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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악회 언론을 주관하는^^ 후배 고(병권)기자가 물었다.

선배, 발디 봉 시리즈 7편은 어제 쓸 거요? 쓴 다면서요?

역시 기자는 징그럽다. ㅎ


그 압력을 기억하기에 올 마지막 12월 2일 오른 발디봉 홈 웍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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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일 것이다.

아버님이 지어 준 거룩한 이름답게

평생 영~철 읍씨 살아왔으니 아버님 혜안으로 지은 이름 뜻에 충실한 효자가 맞지 싶다.

 

그러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났듯 효자에게도 시간은 공평한 것이어서 속절없이 2018년이 지고 있다.

천천히 가는 것 같은 시간이지만, 말 그대로 화살같이 흐른다는 속도를 실감나게 깨달은 것이 지난 주말이었다.

201812월 첫 주말, 산 닮은 회원들과 발디봉을 오르며 그걸 알았다.

새해 첫 산행이 이곳이었는데 오늘이 송년 산행이라니...


이민 초기에 산악회 선배들 따라 처음으로 머리를 올렸던 MT 발디  

그때처럼 어둑새벽에 회원들과 만나기 위해 10번 프리웨이를 달렸다. 12월은 한 해의 끝자락이라서 그럴까? 시나브로 가는 인연이 아쉬워선지 동녘도 한참 늦게 물든다. 7시를 넘어 210번 프리웨이로 갈아 탓을 때 붉은 여명이 비로소 시작되었다붉게 물든 하늘은 하루가 시작된다는 장엄한 울림이었고 그 끝에 오늘 올라야 할 MT 발디가 우뚝 서있다.

 

샌 개브리얼 산맥의 많은 봉우리들 속에 발디를 콕 집어 낼 수 있는 내 능력은 간단하다.

겨울이면 썰렁한 색감의 산들 속에 발디만 하얗기 때문이다. 많은 산들 중 홀연히 정상부에 눈을 쓰고 나타나는 발디. 그렇기 때문에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없었다면 고만고만한 많은 산들 중 발디를 특정할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발디라는 은유대로 민둥 대머리정상이 홀로 하얀 것은 샌 개브리얼 산맥 최고봉이며 고도가 백두산보다 높아 무려 3000m가 넘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으면 기온이 낮고, 그러므로 LA겨울은 마운틴 발디 산정에 가장 먼저 먼저 오는 법이다.

 

나는 하얀 발디를 보고 있으나 210번 도로 주변은 눈과 관계가 없는 풍경이다.

겨울 발디를 올라 본 사람들은 안다. 겨울 산은 냉정하다. 어제 온 비가 높은 고도, 낮은 기온 덕에 발디에선 눈이 되었다. 아마 등산로는 빙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준비가 없이 겨울 산행을 시작한다면 골고다 언덕인 것을 누구든 금방 알게 된다. 마음속으로 배낭에 챙겨 넣은 겨울 산행 장비 점검을 시작했다. 크렘폰은? 스페츠는? 여분의 옷은?

 

나는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고생 끝에 있다는 말을 믿는다.

그러므로 올해가 저물고 있는 12월 처음으로 눈과 만나는 발디 품속에서 고생을 하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눈은 커지고 정신은 맑아졌다. 만남의 장소에서 조우한 산악회원들 역시 나와 같은 기대를 했을 것이다.

 

발디 속살을 파고들며 본격적으로 오름짓을 시작했을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거친 몸짓을 요구하는 우리 오늘의 등산은, 누군가 간절하게 원했던 하루 일수도 있다. 일에 쫒겨 마음만 오르는 사람, 정수리가 허연 발디가 보이는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우리가 두 발로 발디 속살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권력이 우리처럼 발로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명예가? 돈이?

 

유치한 인용이지만 스티브잡스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말했다.

난 돈이 넘치는 성공한 사람이지만 나대신 병상에 누워 줄 사람이 없다.

물론 그 말은 건강을 강조하는 단순한 수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발디 봉을 오르며, 고도를 높일수록 낮아지는 주변 산과 세상이 한 눈에 든다. 구름은 변덕스럽게 발디봉 근처를 오가지만 우리는 이미 그 구름 위에서 오름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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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은 뭐야? 처음 보는 그림. 눈 아래 펼쳐진 그림은 한국의 진경산수화가 맞다. 발디는 운무를 불러 들여 굉장한 천지창조 흉내를 내고 있다. 이 산을 수십번 올랐지만 처음 보는 풍경이다. 맞다. 한 번 올랐다고 발디 봉을 다 아는 것처럼 나 갔었어하는 건 유치하다. 산은 계절에 따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비와, 눈과, 바람과, 기온과, 저녁과, 밤에 따라 산은 언제나 상황이 변하며 그 모습이 다르다. 그러므로 발디를 백번 올라도 언제나 처음일 수밖에 없는 법. 그러고 보면 사람의 짧은 일생이 발디를 감싸고 도는 짧은 구름의 조화와 같다.

 

천지창조를 연출하는 엄청난 시청각 발디를 오르며 자연과 합일이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에게... 주변의 박수를 받고 영광스러웠던 기억들은 얼마나 유치한 가. 사람을 미워하고 그래서 스스로 아파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부끄러운가. 눈앞에 수정고드름을 달고 있는 파인트리는 상대적으로 곧 사라질 내 인생보다 얼마나 오래 이런 풍경을 지켜 낼 것인가.

 

산에 들면 느끼는 즐거움에 올해 마지막 발디 산행이라는 의미가 더 해져, 나 스스로 고양된 지도 모른다.

크렘폰이 눈에 찍히는 뽀드득 거리는 리드미컬한 울림이 모든 게 얼어붙은 순백의 세상에서도 살아있음을 실증적으로 느끼게 한다. 쉽지 않을 겨울 발디 산행. 아직 두 발로 이런 고봉을 오를 수 있음에 나는 정말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아름다움은 왜 고통 끝에 있는 걸까? 이것 좀 보아! 이런 풍경이 존재할 수 있는 거야? 어어, 이 크리스탈 닮은 무수한 얼음방울들. 이게 돈 들여도 만들 수 없는 크리스마스트리잖아. 고도 만 피트를 넘기며 우리는 수다쟁이가 되기 시작했다.

눈 아래 피어오르는 구름은 아주 오래전 본 천지창조 성경 영화 장면을 닮았다. 나무 가지마다 얼음 방울을 단 이유는 어제 내린 비 덕분이다. 그러므로 산속에서는 기온과, 비와, 바람이 합작을 하여 단 한번 존재하는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름에 이런 비가 내렸다면 크리스탈 닮은 얼음 방울이 생길 리가 없다. 이 겨울, 발디에 비가 없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있는 이런 형이상학적 풍경은 이때만 볼 수 있다. 똑 같은 그림은 아마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행복하다는 느낌은 나 홀로의 느낌은 아니었다. 초록 숲과 여름의 뜨거운 한낮에 이곳을 오르내린 회원들 역시 그럴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발디가 초대해 준 설국 속 주인공이 되었다.

 

자네 그거 알아? ? 우리가 오늘 발디 정상부 파인트리 가지에 매달린 크리스탈을 빙화(氷花)라고 해. 비가 올 때 기온이 급하게 내려가 얼음 방울이 된 거지. 습기가 스멀거리며 피어올라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건 상고대라 하고. 상고대는 순 우리말이야. 사전에서는 상고대는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라고하지. 작년에 우리 상고대 꽃밭을 오르며 행복했었잖아. 설화(雪花)로 불리는 눈꽃은 또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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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겨울 산 하얀 꽃 풍경은 이름이 많기도 하다. 얼음 방울이 달린 나뭇가지를 스쳐 오를 때는 맑은 크리스털 울림이 들리는 듯 했다. 고도를 높이며 눈 아래 내려다 보이는 초록 세상은 딴 나라 풍경으로 보였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정말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몸을 날릴 것처럼 정상부엔 몹시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정상이 눈앞이지만 포기할 까? 힘들어 오르지 않는 행위도 버릇이 된다던가? 그런 묵시적 약속이 있어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리 9명은 정상에 올랐다.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이 마운틴 아이언 쪽에서 분다. 과연 쇠 바람이다.


증명 사진을 찍는 사람 몸도 흔들린다. 성큼 내려와 바람이 멈춘 안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때도 산 아래에선 바람을 타고 구름이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산악회는 무던히 발디를 많이도 올랐다. 그러나 이 시간, 이 순간 눈앞의 풍경은 내가 알던 발디가 아니다. 그건 말 그대로 불교 용어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었다. 나는 날마다 새로웠을 그 풍경 중에서도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무릇 모든 것은 변화해 가며 잠시도 같은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건 상식이지만 그걸 눈으로 확인하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속지 않는다. 오늘 본 풍경은 다시 오지 않음을 잘 안다. 그래서 꿈이나 환영이나 허깨비처럼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제행무상이라는 단어는 탁견이었다.


 20년을 넘게 오르 내린 발디. 오를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풍경을 보여 주었다. 발디는 나의 마음속 산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산을 마치자 검푸른 창공에 우뚝한 하얀 발디 정상이 꿈처럼 하늘에 떠 있다. 우리는 저기를 올랐다. 그리고 아래 세상을 보았다.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목표를 이룬 내가, 우리가 얼마나 대견한가. 앞으로도 목적한 산 정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포기는 버릇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정상은 아무런 색깔이 없는 스스로의 만족이니까.

 

나는 세상을 흔들리며 살고 있지만, 한 곳에 붙박이처럼 우뚝한 발디를 닮고 싶다.

마음 속 변하지 않는 산정이 하나 있음으로 나를, 우리를 부르지 않더라도 찾아 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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