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유게시판

조회 수 64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첨부 수정 삭제




오월, 경주남산은 한 척의 배였다.
배에 오르려는 선착장, 포석정 사잇길엔 하얀 찔래꽃이 무수한 별처럼 돋아 있다.
아득해지려는 찔래꽃 향기 속에, 나는 출렁이는 초록 바다를 헤쳐 가려는 그 남산이라는 배에 승선했다.  

세상은 온통 초록화엄이다.
가지마다 송화꽃 피워 낸, 굽자란 소나무들이 내 품는 솔 향기가 배 멀미처럼 후각을 자극한다. 자주 만져도 그 감촉이 까칠 한 것인지, 아니면 부드러운지 알 길 없는 하얀 화강암릉은 남산만의 느낌이다. 그 길을 휘여휘여 걸어 황금대 봉우리에 올랐다.  

남산이 배라면 황금대는 선수(船首)가 틀림없다.
질펀하게 눈앞으로 펼쳐져 있는 고만고만한 초록 봉우리들은, 이제 이 남산이라는 배가 헤치고 나갈 파도다.
남산이 막약 배라면, 배엔 돗대도 있을 터.
정상 능선에 올라서니 부드러운 미풍을 받아 펼쳐질 돗대가 눈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구비처 흐른 초록 바다에 우뚝한 '늠지탑'이 그것이다.
이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문으로 표현 못 할 늠지골, 혹은 늠지탑.

내 기억으로는 탑의 잔해만 보였던 그곳에, 처음보는 오층탑이 돗대처럼 보였다.
이 늠비봉 위에 석탑(石塔)이 있었다는 건 주변에 흩어져 있는 탑의 잔재들로 알았었다.
망연히 바라보는 내게 그 탑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복원한 것이라고, 눈밝은 곁의 시인이 귀뜸한다.  
아무리 보아도 흉물스러운 남산 조악한 전망대에서, 두 줄기 작은 계곡이 포석정 계곡으로 흘러든다. 북쪽 계곡을 작은 늠비라 하고 남쪽 계곡을 큰 늠비라 부른다던가. 이 큰 늠비, 작은 늠비 사이에 솟은 삼각 봉우리가 바로 늠비봉이다.

두 줄기 늠비 계곡 사이 분수령에 솟은 삼각산 정수리 위에 탑이 섰으니, 그 봉우리 자체가 이제 하나의 탑이 되고 또한 거대한 돗대도 된다.  
곰곰 발품 판 기억을 더듬으면 남산엔 돗대가 무수히 많다.
순한 파도 닮은 봉우리 하나 넘으면, 삼각 돗대를 허공에 편 용장사 삼층석탑을 만나고, 다시 암릉을 돌면 천룡사지 석탑을 만난다.
그렇게 남산이라는 배엔, 지금도 바람 속에 우뚝한 석탑과 무너져 흔적뿐인 탑이 일흔 한 개나 있다.

그래서 일까, 무수한 탑 돗대를 세운 남산이라는 배는, 어절 수 없어 언제부터인가 불국토로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온전한 불법의 산으로 거듭나며, 골짜기 이름도 용장사골 부처골 열반골 탑골등 부처님을 기리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이 배에 승선하면 불국토(佛國土)를 그렸던 신라인들의 염원이, 화엄세상처럼 펼쳐진다. 그뿐일까. 절터가 무려 130여 곳, 석불과 마애불이 지금까지 발견 된 것만 100여 개가 넘는다. 그리하여 남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자연 속 불교 문화재 노천 박물관이 된다.  
이 작은 산은 알수록, 그러므로 크고, 깊고 우람하며 감동이다.  

남산에 천년 전에도 불던 아득한 바람이 오늘도 분다.
그러므로 이제 남산은, 풍력으로 불국을 향해 항해를 하는 돗단배가 된다. 13개의 보물과 12개의 사적, 10개의 지방유형문화재를 싣고 항해하는 돗단배는 그야말로 보물선이다.

후백제 견훤의 습격으로 경애왕이 자살하며, 신라 천년 사직이 망해 갔던 포석정에서 시작한 산행이었다. 남산 특유의 바위 벽들이 내 눈엔 죄다 부처님으로 보인다. 그 바윗 길 사이를 걸으며 신라를 처음 만들었던 박혁거세의 남산 탄생 설화를 추억한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인간의 문명은 끝없이 진화하는 것 같아도 결국 윤회를 거듭한다던가.
시작도 끝도 없다는 무시무종은 그래서 어울린다.

신라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았던 남산 황금능선을 거쳐 금오산정에 이르고, 충담 스님이 다례를 올렸다는 삼국유사의 현장 삼화령엔 부처님은 간 곳이 없고 연화대만 남았다. 불경스럽게도 그 빈 연화대에 올라 짐짓 선정에 드는 흉내를 내 본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아기자기한 항해는 참 행복한 여정이다.

바람 산들거리는 능선 길에서 어느 사이 남산이 돗단배가 되는 듯 싶더니, 이제는 사람도 배가된다.
허위허위 바람에 밀려 마당 바위에 올랐을 때, 정말 남산은 한 척의 배일 수밖에 없는 풍경이 눈 아래 펼쳐졌다. 오월 못자리를 위하여 물을 가득 채워 넣은 논에 찰랑이는 물. 질펀히 물 가득한 서라벌 평야에 산이 그림자로 떠 있으니 누가 뭐래도 남산은 배다.
싸늘히 식은 봉화대를 거쳐 고위산 상봉에서 달콤하고도 뻐근한 긴 여정이 끝났다.

오월 해가 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보름달이 뜰 터.
낮도 모자라 보름달빛 출렁이는 남산 사랑법을 서로서로 일깨워 줬던 사람들, 그 좋은 사람들 생각에 허허롭다. 무량수 서방정토로 가시는 항해는 이제 끝나 가는가.
가서, 다시는 현세에 오지 않을 윤회의 고리를 끊으시기를.

늘 그렇듯 녹원정사 동동주는 산행을 끝내는 하산주다. 줄게 이것 밖에 없다고, 부끄러운 듯 안주인이 누룽지를 싸준다.
허허. 누룽지면 어떨까. 그것 보다 더 큰마음을 받았는데.

그러나 나는 아직 한가지 일이 남아있다.
어둠 속 천룡사지 나마스테 돌거북을 찾아 발가락 간 질러 본다. 사람들은 귀부가 떨어져 나가고 여기저기 깨진 돌거북이라 부르지만, 천년을 버텨온 돌거북이 그리 쉽게 잡석이 되겠는가.

풀 잎 하나 따서 발가락을 간지르면 몸 안 어딘가 숨어 있을 거북 머리가 쏘옥 나올 거라는 믿음은, 그 돌거북이 거기에 있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열반재 넘어 용장골로 하산하는 시간.

해드 램프에 하얗게 돋아난 땅별 찔래꽃이 또 지천이다.
그 농염한 향기일까 아니면 동동주 때문일까.
어질머리 나는 심사로 나는 돗단배에서 하선하여.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아온다.

보름달은 아직 남산 능선을 넘어 오지 못했다.

사진 설명. 1 돗대 늠지탑을 가르키고 있는 후배 김교수의 그 손가락 끝을 잘 보라
           2.부처님이 떠난 연화대에서 불경스럽게 그분의 흉내를 내 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