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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향(茶香)은 축복이다

민디 아줌씨의 포장마차 일품 요리를 읽고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걸쭉한 입심에 비하여 마음 씀씀이와 생각은 여린 민디 보살님.
맛있게 식사 한 후식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 건, 이 글을 쓰며 차를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찬란한 햇빛이 차르르 차르르 내리는 한국 전형적 가을이다.
매년 맞이하고 보내는 일상적인 가을이지만, 올 가을을 맞은 느낌은 무엇인지 다르다. 그렇게 지난 여름은 비가 많았으며 길고 덥기만 했다.
녹차를 한잔 우려내고 책상에 앉았다.
손안에 잡힌 찻잔의 따사로움이 좋다.
끈적거리는 더위에 진저리치던 여름이 언제 있었던가?

깊은 가을 속에서 나는 혼자 봄을 마시고 있다.
초록 아가 손을 무시로 흔드는 차밭의 봄은, 이렇게 내 손안에서 되살아난다.
겨울을 눈앞에 둔 계절에 봄 생각이라니.
내가 마시고 있는 이 여린 차는 곡우(穀雨)전에 딴 여린 찻잎이다. 이제 곧 시작 될 춥고 어둡고 하얀 겨울을 지낸, 차나무들의 작은 새싹들로 만들어 낸 차다.
그리하여 이름도 우전(雨前)이다.

전라도 보성 어디쯤엔가 있는 그 차밭을 가 본적이 있다.
자연의 놀라운 역사에 봄눈을 뜬 나무의 여린 촉을 만져 보았는데 그 촉감을 표현 할 길 없다. 부드럽고 투명한 느낌이라 할까. 아주 가볍게 쓰다듬는 손가락을 타고 찻잎 여린 새순의 순결한 느낌이 온 몸으로 퍼진다. 어린 아기 젖살 오른 볼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차이랑 사이 광활한 차나무 숲은, 수액을 길어 올려 여린 잎새에 공급하느라 바쁜데도 여전히 고요롭다.

이 한잔의 찻잔 속, 찻잎을 위하여 봄볕에 얼굴 그을리는 줄 모르고 농심들은 바쁜 품을 팔았을 것이다. 여린 촉을 틔운 차이랑 사이로, 하루가 다르게 억세져 가는 찻잎을 따내느라 그들은 건강한 땀을 흘렸을 터였다.
봄 찻잎 채취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봄기운을 놓치지 않고 자연의 시간에 맞춰 작업을 끝내야 한다. 햇볕이 더 뜨거워지기 전, 한올 한올 따내어 정성껏 덖어 내야 한다.
그러므로 내 책상 앞의 차(茶)는 단순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누가 그랬던가? 차는, 하늘과 땅과 사람의 정성이 조화를 이룬 천지인(天地人) 자연의 빛나는 결과물이라고.

찻잔에서 한줄기 김이 하르르 오르고 있다.
깊은 다향이 나를 감싼다. 이 향 때문에라도 나는 녹차를 고집한다.
내가 생각하는 향기 예찬은 좀 더 형이상적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향기를 설명하려면 퍽 어렵다. 파르라니 찻잔을 맴돌아 오르는 김과 더불어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다향은 정신을 부드럽게 깨워낸다. 차 향기는 강렬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차향은 사람을 여여롭게 만든다.

차가 주는 향기는 일견 똑 같다고 생각 들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그 차를 만들 때 강우량과 일조시간, 그리고 온도와 채취 시기 등이 똑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덖어 내는 과정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조건도 다를 것이다.  
와인 역시 그런 감별법이 필요하다.
  
차향도 감상의 대상이고 보면 후각에 다가서는 향을 놓고 여러 그림을 그려내는 일이 가능하다. 코 가까이 대어 보면 다원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감미롭고 난 꽃향기 닮은 향이 있는가 하면 농염하게 익은 장미의 달콤한 향도 있다. 쟈스민 향이 있는가 하면 과일 향도 있다. 작은 찻잔에 가득 찬 향기와 코로 하는 대화는 늘 즐거운 일이다.

문득 차에 있어 '향이 영혼이라면 맛은 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향과 맛의 출발은 찻잎에서 같으나 결과에 있어 다르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차 향에서 풍기는 감미로운 느낌은 실체가 없는 형이상적 느낌인데 마신다는 행위는 현실이다. 다향에서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데, 차를 마실 때는 그 맛에 골몰한다.

따듯한 것이 좋아지는 한국은 이제 겨울로 가고 있다.
한 잔의 차를 우려 놓고 지난 봄을 추억하며, 벌써 이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세월의 흐름을 생각한다.

사진: 본인이 궁민 건강에 좋다는 차를 보급하기 위하야 엄청 팔아 묵은 '치상배'다. 너무 많이 팔아 묵었나 아님 딴 생각하느라 신경을 덜 써 그랬나, 우찌되었던 썰렁이다. 필요 한 사람 말해라. 다 준다.
  • 가을여자 2005.10.25 23:12
    다음에 올 때많이 가져 오세요. 회원들 하나씩 사용케 하면 건강도 좋아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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