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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와 경상북도 경계를 이루는 응봉산 정상에서, 일행을 뒤로 한 채 속도를 냈다.
작은 당귀골을 빠져나와 먼저 용소골로 내려 선 것은 호젓한 느낌이 되고 싶어서였다.

초의선사(草衣意洵)라는 스님이 있다.
그 분이 편찬한 동다송(東茶頌)이란 책은, 한국 다도(茶道)의 정신적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 동다송에서 이르기를, 가장 훌륭한 차마시기는 '홀로' 마시는 것이라 했다.

위험한 등반이야 그럴 수 없는 일이지만 하이킹은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14킬로에 이른다는 용소골을 홀로 즐기고 싶었다.

몇 년만에 다시 찾은 것인가.
길이 험해 예전엔 몇몇 전문 산악인들만 소리소문 없이 답사하던 곳이 응봉산 용소골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들어서 그 절경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해 일반인들 발길도 적지 않은 편이지만 아직도 완전히 돌파하기엔 수월치 않은 곳이기도 하다.

계곡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춘 용소골이란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십리 넘게 계속 이어지는 수많은 담과, 소의 맑은 물은, 에워싼 협곡의 푸른 산을 붉은 적송의 늘씬한 숲을 담고 있다. 그 물 속 유유하게 헤엄치는 버들치들 들어 보라고 휘휘 휘파람을 불며, 계곡을 건너고, 돌고, 빠지고, 기어오르며 용소골을 내려갔다.
빼꼼하게 열린 하늘 틈으로 햇빛이 쏟아져 맑은 계류에 물 비늘을 만든다.
차마 눈 부셔 바라 볼 수 없는 투명한 계곡 물은, 욜랑욜랑 노래를 하며 춤추듯 흐른다.

즐겁고 신났으며,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가슴에 찰찰 차 오른다.

산이 내려주고 용소골이 받쳐 준 물은 위대했다.
어느 예술가 있어 이런 조각들을 만들 수 있을까.
수수만년 돌을 깍아, 그 속살인 하얀 화강암을 꺼낸 후 부드러운 곡선으로만 형이상학적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작품마다 영겁의 시간이 걸린 그 하얀 조각위로 희디흰 물이 흐른다.  

하산 종점이 가까워진다는 표시로 나타난 제1용소, 제2용소는 거대한 느낌표다.
돌고 돌아 이곳에 이른 청자 빛 물을, 한꺼번에 모아 찍어 놓은 느낌표다.
산행 7시간 만에 그 느낌표를 만났고 무언의 그 느낌을, 가슴에 담았다.

폭포 바위벽을 타고 지나야 하는 안전장구 없는 트레버스도 겁 낼 게 없다.
떨어지면 핑계삼아 수영이라도 하면 되니까.

강원도 오지라 그런지 남녁에선 벌써 진 찔래 꽃이 지천이었고, 내 손톱에 빨간 물이 들 정도로 산딸기를 따먹었다.  
적막계곡에서 벗어나며 휘휘 휘파람을 불었다. 산다는 게 이런 거지...

사진.1 카메라는 왜 소리를 못 찍는 거지? 뻐국이, 싱그런 바람 소리를. 자동으로 한 컷.
      2.느낌표. 제1용소
  • 남강 2005.06.06 08:51
    공산님, 더불어 사는게 우리네 인생일진데... 이거너무 혼자서만 즐기는거아니야?
    늦기전에 자주보자.
  • 날라이쥐이나 2005.06.06 10:25
    선배님 웃음이 조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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