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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행 ‘칭짱철도’ 2박3일을 달렸다

재미한인산악회
티벳-네팔 횡단 등반기 <2>
입력일자: 2010-01-01 (금)  
역사만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길(路)도 진보한다. 금단의 땅, 은둔의 땅, 세계의 지붕이라는 수식이 낯설지 않은 땅을 기차가 관통했다. 서부 공정의 핵심적 숙원 사업으로 중국 정부가 추진해 온 티벳까지의 열차가 개통된 것은 2006년 7월1일의 일이다. 열차의 개통을 축하하는 축제의 물결이 한 여름의 중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티벳 망명 정부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가 ‘문화적 대학살’이라고까지 항변했지만 철로의 역사적 개통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원지대선 객실에 일제히 산소공급
숨이 가빠오자 일부 대원 고산증 호소
창밖 펼쳐진 설산·광활한 대륙 ‘장관’




북경에서 출발한 열차는 시안, 란저우, 시닝, 거얼무를 거쳐 티벳 주도 라싸까지 총 4,065킬로미터, 만리 길을 47시간28분만에 달리도록 설계됐다. 이 철도의 다른 애칭은 만리장철(萬里長鐵)이다. 가장 험난한 코스는 칭하이 성의 거얼무에서 라싸까지의 동토지대 1,142킬로미터. 평균 해발이 4,500미터나 되고 험준한 쿤룬산맥을 넘어야 하며 수많은 호수, 계곡을 관통해야 하는 이 마지막 구간의 철로 건설을 위해 중국 정부는 오랜 준비기간을 거쳤고, 330억달러 이상의 건설비와 연인원 수십만명의 인력을 동원해 완성했다.

만년 동토 구간만 해도 550킬로미터나 되며, 5,072미터의 탕구라 고개를 지날 땐 빙하 층과 기차의 높이가 거의 같아지는 험한 길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 철로를‘티엔루’(天路) 즉 ‘하늘 길’ 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수천 톤의 이 육중한 철마가 평균 4,500미터 티벳 고원을 등반하듯 올라 종단한다. 칭하이 성(靑海省)의 거얼무에 도착하면, 거기부터 라싸까지 이어지는 이 철도를, 중국 당국은 칭짱선(靑藏線)으로 부르고 있다.

티벳이 어떤 곳인가. 높기도 하거니와 쿤룬산맥, 탕그라산맥, 히말라야로 에워싸인 불모의 땅이다. 헬리콥터 조종 교본에도 비상시가 아니면 체류하지 말라고 했다는 아득한 높이의 땅덩어리. 동토 층인데, 그 곳을 쇳덩어리 기차가 달리는 거다. 그 계획을 처음 듣고 놀라운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것이 실현되었다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산소가 희박한 만큼, 인구 밀도도 희박한 그 곳에 철길을 놓은 중국의 속내야 이미 세계가 다 알고 있다. 혼곤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기차는 낯선 풍경 속을 달리고 있다. 희붐한 아침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모하비 사막만 지평선이 보이는 줄 알았는데 이 곳 역시 그랬다. 다만 사막과는 다르게 창밖으로 질펀한 옥수수 밭이 끝 간 곳 없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경작 가능한 땅이 많으므로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먹거리는 넘쳐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를 보유하고 있다. 경작 가능한 땅으로는 세계 최고의 넓이다. 기절하듯 푹 잠자고 아침에 깨어나면 힘이 솟는 것처럼, 중국도 질곡의 역사를 뒤로하고 거듭 깨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진시 황릉으로 유명한 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30분. 중간에 한번 정차한 후 꼬박 12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이 기차는 라싸까지 통과하는 각 성의 성(省)도 6개 도시만 정차한다. 그야말로 쾌속이라 할 수 있다. 성 하나는 한국 국토의 몇 배 크기를 가지고 있다.

허베이(河北)성 성도 스자좡(石家莊), 산시(陝西)성 성도 시안(西安), 간쑤(甘肅)성 성도 란저우(蘭州), 칭하이(靑海省)성 성도 시닝(西寧)과 거얼무(格爾木), 시짱자치구 나취(那曲) 등 5개 성 6개 역에만 정차하는 것이다.

2박3일은 가야 하는 기차 안에서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고도가 서서히 높아짐에 따라 대원들이 슬슬 여러 가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미국에서 3,000미터가 넘는 발디산 등에서 고소적응 훈련을 꾸준히 해 왔다. 그래도 멀미, 식욕 부진 등 닫힌 공간에서 오는 증상이 있었다. 한국에서 합류한 대원이 두통을 호소하며 많이 힘들어 하니 겁이 덜컥 났다. 기차에 상주하는 중국인 의사를 불러야 하는데 문제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마침 우리 옆 칸에 타고 있는 젊은 여성이 미국인 무역회사에 다녀 영어를 곧잘 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남편이랑 라싸에 5박6일을 휴가를 보내러 간다는 ‘데이지’라는 여성을 통해 의사를 불렀다. 의사는 산소를 흡입하고, 자꾸 주위에서 고도를 알려주지 말고 물을 자주 마시게 하라고 했다. 심리적으로 고도가 높은 곳이라고 의식하면 더 심할 수 있단다. 그래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고도시계를 자주 본다.

식당 칸 넓은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광활한 파노라마는 정말 장관이었다. 기차 길과 나란히 달리는 천장공로의 차들도 드문드문 보이고 호수도 보이고, 추수를 끝낸 볏단들도 보인다. 산 중턱에서 열심히 풀을 뜯는 양떼들, 고도가 높아지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야크들, 변화무쌍한 경치들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렇게도 고대했던 설산들도 저 멀리에서 위용을 드러낸다.

거얼무역에서는 해발 5,000미터가 넘는 탕구라라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다른 기관차를 연결시켜야 되기 때문에 20분 정도 정차를 했다. 희박한 산소 속을 달리게 설계된 미국제 고소기관차로 바뀌게 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기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고 역 구내를 산책했 다.

기차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숨이 가빠져오는 것을 신호로 만년 빙하에 덮인 탕구라 산맥의 연봉들이 다가왔다. 7시가 됐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다. 거리상으로 2시간 이상 시차를 두어야 하는 데도 중국 정부가 국가적 일체감을 갖게 하려고 광활한 대륙 전체를 통일 된 시간대로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진정한 하늘 길(天路)을 가게 될 것이다. 후진타오 말대로 ‘칭짱철도는 중국 철도사에 있어 위대한 업적일 뿐 아니라 세계 철도사의 기적’을, 눈으로 목격한다는 말일 터였다. 기차로 급격하게 고도를 높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강원도 정선선, 구절리 역의 스위치백을 생각했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후진하며 한 계단 오르는, 그런 오름을 계속 반복하며 티베트 고원을 오르는 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역시 작은 나라에서 온 나그네의 상상이었다. 3량의 고소 기관차로 바꿔 단 우리 기차는, 직선으로 티벳 고원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중국어와 티벳어, 그리고 영어로 방송이 나왔다. 지금부터 산소를 공급한다는 말이다. 에어컨 있는 곳에서 슈-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의자 밑에도 노즐 구멍이 있어 그 곳에서도 산소가 나온다. 그럼에도 고소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승무원은 고무튜브로 된 산소 호흡기를 나누어주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처럼 의자 아래, 혹은 곁에 있는 산소구멍에 그 튜브를 꼽고 콧구멍에 대는 것이다.

기차는 나취에서 서서히 고도를 내리고 있다. 참고 자료로 산 중국 잡지에서 본 칭짱철도의 단면은 라싸를 향하여 줄 곳 내리막길이었다. 고도를 내리며 무수히 많은 양과 야크가 보이고, 티벳인들의 흙집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싸 강이 분명한 물줄기 양안의 곡저 평야에는 티벳인들의 주식인 짬바의 원료 ‘라이보리’가 추수를 앞두고 누렇게 익고 있었다.

문성공주와 금성공주가 3년이 넘게 걸어왔던, 종착지 라싸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수필가 정민디>


티벳의 수도 라싸에 자리 잡은 포탈라 궁의 웅장한 모습.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하는 티벳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티벳으로 향하는 ‘칭짱철도’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악대원들. 50시간을 달려야 하는데다, 고지대를 지나기 때문에 산소공급 장비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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