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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등뒤로 펼쳐진 눈덮힌 시에라 산맥.

그렇게 산에서의 아침이 밝아오고
서둘러 준비한 아침식사로 밥을함께 말은 우거지국을 끓여 한술씩 뜨며 밤새 얼은몸을 조금 녹였다.
산에서 돌아오면 바로 출발할수있게 텐트등 모든 짐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리되고
드디어 김준석 선배님의 출발을 신호로 모두들 뒤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풀한포기 없는 고산의 아침해는 순식간에 떠올라
약간의 남아있던 어둠마져 걷어내 버려 조금은 상쾌한 기분으로
아직은 여유가 있어 가끔씩 눈을들어 주위를 바라보고 특히나 등뒤로 펼쳐지는 시에라 산맥의
눈덮힌 산들의 정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산을 오르며 이미 조금씩 숨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워낙 처음에 주의를 많이 받은터라 의례히 그런듯하여 아직은 견딜만 했다.
얼마를 갔는지 그 고산지역에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분교인듯한 건물들이 서있고
그곳에서 잠깐 쉬면서 김선배님의 마지막 주의사항이 있었고
지금부터 또 다른 고산증세들이 올수있다는 얘기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증세가 오면
바로 하산을 하는게 좋다는 등의 주의사항들은 나에게 또 다른 긴장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쨌든 아직 숨찬것외에는 특별한 고산증세가 없어
앞장을 서시는 김선배님의 뒤를 바짝따라 선두그룹과 함께 출발을 하였다.
말씀으로는 지금 출발점이 12,000ft 이고 지금부터 13,000ft 정도를 오르락 내리락 두세번을 한다고 했다.
오르기에 그리 높은경사는 아닌 산등성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왼편 시에라 산맥에서 불어오는 'Windy 15'의 바람은 살을 에이는듯하여 두시간여의 산행으로
이미 왼쪽팔과 왼쪽귀는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가고 특히 왼쪽귀는 부실한 털모자로 인해 떨어져 나가는듯하여
왼손으로 막고는 있었지만 그 왼손또한 얼어있어 바람을 피할 장소조차없는 그져 황량한 산등성이에서
순간적으로 '뒤돌아 가면 이제부터 오른쪽으로 바람을 맞을수 있는데...돌아갈까?' 생각은 하면서도
그져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은 앞으로 앞으로 디뎌지고 있었다.

가장 앞서걸으시는 김준석 선배님의 버겁게도 빠른 발걸음이 야속해질무렵
항상 선두그룹과 함께 산을 오르시는 샌드라백누님 마져도 힘에겨운듯 김선배님께 천천히 갈것을 요청하시고
말한마디 못하고 그져 따라만 가야했던 나로서는 그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하지만 그런 배려도 잠시, 김선배님의 발걸음은 또 빨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끌려가듯 새들까지갔고 그곳에선 칼바람이 좀 자는듯하여 다음 오를것을 대비하여
배낭덮개를 꺼내 머리에 씌워 귀를 덮었다.  꼬불꼬불한 배낭의 고무밴드가 꼭 미장원에서 파마를 할때
뒤집어 쓰는 캡인듯하여 힘든중에도 '풀석' 웃음이 나왔다.

앞쪽으론 Mt. White의 정상이 보이고 수를 셀수없는 스위치백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우린 그 길을 또 가야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14,000ft에서 오는 고산증세가 있으니
자신의 몸을 다시한번 살피면서 아주 천천히 걸으라는 주의사항을 주시고 정작 당신은 횡하니 걸음을 옮기신다.
자! 가자. 이제 1,500ft만 더 가면 된다.  힘을 내자. 바로 눈앞에 정상이 펼쳐져 보이니 훨씬 오르기 쉬울것도
같았다.  그런데 그 또한 착각이었고 사실은 그곳부터 눈에 빤히 보이는 정상까지 2시간여를 가야하는 가장
어려운 코스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정말 숨이 차올랐다.
발 한걸음에 한번씩 숨을 쉬어도 폐에 들어오는 산소는 넉넉지를 않고
천천히 리듬에 맞추어 걷다가 자칫 돌부리에 걸려 걸음이 흐트러질라치면 어찌 그리도 숨이 차오르는건지.
나는 도저히 나를 믿을수가 없어 '한번 뛰어볼까? 어찌되려나' 하는 만용마져 생겨나고..물론 시험해보려는
엄두는 내질 않았으니 그 또한 다행이던가.

이미 선두와는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선두를 따라잡는다는건 도져히 불가능하다는걸 절실히 느껴
난 이제 혼자서 내 스스로의 호흡과 견디고 달래며 한발씩을 내딛고 있었다.  
오로지 땅만보고 한참을 걷고 또 걸었고,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정상을 가늠하는데 갑자기 '핑'하며
하늘이 빙글도는듯 했다.  어지러움증..고산에서 생긴다는 증세중 하나...어지러움증..그것이 나에게 왔다.

이제 정상까지는 불과 500ft정도 남은듯 한데 한발씩 떼어놓는 발걸음은 천근이었고
입은 한껏 벌려 조금이라도 산소를 더 마시려 안간힘을 쓰고있었고 넉넉지않은 산소에 내 심장은 이미 고동을
시작하여 '퉁 퉁' 나의 귓전에까지 울림이 있었고 더 참기 힘든것은 한걸음을 내딛을때마다 빙빙도는
어지러움증이었다.  이를 어찌해야하나.  그대로 서있어도 호흡은 한껏 거칠어져 있고 심장이 나의 머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걸음을 떼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지러움증.

이런 현상이 너무 어이가 없었고 믿을수가 없어 난 실험하듯 또 확인하듯 발걸음을 띄었다.
사실이었고 또 사실이었다.  하지만 난 믿을수 없었고...또 걸음을 떼곤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믿어선 안된다는 어거지를 쓰며 계속된 실험으로......그리고 40여분후..

난 정상에 섰다.

이제 모든것은 지나간듯했다.
그리도 차올라 날 괴롭히던 호흡도 괜찮아 졌고, 어지러움증도 거짓말처럼 없어져버렸다.
그렇게 난 기분좋게 정상에 서있었고 앞으로 지금부턴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는일만 남았다
그런데.. 내려가는것이 올라올때보다 더 힘든다는걸 분하게도 다 내려와서야 알았다..
아니 지금도 올라선것만 생각하고 싶고 내려오던 길은 생각하기도 싫을정도로 길고도 지루한 하산길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없는 인생길은 몇구빈가..아니 하산길은 몇구빈가.
나만 이랬던가 싶어 몇분께 여쭤봤다.  하산길이 어쨌었는지요.
모두들 손사래를 치신다.
하지만 뭐..지금에와선 나보다 더 고생하신분들이 계셨다는걸 알고는 그져 하산길이 조금 길었었읍니다 라고
표현하는걸로 등정후기를 맺고싶다.

(제가 하산길의 후기를 이렇게 지긋지긋하지 않게 간단히 맺게해주신 세분 여자회원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하산후 다시 길을잃고 6마일 밤길을 더 걸으셨던 세분...다 괜찮으시죠? (^_^) )

그런데..지금 왜 위트니산행이 기다려 지는걸까...고생을 아직 덜했나?
  • 태미 2005.11.18 11:14
    필립씨!
    수고 많이 하셨어요. 좋은사진, 음악, 그리고 산행기까지..
    더구나 정상까지 올라가시고.. 다음에는 썬블락로션 꼭 잊지마세요.
    그리고 그렇게 부러워하신 김명준선배님 텐트..제가 살려고 양보 못했네요!
    힘든산행이었는데 정말 축하드려요!!!
  • 민디 2005.11.18 20:05
    살짝 심통이 또 날려고 하네요.
    회원들의 두가지 부류가있는데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꼭 정상까지 가는 내숭형,
    그저 묵묵히 말 한 마디 안하고 그저 가야 하는 곳 인줄 아는 철인형 이 있는데,
    전자는 태미와 필립이고 후자는 샌드라 같은 유형이니라.
    위트니 갔다와서리 또 내숭 떨면 정말이지 알아 보겠음메!!!
    구도자들이 길 떠나는 위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누구려 보려고 함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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