宗)의 허락아래, 문성공주(文成公主)를 처로 맞았다. 문성공주(文成公主)는 티벳으로 많은 분야의 장인들과 각종 씨앗, 서적 등을 갖고 가서, 한족(漢族)의 농업기술, 고급건축기술, 역법(曆?), 의학, 문학, 음악 등을 티벳에 전했고, 불교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8세기에 당중종(唐中宗)이 또다시 금성(金城)공주를 토번 왕(吐蕃贊普)인 적덕조찬(赤德祖贊)과 혼인시켜서 당(唐)과 토번(吐蕃)이 외숙질 사이가 되어, 이때부터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졌고 티벳의 경제, 문화의 발전이 추진되었다.


토번 왕조(吐蕃王朝)의 쇠망(衰亡)

송첸 감포(松贊干布)때부터 불교는 큰 힘을 얻어 성장하게 되어, 사찰을 크게 짓고, 인도의 고승을 국내로 초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티벳의 본교(本敎)와 충돌하여 문제를 일으켰고, 837년, 본교(本敎)신도들은 적덕조찬(赤德祖贊)을 살해하고 랑달마(郞達瑪)를 왕으로 옹립(擁立)했다. 5년 후, 불교신도들이 다시 랑달마(郞達瑪)를 암살하자 토번왕조(吐蕃王朝)는 붕괴와해(崩潰瓦解)되기 시작했고, 티벳은 분열국면에 빠졌다.


사캬(薩迦)왕조

분열 국면은 4세기 동안 지속 되었다. 그러다가 원 세조(元 世祖) 쿠빌라이 때에 이르러 사카파(薩迦派)의 판디타(八思巴)가 원(元)의 「국사(國師)」로 봉해지고, 티벳에 군사를 파병하여, 다시 한번 통일해서 정치와 종교를 합일(合一)시킨 제도를 실행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사캬(薩迦)왕조」라 부른다.


황교(黃敎)시대

명조(明朝)에 이르러, 총카파(宗喀巴)는 종교개혁을 부르짖고, 이후 불교 계율을 엄수하여, 현교(顯敎)와 밀교(密敎)를 다 같이 중시하자고 주장하면서 겔룩파(格魯派- 속청 “황교(黃敎)”)를 창립했다. 그리고 총카파(宗喀巴)의 제자 근돈주파(根敦朱巴)와 극주절후(克朱節後)가 각각 제 1대 달라이 라마와 1대 판첸(班禪)라마가 되었다.
명조(明朝) 말에, 5대 달라이라마와 4대 판첸 라마가 몽고군의 도움을 받아 겔룩파의 「객단포장(?丹頗章)왕조」를 건립하고, 청(淸)순치(順治)황제가 등극하자, 5대 달라이 라마는 북경에 직접 그를 알현하러 가서 황제로 부터 정식으로「달라이라마(達賴喇?)」라는 봉호(封號)를 얻게 되었다.


영국군의 티벳 침략

 

 19세기 중엽, 영국은 티벳을 침략했다. 1888년의 봉토산(봉吐山)전투와 1904년의 갼체(江孜)방어전(戰)중에, 티벳인들은 용감하게 침략자와 싸웠고, 전쟁터는 피로 물들었다.

할 수 없이 청(淸)정부가 투항정책(投降)을 집행하여「라싸조약(拉薩條約)」을 체결하였고, 티벳은 이때부터 1951년 중국군이 점령 할 때까지 영제국주의(英制國主義)의 지배를 받게 된다.





티벳역사 시리즈-( 영국과 중국의 티벳협정) (퍼온글)

1.영국의 티벳 점령 및 라사입성으로 영국은 티벳과 라사조약을 맺는다
2. 이름하야 앵글로티벳 협정
3. 13대 달라이라마가 망명시 섭정으로 임명한 라마트린 린포체와의 협약이다
4. 이때 열받은건 만주족 청나라 !!
5.티벳의 종주국이 중국인데 ..티벳 제 마음데로 조약한걸 인정 못한다고 항의
6. 영국은 다시 티벳의 종주국이 중국임을 인정 다시 중국과 재 조약을 맺는다
7.아 !! 슬프다 ..제나라없다는게 이렇게 슬프니..안중근 유관순 의사가
8.그렇게 팔팔 뛴것이다… 그져 지하에 계신 그분들께 감사하자
9.그나져나 일이 이쯤되자 영국군은 티벳을 떠나고 몽골로간 13대 달라이라마는
10. 다시 북경으로 들어오는데 …청나라가 망할때쯤되니
11. 만주족이 다시 티벳을 점령 ..달라이라마는 또 도망 가게 되는데
12. 아이러니한것은 영국땜에 몽골로 도망했던 13대 달라이가
13. 이번엔 영국의 협조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로 망명하게 된것이다
14. 세상일 참 웃기게 돌아간다..어찌됐건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망명의 세월을
15. 밥먹듯이 하며 살아가는 비극이 이어지고 또이어진다

- 민주혁명

1959년, 티벳의 보수 세력들에 의해 반란이 일어나자, 티벳에 주둔해 있던 중국 해방군들은 신속하게 그들을 진압해 나갔고, 14대 달라이라마는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를 쫓는 10만여 명의 신도들과 함께 인도로 망명하였다. 같은 해, 중국 정부는 티벳에서 민주 혁명을 일으키면서 봉건농노제도를 폐출시켰다. 1965년9월1일 정식으로 티벳(서장) 자치구가 성립되었다.


티벳역사씨리즈-(공산당의 티벳 유화정책) (퍼온글)

 

아무리 잘나가는 인간이라도 죽음앞엔 힘 못쓰지..
나폴레옹도..하물며 그 잘나가던 김일성이도..모두 갔지..!!
하나님이 지배하는 어둠과 광명의 나라 둘중 하나로
1976년 중국 공산당의 아부지..오야붕.. 모택동이 죽어 버렸어
그의 후계자로 화구팽(화국봉)이 등장 했는데
시끄러운 티벳땅에 화해와 평화의 무드를 제공하자는 정책의 일환으로
달라이라마와 그외 정치적 망명자들 귀환한다면 환영한다고 공표했어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쌤플케이스로 판첸라마를 특사로 풀어주네??
이 소식을 들은 달라이 14대.. 어라 ?? 얘네 들이 왜이러지?
바보가 아닌 이상 믿을수 없는 이 사실을 파악해 보기 위해
티벳 실태조사 사절단 파견을 제의 했지
어라 ?? 안들어 줄줄 알았는데 이것도 들어주네??
달라이14대 는 이사길을 보며 “에이..망명생활 이제 그만두고 집에가자 했는데….
문제는 돌아온 사절단에게 “ 어땠니?? “ 하고 물어 보니..
사절단 왈 “ 절단 났습니다.. 완존히 절단 났습니다” 라고 말한게야
이후 둘번이나 재 보고를 받았으나..
티벳의 상황은 경악을 금치못하는 상황이라 달라이 라마14대는 노!코멘트..
보고된 상황이 도대체 뭐길래?? 궁금 하지?
6254개의 사원은 모두 파괴 되어 있고
티벳의 60%가 중국으로 흡수 되었고
중국 강제 수용소에서 산림벌채로 10만명의 티베탄이 강제노동을 당하고 있고…
달라이는 눈물을 감출수 없었어
티베탄이 나라를 잃은 것도 분한판에 지도자의 무능으로 자신의 민족들이
이토록 고난받음에 달라이는 티벳의 하늘을 그리며 주루룩 한방울을 흘렸데


 

   ※ 티벳여행정보의 퍼온글은 다음 카페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티만사)'에서 발췌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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