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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산 김동찬과 한잔 한 날이다.
미국으로 들어 가는 착한 아우에게 작설차를 대접하지 못하고 곡차만 먹여 댄 것이 못내 마음 시리다. 그러나 차를 한잔 같이 한적이 있다. 이 아래 말한 춤추는 산 이라는 글에서와 같이 경주를 갔을 때 이야기다.
지인의 찻집에서 차를 마실 때 나는 중산과 오를 남산 보름달을 보았다.
나와 같이 보았던 경주 남산 보름달만 그믐 같이 이즈러졌다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세옹지마라 하던가.
인생도 그렇게 이즈러 지기도 하고 둥글게 차 오르기도 한다는 고사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노랗게 익은 보름달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나 여여로운 느낌을 준다.
잘 우려진 작설차는 찻잔에 둥실 차 올랐다.
찻잔에 서린 설핏한 김이 아지랑이 같이 피어오른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흙에 생명을 불어넣고, 천도가 넘는 가마에서 구어 낸 찻잔이라 했다. 그런 훌륭한 도예가의 정신이 찻잔에 음각 혹은 양감으로 남아 또 하나 혼들의 노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찻잔에 노랗게, 잘 익은 보름달처럼 채워진 찻물을 본다.  

더운 김이 만드는 작은 아지랑이 사이를 비집고 문득 한 생각 떠 오른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래도 가녀리게 피어 오르는 김을 보며 자꾸 생각이 비집고 일어 난다.

그렇구나.
고뇌하며 공력을 기우 린 도예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보름달은, 아니 찻물은 오로지 그 찻잔의 빈 공간이 필요 한 것이다.  

채워지면 더 채울 것 없는 공간.
비워지면 그 크기만큼 채울 수 있는 공간.

그것은 공평하다.  
그것은 받아드림이며 긍정이며 용서며 화해다.  

무욕이며, 포용이며 분별없음으로 보아도 무방한 일이다. 세상의 어떤 이론과 괘변이 있어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가.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을 채우기에 바빠, 텅 빔의 찻잔이 주는 간단한 교훈을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무엇을 채우려 했을까.
그 빈 공간에 무엇을...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만들어진 찻잔의 예술성 높은 영감은 그러므로 본질이 아니다.
찻물이 담기는 안쪽이 아니라, 찻잔의 겉면에 머물 수밖에 없는 변주다.  
설혹 주체 할 수 없는 열정이 녹아 있다 해도, 찻 물을 받아 드리는 그 공간의 외방이니 그렇다.  

일본국에서 국가의 보물로 귀하게 추앙 받는 조선 막사발이 어떤 이유로 국보가 되었을까. 도무지 내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없다. 모나리자 미소를 보며 왜 세계적 유산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못하는 내 머리로는 설명이 힘들다.  

미사려구, 혹은 끼어 맞추기 현학적 해석을 하라면 어설프지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나의 몫이 아니다. 조선막사발이 국보가 된 이유는, 비어 있는 공간이 평가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든다.

그 다완의 유약이 흐르다 굳어 버린 그 거친 표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술적 감각으로 만들어 진 것은 아니다.  

그것들을 만든 사람들은, 사농공상이라는 질곡의 계급사회에서 보잘 것 없는 민중으로 분류 되었었다. 개를 먹이면 개밥그릇이었고, 밥을 비비면 밥사발, 술을 따르면 술사발이 되었던 조선 막사발.

우리 유년의 기억에도 볼 수 있었던 잇빨 빠진 흔한 막 사발들.

그것이 정갈한 절집에서는 향내 나는 다완으로, 고 미술품 수집가에게는 골동품으로 바뀌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 것들의 용도는 변하지 않는다.
공간은, 비웠다 채움을 반복 할 수 있다는 교훈 속에 그렇게 공평한 것이다.

2

한모금 혀 밑에 머금은 다향이 입안을 채운다.  
그 맛을, 구수하다 혹은 고소하다고 하는 표현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이 향기를 말해야 할까.

입안 가득 채운 다향 속에 얼핏 극락암이 떠올랐고, 자르르 윤기흐르던 서운암 5월 새순의 차밭이 떠올랐고, 찻잎을 가마솥에 덕고 있던 아낙네가 생각났다.  

도반들 모두 좋아했으나 나는 유독 자주 찾던 극락암이었다.
통도사 잘 생긴 송림 숲길도 각인 된 풍경이지만, 극락암은 꼭 있어야 될 곳에 자리잡은 풍경이었다.

숲을 떠나야 그 숲을 온전히 볼 수 있듯, 풍경 속 극락암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기가 막힌 장소를 나는 알고 있다.  

그곳은 본전에서 떨어진 해우소 앞이었다.
어느 봄, 뱃속 근심 털어 내고 해우소 문밖을 나서며 그걸 느꼈었다. 돌담 따라 심어진 영산홍 군락이 이 짓무른 빨강으로 피어있었고, 그 색 닮은 단청이 도드라진 일주문이 있었다.  

그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는데, 그 열린 문 뒷 공간에 본당 맞배지붕의 늘씬한 치미가 보였다.

그 뒤로 청정한 대나무 숲이 습기 먹은 봄바람에 제 몸 부딪쳐 장마 비오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뒤로 잘생긴 소나무 숯이 울울창창 서 있었고, 그 뒤로 영취산 암봉들이 운위하듯 있었고, 그 뒤로는... 툭- 터진 군청색 하늘이었다.  

이렇게 절묘한 배치는 자연과 인공도 경우에 따라서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회탈 닮은 스님이 거처하시는 원각제에서, 나는 그분 특유의 짜게 우려낸 작설 향에 매번 기분이 좋아졌었다.

그랬다. 스님이 우려 낸 찻물이 콩깍지만한 찻잔에 차 오를 때면, 어김없이 나는 달이 뜬다고 생각했다.

보름달은 날씨가 좋아야 온전히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찻잔 속은 늘 맑고, 거기에 차오르는 보름달은 늘 둥근것이다.

아니다. 찻잔 속이 기억이 매번 좋았고, 늘 좋은 날씨라는 것은 틀렸다.  
그 둥근 달이 피워 내는 한 줄기 아지랑이 따라, 이렇게 생각은 생각과 싸우며 무작정 길을 떠난다.

날씨가 좋다는 건, 구름이 없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생각이 맑다는 것은 집착을 멀리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요한 찻잔은 고요한 것만이 아니다.

이 조그만 공간에는 찻물만 고여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많은 추억이, 상념이 담겨 있다.

보름달이 그 찰랑이는 은편으로 거침없이 세상에 푸른색으로 밝히므로 하늘에 달아 놓은 밤 등불이라 했던가. 길 몰라 한 생각 더듬고 있는 중생, 눈 맑아지라고 어두운 공간을 비추는 등대라 노래했던가.  

푸르게 세상을 밝히는 차가운 등불.
노랗게 찻잔에 차 오른 보름달 닮은 원형.
달은 제 몸 채웠다 비워내기를 반복하지만 찻잔에 차를 따르면 언제나 찻잔은 보름달 모양 꽉 찬 원형이다.  

아니... 만약 찻잔이 세모꼴 혹은 네모꼴이라면 어떨까. 그 빈자리를 채우는 찻물은, 그래도 우직하게 원형으로 있을까.  
찻잔 따라 그렇게 변형이 되건 불문가지다.

그러므로 차 한잔에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게 또 허공 가르며 내려치는 죽비 공부는 아닌가.

찻잔에 가득 찬 찻물이, 그 공간을 빈틈없이 만들었다는 것을 눈으로 보았는데, 그것도 공즉시색이었다.

... 그런 걸 그리움이라 한다. 잘가라 돈오돈수를 보여준 중산아. 착한 아우. 복 밭을겨.
차 한잔이, 대뜸 시공을 넘어 그런 기억들을 불러내는 기운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움이라 이름 하는 것이다.  

사진 설명: 이렇게 찻잔을 현미경으로 드려다 보는 중산의 학구열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사진을 찍어야 했다.
  • 영순이 2005.10.26 23:42
    기니께 쉬어가며 읽어야쥐?

    수년 전 나도 열심히 물레를 돌렸다.
    손목에 아직 기운 있을때 돌린다고 잠깐 꽤 열중 했었다.
    처음 부터 도예가 까지는 바라지 않아서인지 고뇌하지도 그닥지
    공력을 들이지도 않았었던 것 같다.
    그저 단지 밥 공기,국 그릇 ,후식으로 쓸 다기 정도 내가 만든 것으로
    먹어 보고 싶었다. 흙은 주물럭 거릴수록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고,
    여러가지 다른 형상으로 태어나곤 했다.도자기는 잉태되서 불가마에서의 극심한
    고통뒤 출산 되어진다.미흡하고, 그렇게 잘나지도 못한 나의 자식들이 선반에 꽤
    놓여져 있다.

    "나"님!
    그래도 내가 만든 다기 조차 이렇게 심각하게 '길~~~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마음이'짧아서' 일까요?

  • 도기 2005.10.27 07:17
    "주물럭 거릴수록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켰고"라는 표현은 비유와 은유로서
    증말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 이르키네요.
    영화,,, 왜 있죠? 미국 영화 사랑과 영혼이라든가... 아뭏튼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 물레를 돌리는 모습. 시상에... 그 모습이 또 한 무한한 상상력 동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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