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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몇 년 후 발디 산행에 대한 단상을 썼다.

 

LA는 산이 있어 천사의 도시다.  

 

누구였던가?

속병 깊이 든 가을 산에서 만산홍엽을 이룬 단풍을 보며 오메, 얼굴에 단풍 들겠네라고 한 시인이. 지난 주 산와신토 산행 중에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오메, 초록 물 들겠네라는 농담을 한 것은, 그 말의 생각 날 만큼 산와신토 속살이 온통 초록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휘파람 휘휘 불며 내려오던 길, 다음 주 우리가 오를 발디 봉이 맞은 편에 우뚝했다.

 

엘에이에도 산이 있느냐 묻는 한국 사람들이 퍽 많다.

아마 그런 질문을 받은 산악회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Mt 발디를 은유적으로 소개한 일이 자주 있다발디는 엘에이의 북한산이라고. 엘에이의 북한산이라... 메트로폴리탄 서울시민에게 북한산은 오아시스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오르고 또 사랑 받는다는 증거다. 발디는 나에게는 북한산처럼 친근한 산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엘에이 근교엔 아름다운 산이 많다는 긴 설명에도, 한국 사람들은 반신반의한다. 사막의 도시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북한산, 도봉산이 한국의 오아시스라면 발디를 포함한 샌게브리얼 산군은 엘에이의 천국이다. 그런 천국의 산이 지천이기에 엘에이가 천사의 도시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게 아닐까?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자주 올랐기에 낮이 익은 등산로도 반갑다.

발디 정상부 주변엔 유독 옹이진 파인트리가 많다. 그건 만고풍상을 겪으면서도 말없이 오욕칠정을 속내의 옹이로 남겼을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의 손에 밖힌 굳은살처럼 옹이진 소나무가 트레일을 지키고 있어 더 친근한 산인지도 모른다한자리에 서서 언제나 말없이 나를 지켜보았던 소나무 닮은 아버지. 생각이 꼬리를 물다 소나무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발디를 올랐나.

 

그러나 거의가 당일 산행이었다. 종주산행, 횡단산행, 연결산행 등 여러 형태로 등반을 바꿔 하다가, 그 틀에서 일탈하여 정상에서 비박을 한 기억이 있다. 그건 또 다른 발디의 발견이었고 또 다른 감동이었다. 발디 봉의 풍찬 노숙. 지금은 간 곳 없이 사라졌으나 언젠가 이곳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산정은 달이 아직 뜨지 않았는데도 고혹적인 별 빛으로 그윽했다. 바람은 끊임없이 밀리고 있다. 표현 그대로 풍찬노숙이었는데 바람결에 부르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는 듯 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혹 산이 내 영혼을 불러내려는 소리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 별 빛이었다.”

촘촘히 박힌 별과 은하수가 번데기처럼 침낭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내게 가까이 내려온 탓이었다. 적요와 어둠 속에서 나는 철학자라도 된 듯싶었고 깊은 은둔에 빠진 명상가라도 된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여태 가리고 있던 건너편 산 위로 달이 둥실 떠올랐고 순식간에 세상은 달이 뿌린 은빛으로 가득 찼다. 발디봉 산정에선 이제 자연이 만든 교향악 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성큼 내려와 모스부호처럼 명멸하던 별 빛을, 저 만치 물린 달빛이 산정에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 교교함에 진작부터 침낭 속에서 얼굴만 내놓고 하늘바라기를 하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누구 있어 천공에 저리 휘황한 등불을 걸어 놓았을까. 도저히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배낭을 뒤져 비상식으로 지니고 있던 술병을 열었다. 달에게 한잔 권하고 나도 한잔 마셨다. 아니 내가 달이 되어 마신 것이니 홀로 그 병을 비운 게 맞다. 서늘한 달빛은 일렁이며 바람을 연주하는 음악이 되더니 적막한 세상도 이렇게 아름답다는 각성을 새롭게 했다. 빈병을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웅-웅 뱃고동 소리를 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선연하게 하고 있다.

별 빛 푸르게 사위어 가던 그 신 새벽 발디봉 정상의 풍경 속, 지난주에 올랐던 산와신토 산정이 신 새벽 더 아득히 솟아 있던 모습을. 주변 산들이 섬이 되어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풍경을, 화인처럼 가슴에 새긴 그 밤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발디 산정의 밤 속으로 

 

지난 주말, 회원들과 기꺼이 풍찬 노숙을 하러 발디를 올랐다.

처음 참여한 회원들은 안락한 침대를 뿌리치고 산에서 밤샘을 한다는 것에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게다가 3000m가 넘고 추운 산정에서 텐트도 없는 비박. 많은 회원이 동참한 2009년 히말라야 원정은 고소와의 싸움이다.

엘에이에서는 단일팀 최초로 우리는 2001년 히말라야 원정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제 8년 만에 두번째 원정을 떠나는 것이다. 만 피트가 넘는 고소에서의 비박 경험은 하늘고원 티베트의 여정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아침 올랐다 오후 내려오는 빠듯한 산행이 아니라 일방통행이기에 서두를 것도 없었다. 원정을 앞둔 고소 훈련 계획의 일환이지만 훠이훠이 느긋하게 산을 오르며 예전에 경험했던 기억이 오소소 돋았다.

 

어스름이 찾아오는 산정엔 네팔 히말라야에 펄럭이던 오색 룽다가 나부끼고 있었다.

티베트나 네팔을 다녀 온 이름 모를 어느 미국 산악인의 마음씀씀이에 미소가 나온다. 바람을 막으려 돌담을 친 발디 정상의 비박자리는 이미 여러 팀의 백인이 점령해 버렸다. 그깟 무슨 대수랴. 발디 봉 오지랖은 넓기만 한데. 피부는 다르나 그들 역시 풍찬노숙 비박이 주는 느낌을 공유하려는 산악인들이기에 반갑기만 했다.

 

이윽고 힘을 다한 태양이 아이언 봉을 넘어가며 마지막 붉은 기운을 뿜어 낼 때, 우리 열여덟 명은 그 노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열여덟 명의 얼굴에 투사된 붉은 기운이 옅고 짙은 농담(濃淡)으로 빛나고 있었다. 문득 아직 써 내지도 못한 열여덟 가지 빛깔의 티베트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그렇게 우리의 티베트 여행 역시, 감성과 실제가 담긴 열여덟 가지의 빛깔의 보고서로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정상에서 조금 아래 듬성 자란 파인 트리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칠 일이 없으니 시간도 넉넉하다. 버너의 파란 불꽃이 살아나고 기온의 하강과 함께 라면국물은 이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만월에 가까운 중천의 달이 뿌리는 은편은 민둥산 자갈에 부딪쳐 헤드램프 없이도 휘황했다. 어느 사이 눈 아래로 에메랄드를 뿌린 듯 돋아난 땅별 사이로 고속도로가 불 뱀처럼 선을 만들고 강처럼 흐르고 있다. 우르르 쏟아지는 촘촘한 별빛 사이로 유성 하나가 빗금을 그으며 떨어졌다.

 

산 혹은 섬. 어둠은 짙고 하늘과 땅 사이에 우리만 존재했다. 좀 시끄럽게 까르르 거려도 적막강산이기에 이웃 눈치 볼 부담도 없다. 매일 바쁘게 부대끼며 가끔은 지겨웠던, 사람 사는 도시의 따듯한 불빛이 아늑해 보인다. 그걸 보며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각성도 한다. 스모그로 가려져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가 한가롭게 하늘을 올려다 본적이 언제였던가?

 

발디 산정에서 유년의 꿈이 고스란히 담긴 밤하늘 영롱한 별을 다시 만난다. 추억의 저편에 담겨진 채 잊고 있던 동심 속 세계로 훌쩍 시간여행을 떠났고. 이런 오감의 만족은 절대 도심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람은 불었다. 오페라에서 홀로 부르는 프리마돈나의 아리아처럼 산엔 밤새 바람이 불었다. 파도처럼 강약을 조절하며 휘모리와 자진모리로 넘나들던 바람소리는 흡사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수직의 세계 높은 발디 산정에서 수평의 바다를 떠올린다. 마치 바닷가에라도 온 착각 속에 혼곤한 잠이 들었다.

 

그러나 꿈결에 들었던 파도소리도, 바다 생각도 허상이 아니었다.

그랬다.

여명이 밝아 오는 신 새벽, 눈 아래 세상은 구름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바다 풍경이 섬이 있어야 완성되는 그림이라면, 주말마다 건강한 땀을 흘렸던 샌 골고니아 무수한 봉우리들은 모두 섬이 되어 있었다. 멀리 산와신톤 봉 쪽 하늘만 열려 수묵산수화처럼 산첩첩 계곡 사이로 몽환같은 안개가 덮여있다.

그 안개 강은 지리산 삼도봉에서 바라보았던 섬진강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등 붙이고 비박을 한 발디 봉도 저쪽 산정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터.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가 된 기분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섬이 되어 있었을 발디 봉 고도(古島)를 탈출해 세상 속으로 내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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