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시에 버스는 소백산 죽령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유월이 코앞이라 서울은 제법 더워졌는데 고도 탓인지 아직 이곳은 서늘하다. 산에 대한 갈증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주변 산들이 서울 닮아 복작이는 게 싫어서인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름하여 무박 산행이라는 것인데 주말 동대문운동장 앞에 가면 한국의 이름난 산은 어디고 갈 수 있다. 산행 입구까지 태워다 주고, 산행 방식은 자신의 취향대로 하면 된다.
단, 조건은 오후 2시엔 고객이 도착하거나 말거나 서울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산꾼 모임인데 차를 타면 무조건 소등하고 밤 새 걸어야 할 체력을 안배하느라 모두 잠을 청한다. 시간 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권 할 프로그램이지 싶다.
산행 시작하자마자 바삐 앞으로 나섰다.
일주일 지난 보름달은 어느 사이 이지러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 넉넉한 노란 달빛으로 소백산 속을 출렁 채우고 있었다. 홀로 걷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달을 앞세워 걷다가 보면 어느새 달은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달님과의 동행이었으므로. 아니 일행이 하나 더 있었다. 달빛에 투영 된 내 그림자가 그것이다.
계곡 아래 사람 사는 마을들의 불빛이 꽃처럼 돋았고, 검은 그림자로 구불구불 치달리는 산맥의 흐름이 부드럽다. 내 발 앞을 비추는 헤드램프 불빛이 출렁인다. 문득, 이효석의 소설 메밀곷 필 무렵의 허생원 생각이 난다. 허생원도 이런 밤을, 푸른 달빛에 젖은 메밀꽃이 깨알깨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을 가고 있었다. 그 달밤 길 묘사가 얼마나 감동적 미문이었던가. 시적 정취가 물씬 풍겨 나온 명문을 쓴 이효석의 '흐벅진' 달빛을 나는 기억한다.
철쭉이 피면 여름이 시작된다는 말대로 소백산은 지금 철쭉이 제철을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중간 중간 일부러 확인한 철쭉 꽃 색깔이 모두 하얗다. 달빛 덕분이다.
비로봉이 가까워지며 세상은 깨어나고 있었고. 비로봉 정상능선에서 여명을 맞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 곁을, 백년 살지 못 할 내가 간다.
정말 운 좋게 1436미터 정상에서 제대로 된 일출을 만났다.
해가 뜨며 철쭉의 색깔이 제대로 살아난다. 연분홍 철쭉이 등산로가 뭐야, 온 능선을 덮고 있다. 초록색 숲 속에 무덤무덤 피어 난 모닥불처럼 철쭉은 피어났다. 국망봉까지 거침없이 터지는 시야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백두대간의 힘줄 같은 준령이 가뭇하다.
신선봉 가까이 있는 갈림길에서 나는 왼쪽으로 돌아선다. 신선봉 정상에는 누가 만든지 모르는 오래 된 자연석 바둑판이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등산로에서 벗어 나 있는 신선봉을 놓고 오를 것인가 포기 할 것인가를 놓고 갈등한다고 했다. 몇 개의 암릉을 올라 도착한 1389미터 정상에는 정말 자연석 바둑판이 있다. 씨줄 날 줄이 정확히 그려진 바둑판이었다.
흑.백 바둑알 두 개도 올려져 있었다. 등산하러 올라 온 사람이 가져다 놓은 것은 분명했지만 그 마음 씀씀이에 공연히 미소가 떠오른다. 바둑알 두 개로 바둑을 둘 수 있을까? 하긴 신선이니까 마음 속으로 승부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검은 색 바둑돌을 한번 들었다 놓고는 "졌습니다"하고 깨끗이 승복을 하고, 다시 산행에 나선다. 마지막 봉우리 민봉에 올라서니 여태 종주한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철쭉꽃 한아름 사진에 담고, 신선과 바둑도 두고, 일출도 보고, 밤사이 달님과 친구도 했으니 마음이 부자다.
강파른 내리막 길이 만만치 않았다. 임도를 만나 조금 진행하다, 왼편의 봉우리 두 개째 올라서니 전신이 땀으로 샤워를 한 듯하다.
지도에는 영추봉이라 된 곳인데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 까닭은 구인사 때문이다. 그들은 이곳을 구봉팔문 전망대라고 이름 붙였고 이 산 정상에, 이 절 집을 창건한 상월조사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신도들은 이곳을 성지 순례하듯 올라와 경건하게 기도를 올린다. 왕릉을 무색하게 할 만큼 규모가 크다.
내가 알고 있는 불교의 선승들은 '다비'라 해서 화장을 한다는 관한 짧은 지식이 한방에 날라 간다. 이곳부터 산아래 동네까지 모두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 땅이라고 한다.
종교에 대하여 무지하지만 이 절 집은 너무했다.
본존불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머리 기른 유발의 '상원'이라는 도인의 흉상이 어마어마했다. 하산하는 동안 이어지는 콘크리트 웅장한 층층에 입힌 단청이 새삼스럽다. 별로 놀랄 것 없는 세상 보았다고 생각한 나에게 귀싸대기 한방 후려갈기는 놀라움이었다.
그렇게 말도 안되게 이 구인사의 규모는 대단했다.
절 집은 아직도 공사 중이었는데 그 규모 역시, 잠실체육관 정도는 못되더라도 거기에 버금가는 크기였다.
내 언제 한번 부처님께 따져 봐야겠다.
이분들이 절 집을 짓는 건가, 그 크기 만큼의 죄를 짓는 거냐고.
열시간 동안 신나 했던 기분이 한방에 본전으로 돌아 왔다.
사진 1. 소백산 비로봉 일출
2. 신선봉 정상의 바둑판과 바둑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