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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등반

2009.08.06 16:27

히말라야 -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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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대륙과 네팔을 거쳐 중국의 티벳 고원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산맥으로 총길이 2,400km의 거대한 산맥이다. 히말라야(Himalaya)라는 말은 고대 인도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눈(雪)을 뜻하는 힘(Him)과 거처(居處)를 뜻하는 알라야(Alaya)의 합성어로 '눈의 거처', 즉 '만년설의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갠지스강 연변의 수원지대를 가리키는 좁은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넓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히말라야산맥은 북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활 모양을 그리며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네팔·시킴·부탄·티베트 남부를 뻗어 내리면서 몇 갈래의 산계로 나누어진다.

히말라야산맥은 ‘눈의 거처’라는 뜻에 어긋나지 않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삼(Assam)히말라야

히말라야의 가장 동쪽지역으로 인도 북동쪽 브라마푸트라강에서 부탄의 마나스강까지 이어지는 400Km의 산맥을 가리킨다. 열대성 산림이 우거져있고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고, 인도와 중국간의 영토분쟁으로 아직 탐사되지 않은 지역이 많다.

부탄-시킴(Bhutan-Sikim)히말라야

부탄 영토내의 산지부터 인도 시킴주를 거쳐 네팔동부경계까지 400Km 구간을 말한다. 부탄의 히말라야는 남북간 고도차와 지형의 기복이 심하고 몬순기간중 내리는 많은 비 뿐만 아니라 입국이 어렵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시킴 히말라야는 세계 3위봉 컨천정가(8,586m)를 사이에 두고 네팔 히말라야와 나뉜다.

네팔(Nepal)히말라야

네팔 영토내의 히말라야를 말하며 8000m급의 봉우리가 8개나 되고 6000~7000m급의 수많은 고봉이 800Km이상 펼쳐져 있다. 전체 히말라야산맥의 1/3을 차지하고 있어 전세계 산악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가르왈(Garhwal)히말라야

네팔 서부 국경인 칼리강에서 인더스강의 지류인 수틀레지강까지 320Km를 가리키며, 대히말라야산맥의 북쪽을 달리는 자스카르산맥이 티베트와 인도 국경을 형성한다. 인도 최고봉이자 성역인 난다데비산(7,817m)이 이곳에 솟아 있다.

펀잡(Punjab)히말라야

서인더스강과 동쪽의 수틀레지강 사이 550Km의 산악지역을 말한다. 8000m급 봉우리는 세계 9위봉 낭가파르밧(8,125m)이 있고, 눈(7,135m), 쿤(7,077m) 등 2개의 7천미터급봉 외에 다람수라(6,446m), 강스탕(6,162m) 등 6천미터급 산이 다수 있다. 파키스탄, 인도,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입국이 곤란한 지역이다.

카라코룸(Karakorum)산맥

카라코룸산맥은 중앙아시아 남쪽과 인도대륙 북서쪽에서 동서로 500Km, 남북으로 150Km의 면적을 차지하며 대장벽을 형성한다. 터키어로 '카라'는 흑색을 '코룸'은 돌멩이를 의미하는데 이 고개 주변을 덮고 있는 검은 돌에서 생긴 이름이다. 세계 제2위의 높은 봉우리인 K2(8,611m)봉을 비롯한 4개의 8,000m급 봉우리, 시아첸(72km) ·발토로(58km) ·비아포(59 km) ·히스파르(61km) ·바투라(58 km)의 5개의 대빙하를 안고 있으며, 첨봉이 이루는 장관은 네팔히말라야에 뒤지지 않는다.

 

 

 

 

 

1. 에베레스트(EVEREST)-8,848m
원래 티벳에서는 '세계의 여신'이라는 의미의 초모룽마(Chomolungma)라고 불렸으나 1852년 영국의 측량사업으로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임이 확인된 후 P15라는 기호로 표시되어 한동안 기호로 불리다가 1865년 영국의 전임 측량국 장관의 이름을 따서 마운트 에베레스트(Mt. everest)라 이름짓게 되었다.

네팔어로는 서거르마타(Sagarmatha)라 부르기도 하는데, 네팔어로 서거르(Sagar)는 '세계'를, 그리고 마타(Matha)는 '정상'을 의미한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최초의 도전은 1921년에 정찰원정 이었고, 1953년 5월 29일 J.헌트를 대장으로 하는 영국대의 E.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이 인류 최초로 제3의 극점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서게 되었다. 에베레스트가 세계 최고봉으로 밝혀진지 100년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에베레스트는 수많은 산악인들의 동경의 대상으로 매년 원정대가 끊이질 않았다. 한국은 1977년 9월 15일 대한산악연맹 원정대(대장 김영도)의 고상돈대원과 셀파 1명이 남동릉 루트로 등정해 세계 8번째 에베레스트 등정국이 되었다.



2. 컨천정가(Kangchenjunga)-8.586m
네팔히말라야의 가장 동쪽에 솟아 있는 세계 제3위의 고봉 컨천정가는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산이다. 1899년 영국의 더글라스 프레쉬필드 일행이 이 산을 두루 탐험하고 <컨천정가 일주>라는 탐사기를 남기면서 서구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인도의 유명한 피서지인 다르질링(Darjeeling)으로부터 불과 50킬로미터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장관을 이루고 있는 이 산은 에베레스트가 발견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컨천정가(Kangchenjunga)란 산 이름은 티베트어로 눈을 뜻하는 '컨(Kang)', 크다란 의미의 '천(Chen)', 보고(寶庫)란 뜻의 '주(Ju), 그리고 다섯이란 뜻의 '은가(Nga)'가 합쳐져 만들어진 합성어로 '다섯 개의 위대한 눈의 보고'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의미는 컨천정가가 주봉외에도 서봉(일명 얄룽캉; 8,505m), 중앙봉(8,473m), 남봉(8,491m) 등의 연봉으로 이루어진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 산은 55년 에반스대장이 이끈 영국대가 얄룽빙하를 경유하여 남서면으로 초등정했다. 1905년 이 산에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지 반세기 만에 이룩된 업적으로 10개팀의 실패와 11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이룬 인간승리였다. 그 후 77년 인도대가 북동릉으로 두 번째 등정을 이루었고, 78년 봄에는 스페인대가 중앙봉을, 폴란드대가 남봉을 초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북면으로 영국과 일본이 새 루트를 뚫었으며 82년에는 메스너 일행이 최초로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고 84년에는 일본대가 남봉, 중앙봉, 주봉을 종주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서는 부산 대륙산악회의 87-88동계 컨천정가 원정대가 캐러번 도중 대원 1명의 사망 으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상등정에 성공했으나 정상사진이 없어 의혹이 제기되었다. 후에 1999년 봄 동국산악회의 박영석대원이 사실상 한국 초등을 기록했다.



3. 로체(Lho tse)-8,516m
에베레스트산의 바로 남쪽에 솟아있다. 로체는 세계 4위의 고봉임에도 불구하고 카라코람의 고봉이나 쿰부 히말의 다른 고봉에 비하여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름을 보아도 티벳어로 로(Lho)는 남쪽을, 체(Tse)는 봉우리를 뜻하기 때문에 에베레스트의 남쪽 봉우리라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확실한 하나의 독립된 봉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로체에서 흘러내리는 빙하는 크게 세 개로 구분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로체 빙하, 서쪽으로는 쿰부 빙하, 그리고 동쪽으로는 캉슝(Kangshung) 빙하가 흘러 내린다. 로체는 주봉(8.516m). 중앙봉(8.414m).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와 연결되어 있는 로체 샤르(8.383m)로 되어 있는데 중앙봉은 아직도 미등으로 남아 있다. 로체는 21세기 산악인들이 풀어야 할 두 개의 난제를 갖고 있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21세기 과제`라고 한 로체 남벽과 로체 주봉과 중앙봉, 샤르를 잇는 종주등반이 그것이다. 로체 서면을 오를 때는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와 캐러반이 같다. 그리고 남벽을 오를 때는 남체를 출발하여 딩보체(Dingboche)에서 오른쪽으로 임자 콜라(Imja Khola)를 따라 눕체·로체 빙하를 지나 로체 빙하에 도착하여 등반을 시작한다. 이 산의 초등은 1956년 스위스원정대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1952년 에베레스트에 도전해 실패하고,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영광을 영국원정대에 넘기고 나서 1956년 로체와 에베레스트를 동시에 등정함으로써 그들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4. 마칼루(Makalu)-8,463m
마칼루는 네팔과 티베트의 국경을 이루는 중부히말라야에서도 쿰부 산군 동쪽에 위치해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남체바잘에서 불과 38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세계 제5위의 고봉이다.

산의 이름은 힌두교 시바신의 화신(化神) '마하카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산스크리트어로 이것은 '검은 신'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 마칼루는 밑에서 보면 흑갈색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다른 산에 비해 검게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검은 귀신'이라고 발표하여 이 산의 인상을 더욱 무시무시하게 만들었다. 마칼루의 모습은 1921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정찰대가 북카르마 계곡으로 들어가 웅장한 자태를 촬영하여 처음 알려졌고, 본격적인 등반은 54년 봄 미국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동남릉으로 등반을 시도하여 7200미터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55년 장 프랑코대장이 이끄는 프랑스대가 북서릉 초등정을 이루었다. 이들은 5월 15일, 16일, 17일 3회에 걸쳐 9명의 대원 전원이 등정해 세계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후 70년 봄에 일본대가 동남릉 루트를 뚫고 2등을 기록했고, 다시 71년 불란서대가 서릉에 새 루트를 내며 세 번째 등정을 했다. 그리고 75년 가을에는 유고슬라비아대가 수직의 남벽을 통해 4등을 이루었고, 76년에 체코대가 남서 버트레스, 스페인대가 동남릉으로 각각 5, 6등을 기록했다. 78년에는 서독-스위스-오스트리아합동대가 북서릉으로, 80년에는 미국대가 서쪽 필라로, 81년 봄에는 오스트리아대가 북서쪽으로, 가을에는 폴란드-영국합동대가 서벽으로 등정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 5월 10일 한국산악회 원정대(대장 함탁영외 12명)의 허영호대원이 셀파 2명과 함께 등정에 성공했다.



5. 초오유(Cho Oyu)-8,201m
'초오유'라는 산이름은 산스크리트(Sanscrit)어의 복합어로서, '초오'는 여신(女神)이라는 뜻이다. '오유'의 '유'는 터키옥(玉)을 의미한다.

즉 '초오유'는 '터키보석의 여신'또는 '청록여신이 거처하는 산'이란 이름을 가진 우아한 산이다. 보통 지도상에는 8,153m로 표기되어 있으나 재측량 결과 8,201m로 밝혀졌다. 시샤팡마에서 차도로 200km 동쪽에 위치한 이 산은 대부분의 히말라야 고산들이 그러하듯이 남면, 즉 네팔쪽은 상당한 급경사에 장장 2km에 달하는 넓고 긴 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면은 비교적 완사면으로 형성되었다.1952년 영국에 의해서 동서면 정찰이 되고 1952년 영국이 북서면으로 E, 쉽턴. E. 힐라리 W. 로우가 약 6850m까지 도달하였다. 한국에서는 1992년 9월 20일 한국초오유원정대의 남선우 등반대장을 비롯한 3명의 대원이 등정에 성공하였다. 이때 초오유 등정후 10월 2일 시샤팡마(8027m) 중앙봉에 등정하여 국내최초로 8000m봉 연속등정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초오유에서의 등반은 중국정부에 의해 등반이 허가되고 있는 현 시점에도 접근.비용의 문제 때문에 Nanpa La를 넘어 티벳 영토에서 등반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네팔 측에는 2km에 달하는 급준한 장벽에서 2개 루트가 개척되어 있고, 티벳쪽에는 초등루트 4개가 개척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루트는 7743m 고춘바에서 연결되는 긴 북동릉으로 이미 2회의 실패를 보고 있다.



6. 더울라기리(Dhaulagiri)-8,167m
네팔 히말라야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더울라기리 산군은 고대 티벳과의 교역통로였던 칼리 건다키 (Kali Gandaki)강을 사이에 두고 안나푸르나 산군과 마주보고 있다.

더울라기리는 산스크리트 어 데버나기리(Devanagiri)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더발라기리(Dhavalagiri)의 단축형으로 더발라(Dhavala)는 '희다'라는 뜻이고, 기리(Giri)는 '산'을 뜻한다. 즉 다울라기리는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이 산군은 동쪽에 있는 투크체 피크(6,920m)에서 서쪽 푸타히운출리(7,426m)까지 40km에 달하는 주산맥과 여기서 파생된 지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안에는 더울라기리Ⅰ봉을 비롯하여 서쪽으로 Ⅱ,Ⅲ,Ⅳ,Ⅴ,Ⅵ봉이 있고, 이밖에 추렌히말, 푸타히운출리, 구르자히말, 투크체 피크등이 모여 있다. 최고봉은 높이 8,167m로 동쪽 끝에 위치하는 더울라기리Ⅰ봉이며, 산군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8km지점에 위치한다. 1930년 인도의 고르카 연대의 장교였던 영국인 모리스가 특별허가를 얻고 프트왈에서 탄센으로 들어가 머나슬루, 안나푸르나, 더울라기리 등 여러 산군의 사진을 찍었으며, 1934년 비로소 이 사진들이 여러 산악지에 공개되었다. 본격적인 정찰은 1950년 모리스 엘조그가 이끄는 프랑스의 안나푸르나 원정대가 안나푸르나를 가기 전에 여러 대로 갈라져 더울라기리에 오를 루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예상외의 험악함에 더 이상의 등반을 포기했다.1953년, 스위스 원정대를 비롯해 많은 원정대가 거의 이곳에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결국 실패했다. 그 후 1960년 5월13일, 막스 아이젤링이 이끈 합동원정대가 무산소로 드디어 정상의 흰눈을 밟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경희 대학의 박철암씨에 의해 처음 정찰된 이 산은, 1988년 두차례의 시도 끝에 부산합동대의 최태식 대원에 의해 북동릉 루트로 등정되었다.



7. 안나푸르나(Annapurna)-8,091m
네팔 최고의 휴양도시인 포카라를 거쳐 안나푸르나 남면벽의 베이스캠프까지 걸어가는 안나푸르나의 트레킹은 네팔의 여러 트레킹 코스 중 접근이 아주 쉽고 경치가 빼어나 가장 많은 트레커들이 찾는 곳이며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쾌적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라는 의미인 안나푸르나는 8,000m 고봉 중 최초로 등정 된 산으로 "premier 8,000m"라는 명칭도 갖고 있다. 네팔의 중앙에 위치한 안나푸르나 산군은 서쪽으로부터 제1봉(8,091m) ·제3봉(7,555m) ·제4봉(7,525m) ·제2봉(7,937m)의 순서로 이어지며, 제3봉의 남쪽에는 마차푸차례(6,997m)의 아름다운 첨봉이 파생되어 있다. 동쪽은 마르얀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머나슬루산군과 마주하며 서쪽은 칼리건다키를 사이에 두고 더울라기리와 마주한다. 제1봉은 1950년 6월 3일 프랑스 에르조그 등반대가 처음으로 등정하였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8,000m급의 정복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히말라야 등산 붐의 출발이었다. 제2봉은 1960년 5월 17일 영국 ·네팔 공동팀인 로버츠 등반대가 등정하였고, 제3봉은 1961년 인도의 코리 등반대, 제4봉은 55년 5월 30일 독일의 슈타인메츠 등반대가 각각 등정에 성공하였다. 1970년에는 전원이 여성으로 짜여진 일본의 등반대가 등반에 성공했으며, 한국에서는 영남산악회가 최초로 제2봉 등정에 성공했다. 84년에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의 김영자가 제1봉 등정에 성공했다. 초등이후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안나푸르나에는 합계 10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히말라야 전성기를 맞고 있으나 안나푸르나 특유의 기상변동과 잦은 눈사태로 사고가 많다. 우리나라도 세계 최고의 여성산악인 지현옥씨가 이곳 안나푸르나 1봉을 정복한 뒤 하산하다 실종됐으며, 세계14좌 연속등정에 나섰던 엄홍길씨가 등정을 눈앞에 두고 미끄러져 다리를 다치기도 했다. 84년부터 노말 루트를 통한 등정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채 비운의 산으로 남아있다.



8.시샤팡마(shisha Pangma)-8,027m
카트만두에서 동북쪽으로 60Km거리의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날씨가 쾌청한 날은 카트만두에서도 볼 수 있다. 비교적 좁은 산군인 이 지역은 최고봉인 시샤팡마를 중심으로 북쪽에서 부커 푸레푸(Phurephu), 랑탕(Langtang), 주갈(Jgal)로 나뉘어 불려왔다.

시샤팡마는 히말라야의 8천미터 급 14좌 중에서 가장 낮은 산으로 동쪽으로는 순코시, 서쪽으로는 트리슐리강을 끼고 있는 랑탕, 주갈 지역의 최고봉이다. 이산은 자이언트 14좌 중에서 유일하게 등반 활동 자체가 정치적으로 금지되었던 중국 국경 안에 위치한 관계로 14좌 중 가장 늦은 1964년에 허경이 이끄는 중국대에 의해 처음 등정 된 산이다. 이 산은 네팔에서는 고사인탄(Gosainthan)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카트만두 북쪽으로 50여 킬로 떨어진 힌두성지 고사인쿤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산의 의미는 힌두어로 “성자의 거주지”를 의미한다. 정식 명칙은 티벳어로 "일기변화가 극심한 산"을 의미하는 "시샤팡마(Shisha Pangma)"가 통일되어 사용된다.
1979년 중국이 외국 등반대에게 문호를 개방 할 때까지 10년 이상 발길이 끊겼던 이 산은 개방이래 현재까지 남북, 북벽, 서릉 등지에 6개의 새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랑탕히말의 트레킹 코스는 카트만두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으로서 8000m급 산은 없지만 산군들이 아담하고 아름다워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다음으로 트레커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가장 큰 매력은 잘 가꾸어진 전나무숲과 그 속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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