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유게시판

조회 수 644 추천 수 0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첨부 수정 삭제




우수 경칩이면 동면중인 개구리도 기지개 펴며 폴짝 튀어나오고 얼었던 대동강도 풀린다는데 그 개구리 다 얼어죽고 대동강은 다시 얼어붙었겠다.
이게 다 인간들 때문이다.
한겨울에도 집에선 난닝구 바람으로 딩굴고 지엄하신 왕도 못 먹었던 딸기 참외가 흔한 것이 모두 인간들의 잔머리 때문이다. 모든 동물 중 비 온다고 우산 쓰고 나가는 동물이 유일한 사람인바 우리는 그걸 문명이라고 부른다.

문명 좋다.
그러나 그 빛나는 문명 덕에 이상기후가 생겼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대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똥꼬에서 폴폴 나오는 이산화탄소 때문인지 겨울을 여름처럼 사는 화석 연료 덕분인지 엘니뇨는 만들어졌다.
엘니뇨는 자연이라는 의사가 청진기를 대면 암 같은 존재다.
그것도 불치의 암.
하여 개구리 얼어죽는 한국뿐 아니라 그대들 사는 엘에이에도 유래 없는 물난리가 그걸 증명한다.  

그래서 3월 설악산에 사상 유래 없는 폭설이 내리고 온도가 꺼꾸로 곤두박질 쳤다.
이상기후를 내가 걱정해서 될게 아니고 보면 나 역시 사람이니 잔머리가 팽팽 돌았다.
설악산 하면 雪산 아닌가.
가자! 눈 세상으로.
다시 겨울이 와야 구경 할 수 있는 올 마지막 눈인데.

확인해 보니 그 눈 때문에 산불 염려가 없어 어제 입산금지가 풀렸고 눈 녹는 봄철이면 일정기간 출입을 금지시킨단다.
마침 엘브루즈 대원인 이은숙씨도 서울에 다니러 와 있었으므로 실전 훈련도 될 터였다.
임흥식씨는 다른 약속 때문에 불참했다.
유성모씨는 간다고 했으므로 총 네 명을 예약했다.

출발 몇시간을 앞두고 유성모씨도 불참을 통보해 왔으므로 이형철씨를 포함하여 세 명으로 줄었다. 평생원쑤 고마운 유성모씨 덕분에 그 안내 산악회 리더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왜냐하면 서울에서 밤 열시에 떠나는 설악산행 전문 안내 산악회 버스를 타고 보니 유성모씨 한자리 빼놓고 만원이라 그랬다.

스페츠 아이젠으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이마에 해드램프를 켜고 무슨 무장 공비 침투처럼 오색에서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그믐밤 겨울 하늘 별들이 성큼 가까웠다.
기온이 장난이 아니다.
설악은 눈 풍년을 맞았다. 램프에 비치는 나무마다 눈꽃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길은 빙판이었고 그 위에 신설이 덮혀 무척 미끄러웠다. 등산로 표시는 눈 에 묻혀 겨우 머리만 내밀고 있다.

고도를 높이며 추위는 더 심해졌다.
장갑을 두 개나 끼었는데도 손가락의 감각이 없어진다. 노출 된 양 볼에 날카로운 비수 같이 찬바람이 파고든다. 그래도 격렬한 운동이라고 땀이 나니 금 새 사람들 입가와 머리에 설화가 피었다. 물병은 이미 얼어붙어 고체가 되었고 볼과 손가락에는 초기 동상 증세 비슷한 아릿한 아픔이 밀려왔다.

대단한 추위였다.
고어택스 자켓도 얼음으로 서걱거리고 발가락도 시려 온다. 원래 이런 산행에 경험이 많은데도 몸이 고물이 되어 가는 증거인지 날씨 탓인지 산행 자체가 무척 고통스럽다.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은 설악에는 일행들의 해드램프 불빛과 하늘 별빛만 살아 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여명이 밝아 온다.
마지막 깔딱 고개를 넘어서면 대청봉인데 추위는 더 심해졌다. 멀리 동해 바다와 속초시내의 전등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청봉 정상에 부는 바람은 미친 바람이었다.
증명 사진을 찍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은숙씨의 표현대로 살려면 대청봉 넘어 중청 산장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얼마나 차갑고 강한지 맞바람을 피해 백 스텝으로 중청산장 쪽으로 내려섰다.
중청산장에 도착해 이은숙씨 얼굴을 보니 양 볼과 코끝이 빨갛게 부풀어 올라 동상 초기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곳에서 따끈한 컵라면을 먹을 기대는 틀렸다.
폭설과 추위로 샘터가 얼어붙어 물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낙뢰로 통신 수단까지 엉망 이 되어 버렸다는 데 얼음을 녹이려면 기름을 때야 하는데 그 기름값이 라면 값보다 비싸다는 말이다.

산장 직원은 우리의 하산길인 천불도 길을 막았다.
아예 길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해외 원정을 꿈꾸는 30여명의 산악인 훈련대들도 산의 반대편인 천불동 양폭산장까지 밖에 못 올라 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틀이 걸렸다 했다. 따라서 중청산장에서 양폭산장까지는 미답의 길로 바뀌었고 누구도 안전을 책임 질 수 없다고 막아 선 것이다.

궁금해서 물어 보니 영하 25도라 했다.
거기에 바람까지 불었으니 체감 온도는 분명히 그 이하였을 것이고 내가 본 동상 초기 증세는 당연한 것이다.
다시 그 끔찍한 바람이 부는 대청봉으로 올라섰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마땋히 그리 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양이 떠올라 햇빛을 생산해 내는 것이었다. 예전에 히말라야에서 느꼈던 감정이 오롯히 살아났다. 얼마나 햇볕은 고마운 것인가. 동터 오기 전 가장 춥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붉은 태양의 여명으로도 심리적으론 많은 위안이 된다.

다시 대청봉에 섰다.
태양이 떠오르니 확실히 기온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포기한 정상 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둘렀다. 확실한 햇볕에 정상 부근은 그야말로 설국을 이루고 있었다. 눈의 천국이었고 눈꽃의 천상이었다. 가문비나무와 주목 가지에 피어 난 빙화 혹은 눈송이들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나무 등걸 한쪽으로만 붙은 흑백의 형이상학적 모습을 감상 할 수 있음은 마음의 여유를 다시 찾았다는 증거다.

내려오는 길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엉덩이 글리세이딩으로 미끄럼을 타다가 넘어지며 오색으로 다시 복귀한 시간은 산행 출발 8시간 만이었다.
오색 온천 목욕을 마치고 바라보는 설악의 서북 주릉과 대청봉은 밤 새 우리가 겪었던 사투를 짐짓 모르는 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아름다움은 아픔 끝에 있다는 시인의 말은 참 좋은 표현이다.
  • Edward 2005.03.14 07:45
    부럽다.
    이주째 산에도 못가고 썩고 있는데...
    오늘 아침도
    별 보고 나간다.





  • john kim 2005.03.14 15:51
    반가워요 서울팀 대청의 사진을 보니 추운산행을 실감 함니다 작년도 설악산 4 번 다녀왔으나 가도가도 가고싶은 곳이 설악산인것이......13 일 일요 온천 산행 도로 차단 때문....deep Creek [소방도로 끘애서 신선;;;;;점심 ,,,,,,도라오면서 Basin flat 경관이 매우 인상적이였슴,
  • 이 준해 2005.03.14 22:11
    영철이, 형철이, 그리고 은숙아우 좋은 그림에 좋은글 올려줘서 고마우이. 부럽구먼요....
  • 날라이쥐나 2005.03.18 13:40
    은숙언니화이팅.... 멋지다..아줌마 같지 않은 철없는 아줌마...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