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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매티슨의 책 '신의 산으로 떠난 여행'을 보고 있어.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라 진도가 안 나가지만 다른 히말라야 순례집 책과는 느낌이 달라.
그 인간은 일기 형식을 빌려 책을 엮어 냈지만 이건 참 아름다운 산문집이야.
1978년에 썼으니 1985년 그 길을 따라 다울라기리를 간 나와는 7년 차이가 나네.
책에 나오는 '다르방'이라는 마을까지지만.
그는 깊은 깔리간다끼 협곡의 속살을 더듬어 길을 떠났지만 강보다 더 깊은 자신의 내면으로의 여정이었더군.

번역은 창작 보다 어렵다던데 적절한 어휘를 선택해준 역자에게 감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고.
사진을 제공한 송세언씨가 늦깍이로 히말라야 순례에 열을 올리는 내가 아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에 반갑기도 했고.
네팔에서 장난스레 받은 띨띨한 뛸구라는 별명을 반납해야 했던 이유도 나오네.
튈구 혹은 뛸구는 역시 환생자였어.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달라이라마도 뛸구였지.
감히 그런 대덕 고승의 이름을 희롱하다니...

10월 15일 티베트산양을 만나다. 라는 꼭지를 읽으며 나도 다울라기리 산록에서 보았던 무수한 산양의 기억을 떠 올렸어. 아침 흰산이 황금 햇살에 반짝이면 베이스캠프 근처 초지에 그 산양들이 나타났거든. 고소증에 지근거리는 눈으로 보아도 참으로 여여로운 풍경이었지.
작자가 히말라야를 찾은 이유는 눈표범을 보기 위해서였지.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았어.
가죽 뿐이엇지만.

베이스캠프에 고용되었던 한 허풍쟁이 포터가 호랑이와 싸워 이겼고 그 가죽을 벗겨 자신의 양탄자로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 팔과 허리에 난 긴 상처 자국을 보여주면서.
당연히 순 뻥이네 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하산 캬라반 중에 그 포터 마을을 지나는데 무시당한 게 화가 났던지 그 가죽을 가져 온 거야.
호랑이과는 분명한데 좀 작았어.
설표라고 부른다고 했어.
그러니 눈 표범이 맞지!

세퍼트 보다는 좀 컸지만 호랑이 보다는 분면 작았어.
그러니 이 포터가 목숨 걸고 싸운 전투에서 이길 수도 있었고.  
그때서야 자세한 그의 무용담이 귀에 들어오더군.
카르카, 여름 히말라야 방목장 야크를 돌보고 내려오는 길에 설표의 습격을 받았고 서로  얽혀 딩굴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대.
운 좋게 바닥에 깔려 쿳션 역할을 설표가 해준 탓에 인간은 대단했다는 이름을 남겼고 설표는 가죽으로 남았지.

나보고 사가라고 말했지. 가격도 아주 저렴했고.
당연히 살려고 했지. 잘 세탁해서 내 거실에 깔아 놓고 개다리 소반에 술상 놓으려는 생각이 구체적 그림으로 떠올랐거든.
못 샀어. 아니 안 샀지.
동행했던 정부연락관이 국가보호종이기 때문에 반출도 안될뿐더러 만약 적발되면 감옥에서 한 오 년 썩어야 된다는 거야.

피터 매티슨의 책을 읽으며 퍼즐이 맞춰지네.
산양을 먹이로 생각하는 눈 표범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각성.
해발 오천미터쯤 생물 한계선과 무생물의 경계에서 여유롭게 보였던 산양.
내가 자유의 표징처럼 부럽게 바라보았던 산양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는 각성.

11월 27일 인생은 거의 같은 지점에서 끝난다. 라는 꼭지는 선문답처럼 생각들지?.
그 제목에선 짙은 가을 냄새가 난다.
가을이 아닐랄까 봐 하늘이 점점 깊어지고 있어.
어제는 우란분절, 백중이라 경주 남산 보름산행을 갔다왔지.
큰 마음 낸거야.
그렇게 실속없이 빠쁘거든.

백중 혹은 우란분재는 절집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큰 명절이지.
부처님 수제자 목련존자의 어머님 영가를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동국세시기에 있어.
그런데 티벳에서도 그런 설화를 들었거든.
불심이 없는 어머님이 지옥에 있는데 그 어머님을 위해 라마가 된 아들이 육자진언을 만들었다데.
무식한 어머니 외우기 쉽게 '옴마니받메훔'이란 육자진언을.
그 진언만 세 번 독송하면 된다는 이야기야.
해피앤딩이고.
그 날이 백중이지.  

남산 고위봉 정상에서 이승에서 인연이 있었으나 흔적이 없어진 그들을 위해 나지막하게 육자진언을 외웠어.
한철 살다 가는 초목의 옷 벗는 준비를 보며 조금은 쓸쓸해지고 조금 허허로워지는 느낌.
내 감정 따위와는 관계없이 숲은 위대한 뛸구야.
내년 봄에 환생 할 것을 믿는 까닭에 더 그렇다.

불심 깊지 않는 나같은 인간을 위해 하늘이 단 한번 열린다는 백중 아니냐.
신 새벽 첫 비행기로 일터로 돌아 오며 조금은 행복했어.
만파식적 혹은 보름 산행은 나를 아주 부드럽게 해주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 자양분이거든.

남산 속은 이미 가을이 깊더라.
초록은 꽃보다 아름다워 어쩌구 저쩌구.
혀 짧은 말들이 자연의 이법에서 보면 찰라적인 감정 일뿐이라는 느낌의 재발견.


그런데 옘병. 왜 이렇게 하늘은 푸르냐.  
  • Edward 2004.09.09 15:38
    5박6일 동안 좋아하는 선배와 Yosemite를 헤매다왔어 !
    Half Dome을 중앙에 놓고 동, 서, 남, 북으로 Trail을 하고 왔다.
    이젠 Yosemite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Half Dome North Fast를 2박3일 동안 클라이밍하는 후배들에게 물과 먹을 것을 줄려고
    Half Dome을 두 번이나 올라 갖다 왔어,
    몸은 고달프지만 후배들을 보면 자랑스럽다.
    언젠가 나도 큰 바위를 한번 하고싶어서 기술자가 되기로 했다.
    내년에는 후배들과 일주일간 California Fourteeners 힘든 곳 네 다섯 군데를 오르려고 준비중이야,
    시간 많아서 놀기도 힘든다.
    왠 말들이 많은지.....
    깡통 열심히 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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