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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에서나 보았던 갯벌은 정말 살아 있다.
강력한 후레쉬 불빛에 닿는 갯벌엔 무수한 생명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하나 둘 세던 앙증맞은 새끼 게들이 센다는 것이 우습다는 듯 가득하다.
숭숭 구멍마다 생명체가 숨어 있을 터.
천공에 매달린 보름달이 하도 고와 불 을 끄고 달 바라기를 하면 이곳 저곳에서 숨구멍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완만한 경사를 이룬 갯벌의 바닷물은 지금 빠지고 있는 중이다.
바다는 적당히 차가웠고 호수처럼 고요했다. 달빛이 그 고요한 바다에 긴 빛 기둥을 세웠다.
맨 발에 밟히는 갯벌의 미세한 입자들 감촉이 싱그럽다.
맛 살 조개는 숨구멍 위로 나온 촉수로 발견했다.
갯벌은 의외로 찰져 파내는 것이 힘들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요령을 터득했다.
자꾸 빠지고 있는 물 길 따라 조개를 주우며 따라갔다.
한참을 나가도 갯벌은 계속되었다.
바다밀물에 파도가 높으면 절 집 마당까지 파도가 넘친다는 간월암은 흡사 중세의 성곽처럼 우뚝했다.
물과의 싸움 때문에 축대를 높인 까닭이다.
천수만 건너 안면도 불빛이 꿈결처럼 몽롱하다.

여기는 간월도(看月島).
그러나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었다가 물이 차면 섬이 된다는 간월도는 더 이상 없다
그 이름은 이제 전설이 되어 버렸다.
정주영씨 덕분이다.
유조선 공법으로 유명한 현대건설의 천수만 A, B지구 방조제 건설로 섬이 육지로 변한 것이다.
그 사업으로 4천700여만평에 달하는 바다가 매립되면서 간월도는 이름만 남은 섬이 된 것이다.

그러나 현대가 섬을 육지로 만들어 놓았어도 간월도에는 그래도 섬의 흔적은 남아 있다.  
바로 간월암(看月庵)이다.
간월도의 끝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돌섬을 지금은 간월도라 부른다.
다시 말해 아주 작은 의미로 축소 된 간월도지만 원래의 간월도처럼 물이 들어오면 확실히 섬이 된다.
당연히 들 물이면 걸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 섬 전체가 절 집이었다.
조선 육백년 도읍을 한양으로 점지한 무학(舞鶴)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바로 곁에 있는 서산이 무학대사의 고향이며 그가 수도하던 곳이 바로 이 간월암이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떠오른 달을 보고 오도(悟道)를 했다고 했다. 하여 암자의 이름이 볼'간' 달'월'이라 붙여졌다는 말이다.
그걸 증명할 자료도 사적도 없어 안타깝다는 **스님의 말이다.

썰물이 시작되었다.
시간은 열시도 넘었다.
절 집에서 빌린 양동이와 장갑으로 갯벌 체험은 시작되었다.
이미 바닷가에는 몇 개의 불빛이 움직인다.
마을 사람들이었다.
무릅까지 차이는 물 속을 걸으며 후레쉬를 비추면 게가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손바닥 반만한 작은 게였다.
이 게들은 보름달에 알이 찬다고 했다.
줍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게는 많았고 말 그대로 옆에 찬 망태에 주어 넣었다.

달도 숨을 쉰다.
들숨에 만월이 되고 날 숨에 그믐이 되듯 바다도 따라서 숨을 쉰다.
달의 들숨 날 숨을 따라 바다도 밀물이 되고 썰물이 된다.
그러므로 달과 간월암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인연이다.

무학대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어 증명해 낼 수 없다.
그 대신 일제시대 분연히 조선총독과 맞서 한국의 불교를 지켰다는 만공(滿空)대사의 흔적은 뚜렷하다.
만공대사가 간월암을 크게 중창했다는 기록은 곳곳에 존재한다.  
손바닥 만한 절 뜰에는 만공 선사가 심었다는 사철나무 한 그루가 달빛을 가리려는 듯 우산처럼 펴져 있다.
만공 선사가 심었다면 수령은 조히 백여년 가까이 되었을 터.
이렇게 크고 기품있는 사철나무는 처음 본다.
맞은 편에 사철나무를 옹위하듯 서있는 수 백년 묵은 팽나무도 근사하다.
  
양동이 반쯤 찬 조개가 생전처음 갯벌 체험을 놀랍게 한다.
갯벌은 살아 있었다.
검은 갯벌 흙탕물에 엉망이 되어 간월암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름달이 따라 오고 있다.
시간은 자정을 훨씬 넘겼다.
입구에 서 있는 사철나무 그림자가 진짜 우산처럼 보인다.
바다도 하늘도 보름 달빛에 출렁인다.
그윽하기도 하거니와 농염한 달빛이다.
술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나는 역시 절집의 깨닳음과는 멀다.

행여 선승의 수행에 방해될까 봐 사철나무는 달빛 가리는 우산이 되었는가.

어허! 달빛이 만공(滿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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