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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오기 전 임진강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보리가 피기 시작하는 오월이면 황어가 회유를 한다고 했다

. 황복이라고 임진강 특산물인 복어도 덩달아 올라오고 그것이 제철음식이라는 선동에 따라 나선 길이다.

오월 녹음이 녹아든 임진강 맑은 물가 식당에서 우리 일행은 그 회유한 물고기들과 마주 앉았다.

 

 

 

식당 창문 밖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보였다. 하류 쪽에서 천렵을 즐기는 사람들이 물길을

 거슬러 점차 우리 식당 쪽으로 왔다.

 강물을 향해 던지는 그물이 푸른 오월 하늘을 배경으로 동심원 같이 둥글게 펴졌다.

 사내들은 그물을 걷어 무엇인가를 건져내었고 부대 같은 곳에 그것을 넣었다.

 그 부대를 힘겹게 맨 사내는, 앞서 가는 그물 잡이를 따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부대에 반쯤 담긴 것들이 모두 고기라는 말.

 

쫒아 내려갔다. 투망으로 잡은 물고기를 보여 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그 사내는 부대에서

한 마리를 꺼내 올렸다.

황어였다. 팔뚝만한 황어가 그 사내의 손에서 퍼덕이고 있었다.

산란을 위해 바다를 떠나 임진강으로 거슬러 올랐던 황어는 봄 꽃 잔치 중인 한국의 산하를 닮았다.

몸 전체가 울긋불긋 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정말이지 황어의 몸은 빛의 굴절에 따라

 아주 현란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오월 따가운 햇살처럼 그것은 눈부심이었다.

 

먼 길 돌아 살이 통통하게 오른 채 모천 회귀한 황어. 어떤 능력이 황어에게 태어난 곳을

 기억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넓은 바다를 떠돌다 황어는 성어가 되어 이제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왔다.

 

**************

 

어제 딸아이가 한국에서 인기가 많다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 중

임재범이라는 가수 노래를 인터넷으로 보여줬다.

처음 보는 프로였고 처음 보는 가수였다.

눈물이 나왔다. 노래를 잘 한다거나 영혼을 울리는 음색이었다는 그런 수사는 불편하다.

 음악은 모르고 더욱 가수는 관심 밖이었으니까.

 쉽게 악담을 퍼붓던 사랑타령 일색인 신파조 가사라거나 음률 때문에 눈물이 번진 건 아니다.

 

 

 

 

 

 

막신일호(莫神一好). 하나의 일에 몰입해서 성취하는 것보다 신명나는 일이 없다는 말이 떠오른 탓이다.

 나는 그 가수의 열창에서, 표정에서, 악을 쓰듯 절규하는 노래에서 진정한 몰입을 보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 보는 그에게서 날것처럼 시퍼렇게 살아 있는 프로 정신을 보았다.

 그 가수는 오십 줄이었고 유명 아나운서의 서자였으며

 유명 탤런트 손 아무개의 이복형이며 무명시절에 보컬리스트로

힘겨운 경제적 상황을 살아 왔다는 거친 사전 정보라도 사전에 있었다면 더 감동했을 것이다.

 

그의 노래는 절규였다. 아우성이었고 분노에 차, 우리 마음속에서 쉴 새 없이 질주하며

 표호 했던 한 마리 늑대의 울부짖음이었다.

황어의 귀향처럼 보리 이삭이 필 무렵부터 밤 새 울기 시작한다는 핏빛 소쩍새 울음이었고,

 아득한 낭떠러지기에 부딪쳐 소멸해 가는 파도의 흩뿌려지는 파편 조각들이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선, 별 볼 일없었던 무능한 가장의 한이 스멀거리며 전이되는

 그 가수만의 홀로 아리랑이었다.

목 쉰 막막한 그 노래를 듣던 딸아이는 부르스 리듬이라거나 느린 발라드라고도 했지만,

 내가 듣기엔 그것은 유장한 진양조 굿거리였다.

벽을 차고 넘어 절정을 향해 높은 음자리로 옮겨가는 득음 과정이었다.

 ‘나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나는 나는 나는...’ 쉰 목소리로 가슴 터질 듯 불렀던

 '여러분'은 공명이 되어 객석을 에워싸더니

 기어이 관중들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딸 아이 볼까 부끄러워 몰래 훔쳐내도 자꾸 비집고 나오던 눈물은, 그러나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딸 아이 역시 그러했으므로. 감동은, 특히 눈물은 아주 전염이 잘 된다.

 임재범 공연은 시종 감동이었고 청중과 함께 나도 그 깊은 느낌 속 심연 같은 감동 속에 빠져들었다.

몰입을 하는 임재범 에게 사람들은 기꺼이 마음을 열었다.

 

대중문화라는 게 그렇고, 말초 신경만 자극하는 백해 무익하다는 편견을 갖은 입장에서 당연히

그 가수의 존재를 몰랐다.

그러나 솔직한 고백이지만 임재범의 열창을 보며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왔다.

한류라는 드문 현상이 현실이 된 건 이미 오래다. 그 한류가 일회성이 아닌 것을

 얼마 전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소위 막장 드라마라고 폄하하던 연속극의 위력 때문이었다.

 

우리가 쓴 글이, 시가 그런 파괴력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대중문화로 한 수 아래로 보던 클래식한 문학이

 그런 공감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던가?

그 보다 임재범처럼 저렇게 목숨 걸고 불렀던 노래처럼 몰입하며

 온 몸 원고지에 던져 쓴 적이 있었던가? 그건 새로운 각성이기도 했다.

 

임재범이 부른 노래 ‘여러분’의 원작자는 가수 윤항기다,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지만 동생 윤복희가 이혼을 거듭하며

실의에 빠졌을 때 위로하려 이 곡을 만들었다. 원작자 윤항기도 입을 열었다.

“이 노래를 부른 윤복희도 가슴이 터질 듯 하다며 극찬했지만,

저는 터질 듯한 정도가 아니라 눈물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울었다”

나처럼 대중문화에 관심이 없었다던 축구인 차범근도 한마디 했다.

“그것은 광기입니다. 그게 없이는 상대방의 혼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그건 핏속에 그걸 담고 나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짓입니다.

 불행이면서 축복입니다." 차범근은 “이름도, 무엇을 하는 친구인지도 모르던

 내가 '임재범'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그의 광기 넘치는 눈빛과 함께”라고 말한다.

 

 

 

바로 그것이다.

몰입의 아름다움. 무잇이던지 하나를 이루는 것보다 신명나는 일은 없다는

 막신일호(莫神一好). 그런 일은 온전히 몰입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목숨이라도 걸어야 이룰 수 있는 일.

 

**********************

 

음-하고 이어지는 여러분이란 노래의 새로운 편곡. 입재범의 구음(口音)이

촉촉이 가슴에 스며든 까닭은 얼마 전 임진강에서 본 황어 탓이다.

 

황어와 임재범이 다른 게 무엇일까. 유명 인사였던 아버지의 후광은 오히려 불편한 일이다.

차가없어 두 아이를 데리고 시외버스로 에버랜드를 찾았던 가난. 암 투병중인 아내.

오십이 되도록 소위 뜨지 못한 가수.

 그럼에도 내가 갈 길은 노래라는 신념이 ‘나는 가수다’를 통하여 혼을 불사르는 열창을 하게 한 건 아닐까.

 

첩첩산중 미로 같은 대중가수들 사이에서 서바이벌. 만들어지는 인형 같은 가수가 판치는 가요계.

립싱크 가수와 현란한 춤으로 노래라는 본질보다 비주얼을 더 평가하는 사회.

소위 뜨지 못한 가수로서, 가장으로서 지내야했던 질곡의 세월.

그런 설움을 거치며 늦깎이로 이제야 대중의 눈물을 자아낸 임재범의 마이웨이.

 

 

 

그건 신념이다. 언젠가 뜨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자신이 할 일은 노래라는 신념.

막막한 바다를 헤매며

자신의 노래를 위해 살집을 불려온 황어가 임재범은 아닐는지.

고향이라는 알지 못할 인연하나로 임진강을 찾아든 황어처럼

 10년이라는 공백을 딛고 노래라는 본능의 몸부림으로 도달한 모천,

그리고 성취 혹은 정상. 임재범이 충분히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엊저녁 모임이 있었다.

뒷풀이 술이 익는다는 후배 전화에 참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청연사였던 시인이 임재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느낌은 같은 것이어서 물론 감동이었다는 말. 진지한 강연과 시적 상상력에 놀랐던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손을 번쩍 들었다.

“임재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대중문화와 클래식의 간극에 대하여 시인께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요.”

“... 이제, 경계가 모호해 졌지요.”

내가 들은 답이 그렇다. 아니, 애당초 어던 인위적 경계 같은 건 없는지 모른다.

임재범 노래를 들은 회원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 가수의 일상에  대하여 소상하게 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별 인연 없던 임재범은 뒤풀이까지 따라 붙었다.

 

자카란타 보랏빛 꽃잎이 난분분 내리던 그 봄밤은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한 날이었다.

술이 익는다는 약속 잘 지켰던 후배와 헤어지며 하늘을 보았다.

 또 언제 인연이 있어 임재범의 노래를 들을지 몰라도

핏빛 처절한 소쩍새처럼 온 몸으로 불렀던 노래는 기억 할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 거친 물결 거슬러 기어이 모천 회귀했던 황어처럼.

 임진강에서 천렵을 하던 사내의 억센 손아귀에서 퍼덕거렸던 황어.

 어차피 부화를 하면 줄을 몸 아닌가? 일생 한 번은 영롱한 광휘를 꺼내 놓는 목숨 건 몰입이 그래서 필요하다.

 

 

얼굴은 달라도 감정은 같다. 사람이니까.

 우리 산악회 홈페이지 음악감상실에도 임재범의 노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했던 그 감동 속으로 빠져 보기를. 그래서 그대들 눈 맑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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