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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잡지에 실었던 꼭지다.


엘에이의 북한산, 발디 봉(Mt. Baldy 3068m)

 

                                                북한산, 도봉산은 천만 서울 시민에겐 축복이다.

세계 어디를 봐도 이렇게 수려한 산이 도심에 있는 곳은 없다. 그러나 서울에 북한산이 있다면, 미국에서 한국어가 통용되며 사람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L.A에는 발디 봉(Mt. Baldy 3068m)이 있다. 북한산이 주말이면 등산객으로 몸살을 앓는 것과 다르게 발디봉은 큰 덩치답게 적요하다.

 

기실 산이 높거나 혹은 낮거나, 산을 관조하는데 우열이 있을까마는, 아무래도 산은 높아야 제 맛이다. 그런 점에서 L.A 60여만 한국 교민들중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축복을 받은 셈이다. L.A 한인타운에서 불과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이 발디 봉은, 흐드러진 한국의 벚꽃을 보고 왔음에도 아직 하얀 눈 세상 설국이었다.

 

L.A에서 제일 먼저 자생적으로 생긴 산악회 중 하나인 '재미한인산악회'는 유럽 최고봉 엘브르스(5,642m) 원정대를 발족시켰다. 그 훈련의 일환으로 417일 설상 훈련을 하러 가는 등반 훈련 산행에 동참하여 발디봉을 올랐다재미한인산악회(회장 배대관)는 창립 후 그 나이가 21살이 되었는데 몇 년 전부터 해외로 눈을 돌려 괄목할 만한 고산등정을 이루어 냈다. 그것은 발디봉등 고산 등반에서 꼭 맞닥트리는 고소증에 대한 훈련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대원들을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 주차장에서 본 발디봉 정상은 꼭 유럽 최고봉 엘브르즈 서봉을 닮았다. 설선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모습하며 하얗게 꼬갈을 쓴 정상부의 민대머리 닮은 것이 아주 흡사했다. 2000m가 넘는 산이 없는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를 보면 고소 적응을 위하여 일본과 대만을 찾은 훈련대가 많다. 그것을 기억 할 때 재미교포 산악인들이 얼마나 천혜의 산을 가지고 있는지 참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전 여덟시 속속 모여든 대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다시 차를 타고 발디봉 아래까지 이동했다. 차에서 내려 등산 깃점으로 활용되는 등산로 입구를 만났을 때 고도는 해발 2000m쯤 되었다. 대원들은 장비를 챙긴 후 썬크림을 발랐다. 고도가 높고 설면에서 반사되는 강한 자외선 때문에 미국 산에서는 필수라 했다. 한국의 임도처럼 생긴 자갈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숲에 가려 있던 샌안토니오 폭포가 힘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사막성 기후와 대지를 생각해 보면 신기루 같은 풍경이었다. 올 겨울 드물게도 백년 만의 폭설이 이곳에 내렸다던데 그 영향을 받은 듯 했다.

 

폭포를 지나 오른 쪽으로 자갈 길 따라 1.5Km쯤 오르니 왼편으로 본격적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이곳서부터 본격적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조금 올라가니 무인 체크 포스트가 있다. 거기에 '사람과 산'이란 글을 남기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에 지그재그로 나 있는 트레일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3Km쯤 되는 눈앞에 그 유명한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에서 운영하는 초록색 산장(Sierra Club Ski Hut)이 보인다.

 

어느 사이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도를 올리며 부러진 나무들이 트레일을 막거나 넘어진 아름드리 나무가 많았는데 모두 눈 때문에 일어 난 일이라고 어느 회원이 일러준다. 산행시작 두시간이 채 못되어 눈에 쌓인 산장(2600m)에 도착했다. 이곳은 백두산과 비슷한 고도지만 울창한 아름드리나무가 지천이었다. 산장 앞 마당에는 스키 등반을 하거나 타러 온 미국인들로 북적였다. 여기서 회원들은 본격적으로 동계 장비를 착용했다.

 

이곳에서 본 발디 보링라 불리는 남서 설벽은 대단히 크고 가팔라 보였다. 한국 히말라야 원정대들이 단골로 설사면 훈련을 하는 한라산 용진각 설면의 서너배쯤 되어 보였다. 고도차 400여 미터를 직등 하는 남서벽(South Face)훈련이 오늘의 일정이다원래 등산로는 이곳에서 왼편으로 올라 새들 능선을 따라 오르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했다. 남서벽 설벽의 초입은 완만하게 시작하여 급격하게 경사각이 솟구치는 산사태 지역으로, 눈이 없으면 오르기 힘든 곳이라 했다. 설사면은 대략 35도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등산 깃점에세부터 고도차이가 1300m 가까운 높이를 직등으로 올라간다고 보면 쉬운 등반은 아니다. 3000m는 히말라야 셀파들의 고향 쿰부히말과 비슷한 고도다. 거기서도 고소증을 앓는 사람도 있고 조난사한 사람들이 있듯 이곳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있다고 귀뜸을 준다. 작년에도 한인 한 명이 조난사했는데 그 사건은 주류 사회나 한인 메스미디어에서 보도되었고 재미한인산악회에서 수색 구조 활동에 도움을 준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되었다. 태양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사막성 기후 엘에이 인근에 이런 눈이, 설벽이 고소증 있는 고도가 있다는 것은 놀랍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점점 경사각이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하얀 설벽을 오르는 회원들의 호흡이 거칠다. 그러나 가파른 설벽 여기서는 발디 봉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이 오르려는 엘부르즈처럼 정상 전위 봉들을 몇 개 넘어서야 되기 때문이다. 설벽에 찍히는 아이젠 소리가 경쾌하다. 낮은 고도가 아니라 그렇겠지만 피켈에 의지하여 가쁜 숨을 고르느라 자주 쉬어야 했다. 경사각은 자꾸 가팔라지고 있다.

 

훈련 된 산악인이 아니라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설벽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랑이 사이로 보이는 산장이 고도감을 실감케 했다. 직선으로 등반을 시작한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드디어 경사각이 죽기 시작했다. 마지막 가파른 설릉을 올라서니 끝없는 설원 이 펼쳐 져있다. 드디어 해발 3068m 민대머리 발디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정상에는 돌을 쌓아 만든 캐른과 동판이 있다는데 그 동안의 폭설로 다 묻혀 버렸다.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파노라마 풍경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은백색으로 빛나는 샌 개브리얼 산군의 봉우리들이 모두 이 발디 봉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듯 하다. 그 산들의 허리께 쯤 뚜렷하게 설선과 녹색이 구별되고 있다. 멀리 태평양이 보이고 카타리나라 섬까지 보인다. 샌 개브리얼 산줄기는 서쪽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암갈색의 광활한 모하브 사막이 보인다. 동쪽으로 이곳 보다 약간 고도가 더 높은 샌 골고니어(San Gorgonio) 산과 샌 와신토(San Jacinto)가 섬처럼 떠 있다.

 

내려 갈 때는 히프썰매, 그리세이딩이었다. 멈칫거리는 경사각이었고 굉장히 긴 설벽이었지만 엉덩이 썰매는 탈 만했다. 올라 올 때 3시간 걸린 거리를 불과 몇 분 만에 내려가 버린 대원도 있었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미국 땅 남가주에 거주하는 산악인들은 보석처럼 빛나는 축복 받은 산을 소유하고 있다. 나는 그게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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