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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디 스키헛 하룻밤에서 대단한 감동을 받았다.

그 고마운을 확장하여 발디에 대한 추억을 떠 올렸다.

우리 산악회 진산이기도 한 발디에 대한, 예전의 단상을 찾아 보니 몇개 있었다. 


스키헛 오두막집 밤을 마지막으로 쓰기 전 예 기억을 떠 올린다. (글 쓰는 모니터 앞에 와인이 있다^^)


20년 전의 2월 발디

                                2월 발디봉

 

 착륙하기 위해 비행기가 크게 회전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 갇혀 태평양을 건넌, 지루했던 긴 여정이 끝났다는 생각에 팔을 들어 한껏 기지개를 폈다. 우두둑, 관절이 제 자리를 찾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찔끔 나온다. 사각으로 기운 기창사이로 엘에이 다운타운 빌딩들이 보이는 가 했더니, 그 빌딩 숲 넘어 샌 게브리얼 산맥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몽롱했던 정신이 버쩍 든다.

 그 산줄기 중에서 마운틴 발디(3018m)가 도드라져 보인다. 그 산군에서 가장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주 찾은 산이기에 눈에 익은 덕분일 것이다. 발디봉은 영어로 대머리라는 말 답게 정상에 고깔 모양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비행기가 회전하는 역 방향으로 고개를  빼어 사라지려는 발디봉과 눈을 맞추었다. 언제였던가? 발디 정상 설원에서 이글루를 본때가

 

 발디봉은 내 마음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 온 산이다.

 그 산은 나를 품고 길렀으며 영감(靈感)을 주었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등대 같은 존재였다. 당연히 그 산에 얽힌 추억은 넘치고, 그리고 내게는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영롱한 등불 되어 언제나 어둑한 기억의 창고를 밝게 비추고 있다.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겨울이었을 것이다. 발디봉을 처음 만난 계절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겠으나 나로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산이 발디였다. 이민 초기였다. 언제나처럼 출근길 번잡한 10번 프리웨이 동쪽 끝에서 처음으로 발디를 만났다. 어제까지 없었던 산이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홀연히라는 표현은 과장된 수사가 아니다. 말 그대로 어제까지는 숨어있던 산이었다. 운전하며 바라보는 정면의 다운타운 빌딩은 언제나 낮 익지만, 그 뒤편 배경은 사막처럼 흐릿한 황갈색의 산뿐이었다. 그 사막의 산속에 하얀 산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10번 프리웨이 정면에서 마술처럼 갑자기 나타난 은빛 산.

 

 빌딩 숲 스카이라인은 늘 그렇듯 변함없었는데 그 배경 화면이 바뀐 것이다. 늘 흐릿했던 갈색에서 하얀 산으로 변신. 짙은 잉크 빛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하고도 우뚝한 산의 탄생. 그건 새로운 발견이고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물론 그 산들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을 안다. 계속 되었던 겨울비가 높은 산에선 눈이 되었고, 그러므로 특징 없었던 사막의 산이 하얀 고깔을 쓴 것이다. 눈 때문에 겨울에만 신기루처럼 나타날 것이라고, 논리는 발디봉의 갑작스런 등장을 설명하고 있으나 눈은 마술을 본 듯 커졌고 맑아졌다

 

 그 느낌을 풀어내어 환상방황의 그늘이라는 중편 소설을 얻었고 그것이 모 일간지 문예공모 당선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운명적으로 소설공부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언제고 발디를 오르겠다는 꿈을 키웠고 실행에 옮겼다. 서울의 북한산처럼 그동안 무수히 발디봉 정상을 올랐다. 사 계절 어느 때 올라도 발디는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리품을 팔며 자연의 이법 속에 글 소재를 얻었고 그것을 구체화 시켜 두려운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내보냈다. 소설이 허구를 가공하여 진짜처럼 보이는 작업이라면, 내 속에 들어 온 산은 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큰 영광을 얻게 해 주었으므로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상문학상으로 권위가 있는 문학사상 장편 수상작이 된 가슴속에 핀 에델바이스가 그것이다. 그렇듯 산을 향한 짝사랑은 헛된 것이 아니었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웅숭깊은 우물이었다.

 

 어느 해 겨울이었을 것이다. 눈을 헤치고 빙판을 넘어 겨우 산정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는 얼음 궁전이 있었다. 필시 우리만큼 발디 사랑에 흠뻑 빠진 누군가, 산정에서 자기위해 만들어 놓은 이글루였다. 에스키모들이 사용한다는 이글루를 미국 LA근교 밣디 정상에서 본 것이다. 대단한 솜씨와 그만큼 노동을 기우린 이글루를 보면서 발디 사랑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동토의 산정과, 연초록 숲과,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지닌 발디를 대상으로 우리는 무던히도 많은 퍼포먼스를 벌렸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산악회원들과 함께 발디 정상에서 한밤을 노숙하기로 했다.

 사막성 기후답게 밤엔 상당히 기온이 내려갔지만 침낭 하나로도 따듯했다. 해넘이가 시작되자 사람 사는 동네엔 어둠이 내리고 있었지만 산정엔 아직 햇살의 잔상이 남아있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어스름의 시간. 이런 시간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그윽하고 친숙하게 보여 지는 시간이다. 이윽고 어둠의 장막이 시나브로 온 세상을 감쌌을 때, 나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하늘에 별이 돋기 시작했을 때, 별은 땅에서도 돋았다. 사람 사는 땅에서도 불이 켜지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땅에서 뜬 별과 하늘의 별사이에 머물며 중력과 무중력 사이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신비롭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발디 산정엔 아직 달이 뜨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혹적인 별 빛으로 훤했다. 바람은 끊임없이 밀리고 있었다. 표현 그대로 풍찬노숙이었는데 바람결에 부르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는 듯 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혹 산이 내 영혼을 불러내려는 소리는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 별 빛이었다. 촘촘히 박힌 별과 은하수가, 번데기처럼 침낭 속에서 내밀고 있는 얼굴 가까이 내려온 탓이었다. 적요와 어둠 속에서 나는 철학자라도 된 듯싶었고 깊은 명상에 빠진 은둔자라도 된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여태 가리고 있던 건너편 산 위로 달이 둥실 떠올랐고 순식간에 세상은 달이 뿌린 은편으로 가득 찼다. 발디봉 산정은 달빛으로 충만해 헤드램프 없이도 사물을 분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상엔 자연이 만든 교향악 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성큼 내려와 무언가를 들려주던 별 빛을, 저 만치 물려버린 달빛이 산정에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 교교함에 진작부터 침낭 속에서 얼굴만 내놓고 하늘바라기를 하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누구 있어 천공에 저리 휘황한 등불을 걸어 놓았을까. 도저히 그냥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배낭을 뒤져 비상식으로 지니고 있던 술병을 열었다. 달님에게 한잔 권하고 나도 한잔 마셨다. 아니 내가 달이 되고, 달이 내가되어 마신 것이니, 달이 그 병을 비운 게 맞다. 서늘한 달빛은 일렁이며 바람을 연주하는 음악이 되더니 너울너울 춤추는 무희도 되었다. 적막한 세상도 이렇게 아름답다는 각성의 시간이었다. 곁에선 빈병을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웅-웅 뱃고동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명이 밝아왔다. 나는 그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별 빛 푸르게 사위어 가던 그 신 새벽 발디봉 정상 풍경과 고요를. 별 빛이 무너지며 세상이 밝아 올 때, 간밤엔 검은 실루엣으로 보였던 주변 산들은 이제 섬이 되어 나타났다. 구름은 바다를 이루어 점령군처럼 산정만 남겨 놓고 세상을 지워버렸다. 날이 좋으면 시선의 끝에 머물던 그 넓은 태평양도, 간밤에 별을 돋우던 도시도, 구름이 모조리 덮어버렸다.

 

그 구름바다는 또 다른 마술가였다. 가깝게 서있는 아이언피크와 멀리 샌 골고니아까지 무수한  산의 정상은 섬이 되었다. 롱비치 앞 바다에 떠있는  카타리나 섬처럼. 그때도 밤 새 불던 바람은 끊이지 않고 불고 있었다. 문득 한 생각이 비집고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산은 섬이기도 했으나 돛도 되었다. 끝없이 부는 순풍을 받아 구름바다를 헤쳐 가는 지구별의 돛대. 그래서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는 건 아닐까. 나는 갑자기 지구별이 도는 비밀을 안 것처럼 혼자 낄낄 대었다.

 

 어제, 회원들과 비행기 기창에서 눈을 맞춘 발디봉을 올랐다.

 산으로 떠날 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지금쯤 발디봉엔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천상설국엔 눈이 피워낸 상고대 꽃 잔치가 한참일 것이고. 그러나 예측은 틀렸다. 발디와 주변의 산엔 눈 풍년이 들었으나 산을 오르는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다. 등산로는 눈에 덮여 앞서 간 몇 명의 발자국이 새로운 등산로가 되어 있었다. 등산복 후드를 쓰고 고도를 올리는 도중 눈은 진눈개비로 바뀌었고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게 뭐 대수랴. 발디는 오랜만에 찾은 나에게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려 할 뿐인데.

 

 스키 헛 앞의 파인트리 뾰쪽한 바늘잎마다 물방울이 얼어 크리스탈 고드름을 달고 있다. 그 크리스탈 방울들은 어깨라도 스치면 맑은 쇳소리를 냈다. 발디는 깊은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눈은 두꺼운 이불이 되어 온 산을 덥고 있다. 이불을 덮고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발디봉. 그런 상상이 가능한 증거는 많았다. 토끼인가 오소리가 지난 발자국이 꼭 누비이불에 한 땀 한 땀 바느질 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우리는 스키 헛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눈앞 정상부에 이르는 설면이 엄마 하얀 옥양목 치마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서 와 안기라는 듯 보였으나 그 가파른 설면을 오르기에는 날씨가 좋지 않았다.  

 

 한국 속담에 눈 풍년이면 농사도 풍년이란 말이 있다는데 더불어 마음도 풍요로워졌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속에 우물을 숨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생떽쥐뻬리의 말을 빌린다면 내가 사는 엘에이는 발디봉을 숨겨두었기에 천사의 도시가 된다. 엘에이에서 살아가는 엔젤리노는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건 아닐까.

 하산을 마치자 잠시 구름을 걷힌 하늘엔 하얀 발디 정상이 붙박이처럼 우뚝하다. 그러더니 금새 구름이 몰려와 산을 지운다. 변덕 많은 구름처럼 세상을 살며 우리도 흔들리지만 홀로 그 자리 지키는 불변의 발디봉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산을 마치며 바라본 안토니오 폭포는 눈 풍년답게 물줄기가 세차다. 곁에 서있는 후배에게 넌지시 말했다. “우리 언제 저 폭포가 눈에 뒤덮히면 그리로 해서 계곡 따라 정상에 가자. 몇 년 동안 벼르던 일이거든. 그러면 꽁꽁 숨겨진 발디 속살을 볼 수 있을지 몰라.” 뻐근한 다리품을 팔았다는 성취감과, 새로운 상상에 즐거워하는 사람들 속이야 알 것 없다는 듯이 짐짓 발디는 그렇게 우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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