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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자
                                  
매년 3월 첫째주 일요일에는 로스앤젤리스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신발장에 겹겹 포개진 신발처럼 자동차가 넘치는 곳이 미국이다. 차가 혈액이라면 동맥에 해당되는 것이 도로다. 그 동맥을 일부 폐쇄하여, 인위적 동맥 경화증을 만들면서까지 거행되는 유서 깊은 대회가 이 뜀박질 대회다. 참가 인원도 많아 올해는 26000여명이 접수를 하였다고 했다. 한국인들도 30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41.195킬로 완주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보도되고 있다.

매우 무거운 진지함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공존하는 것은 미국 문화의 특성이다. 그, 비장함과 코미디가 어울리는 양면성, 혹은 다양성을 제대로 이해하긴 힘들지만, 요약하자면 개성 존중 지상주의로 생각한다. 마라톤 대회 역시 그렇다. 카운티 정부도 국제 대회를 시민 축제로 유도하고 시민들 역시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그것을 즐긴다.

'이겼다!'라고, 아테네 시민... 일러주러 전쟁터로부터 뜀박질 끝에 숨져간 한 인간의 설화가 마라톤의 시작이다. 죽을 수도 있는 '인간 한계의 도전'이라는 수식어는 마라톤에 있어 결코 남용되는 구호는 아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골인지점에 1위로 다가서는 황영조의 우그러진 얼굴은 지금도 기억난다. 쌍가풀 수술로도 커지지 않은 눈을 깜박이며 작년 보스톤 마라톤 1위를 한 이봉주 선수를 통하여 그 행위의 치열함과 절박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비장한 마라톤의 탄생 배경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마라톤이지만 미국에 오면 미국적이 된다. 하긴 그렇게 목숨걸고 뛰라는 법이 없으니 그렇게 뛰지 말라는 법 역시 없다. 역시 법치국가 미국이다.
그래서 엘에이 마라톤은 엘비스프레슬 리가 살아 나와  판탈롱 바지를 입고 폴짝폴짝 뛴다. 뛰는 것은 엘비스뿐 아니다.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백설공주도 뛴다. 좀 더 실물에 비슷 하려고 옷차림과 몸차림에 거금(?) 투자하여 뛰는 건,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것뿐이 아니다. 유모차 끌고 뛰기, 뒤로 뛰기, 굴렁쇠 굴리며 뛰기, 재글러하며 뛰기... 묘기 백출이다.

그렇게 뛸 넘 뛰고, 걸을 넘은 걷고, 웃을 넘 웃어야 되는 것이 미국 마라톤이다. 배운 시절도 아득한 1947년 51회 보스턴 마라톤은 서윤복 선수가 우승을 하므로서 우리... 잘 알려진 전통 있는 대회다. 보스톤의 영광은 3년 뒤인 50년 제54회 때,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l, 2, 3위를 몽탕 먹어 치운 적이 있는 우리와 인연 깊은 대회다.
앞서 말 한대로 작년엔 쌍가풀 선수 이봉조가 선배 뒤를 이어 1등 먹었다.
이 대회 역시 웃길 넘 따로, 울 넘 따로 제 각각 뛰는 대회다.    

마라톤하며 운다... 라니, 마이웨이라는 영화 생각이 난다. 프랑크시나트라가 부른 주제가를 배경으로, 주인공은 골인 지점인 스타디움 그라운드를 들어선다. 슬로우 모션으로 넘어지며, 일어서며, 또 넘어지며... 군중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오만상 찌프린 채 골인지점을 통과했던 기억.
어느 심장 독한 넘이 있어 그 장면에 코가 맵지 않았을까.    
넘어지는 것에서, 생각 없이 무작정 달린다는 포트레스 검프와는 비교가 안된다.
물론 유서 깊은 마라톤 대회가 그렇게 희화적으로 끝나는 건 아니다. 뛰는 것에 한 목숨 걸고, 죽기 살기로 뛰는 세계 유수의 뜀박질 대가들은 매년 좋은 기록을 양산하고 있었다.

"우리 거기 한번 참가하자."
산악회원 하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산악회원중 마라톤을 제 2의 취미로 아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26마일정도, 즉 42.195킬로를 뛰고 나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나를 설득하려, 장황한 썰을 풀었다.
"...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트가 쳐 있어 아예 산행을 위해 만나는 장소까지 이동이 불가능할지도 몰라."
이건 공갈 비슷했다. 그만큼 마라톤에의 참가를 종용하는 거로 볼 수 있는데, 내 대답은 당연히 이열치열, 즉 공갈에 역 공갈로 돌려주었다.  
"할 일없어 아스팔트 냄새 맡으며 뛰냐? 연도의 구경꾼 좋은 일 시키는 것은 좋지만 공해로 호흡하고 땀 범벅이 되어도 씻을 물도 없고... 참가비도 내야 한다며. 못 간다. 아니 안간다"

그리고 얼마나 마라톤이 비효율적이며 결과가 허무한 일인가를 등산에 비하여 설명했다.
"우리 몸에 최대치의 부하가 걸리도록 육신 혹사까지는 좋으나, 그 대상이 도심 아스팔트가 될 이유가 있어? 가쁜 숨 들여 마시기에 질 좋은 산소가 좋은 건 불문가지. 그 무공해 산소 바다인, 좋은 숲이 있고 관전 할 구경꾼 의식해서 닭대가리 모양 목 빼고 뛰지 않아도 되는  산행이 좋겠지. 더우면 풍덩 할 계곡 물은 어떻고. 마라톤 42.195킬로 만큼 산행을 길게 잡으면 그 또한 마라톤 뛸 이유가 없는 거 아냐"

결론은, 내 썰에 넘어가 3명이 오붓하게, 이름하여 '마라톤 산행'을 하기로 약속했다.


                                걷자

가는 곳은 몇 번 산행 중 낮이 익은 '스웠츠' 계곡이었다. 얼마 전 회원 하나를 잃어 비상이 걸린 낮 익은 곳이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지형이 한국의 산들을 퍽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며 그늘 좋은 활엽수와 푹신한 낙옆까지.
프리웨이를 달려 산행이 시작되는 '라카나다'에 도착한 것이 오전 9시. 산간 도로 들머리에 차를 세우고 본격적 산행을 시작했다. 물론 이쪽의 코스가 긴 이유도 있었겠지만 모두 다운타운을 관통하는, '사돈 장에 가면 거름지고 따라가는' 뜀박질에 갔는지 등산로는 아주 호젓했다.

차갑고 맑은 물이 계곡 넘실거리며 흐르고 있었고 나무들은 다투어 봄눈을 틔워내고 있었다. 계곡은 깊었고 그늘 역시 좋았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사이를 걷는 상쾌함이라니.
나는 땅을 버리고 산 속 깊이 들어가고 있는데, 쉴 사이 없이 재잘거리며 물들은 왜 산을 떠나고 있는 걸까. 낳아준 산 버리고 바삐 내려가는 물이 들려주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 닫힌 계곡처럼 꽁꽁 숨겨놓은 산 속 또 비밀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간간히 다리 쉼을 하며 산이 주는 또 하나의 은혜인 묵상 보너스도 즐겼다.
상념이야 어쨋든 주중 찌들었던 몸이, 영혼이 고맙다고, 신난다고, 털고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계곡이 갈라졌다. 우리가 여태 따르고 있는 등산로는 이제 주계곡을 버리고 작은 계곡 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쪽보다 물의 양이 많은 주계곡쪽으로는 등산로가 보이지 않았다. 계곡 입구가 예사롭지 않았다. 언젠가는 수량 풍부한 저 계곡을 답사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었다. 설혹 길 없는 길을 들어서더라도 그 과정의 극복은 또 그만큼 재미가 있는 법이다. 땡볕에 뜀박질하는 것도 자신을 극복한다는 명제가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포트레스 검프가 할 일이다. 대저 인자 요산이라는 말대로 이렇게 산 속 깊이 들어 온 것은 역시 잘한 일이다. 나의 선택은 탁월했고, 그것은 같이 가는 동료들 역시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4시간여 만에 꿈 길 같은 계곡을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봄볕이 따갑다. 그래도 뜀박질  하는 아스팔트에 지글거리고 있을 볕에 비교 될 일은 없었다. 이정표는 우리가 걸어 온 산행 길이가 8. 5마일이라고 알리고 있다. 툭 툭 불거져 치솟은 산들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끝없이 어깨 걸고 가뭇하게 달리고 있다. 가파른 오름 길을 올라가며 건너편 산등성이를 계속 관찰했는데 그쪽 산과 우리가 서 있는 이쪽 산을 가름하는 계곡이, 아까 헤여졌던 주계곡이 분명했다. 나는 그걸 안다. 한국 있을 때 소위 '산경표' 도사 소리를 들었듯이 산에 관한 길눈은 밝은 편이니까.  

여기서 온 길 되집어 돌아가도 대충 17마일, 27킬로미터는 넘는 셈이다. 설악산으로 따지면 ,등산로 중 길다는 화채능선을 거쳐 천불동으로 내려가는 코스와 비슷했다. 그러나 우리 산행은 '마라톤 산행'이므로 멈출 수 없었다. 다시 반대편 계곡으로 내려가 '베어 캠핑 그라운드'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곳을 가다가 다시 계곡이 갈라지는 걸 보았는데, 아까 능선에서 유심히 관찰한 주계곡으로 이어지는 것이 틀림없었다.
미련이 남아 꼼꼼하게 살폈지만 역시 이쪽에도 등산로는 없었다.

산행의 최종 목적지인 베어 캠핑 그라운드에 도착 시간이 오후 2시 30경. 출발해서 이곳까지 대략 11마일쯤 되니까 왕복 22마일, 즉 35킬로는 무조건 넘는다는 계산이다. 빠른 속도였다. 늦은 점심을 김밥으로 대충 때우고 하산을 서둘러 아까 올라오며 본 주계곡 합수 지점까지 내려왔다.

아무래도 이 계곡을 놓치긴 아깝다. 그리고 물이,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점프하여 산 넘어 가는 것이 아닌 담에야 물길 따라 내려가면, 오전 산행 중 헤어진 두물머리 합수지점에 도착 할 것은 틀림없었다. 17세기 여암 신경준이란 나의 선조가 산경표를 통하여 그걸 설  했다. 그러나 등산로가 없다는 것은 중간에 위험한 지형이 많다는 것을 상식으로 안다. 포기하려니 놓친 고기 더 커 보인다고, 이 계곡의 비밀을 풀어 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까짓 것 정 못 갈 입장이라면 되돌아오지, 하는 생각으로 일행의 동의를 구했다.

산 길눈 밝아, 엠비시 50여분짜리 '산경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주인공도 했었다는 경력과, 미지의 세계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거창한 주장에 따라, 일행은 발자국 하나 없는 계곡으로 첫 발을 디뎠다.
그러나 나는 일행의 마음을 안다. 마라톤 산행에 각오를 단단히 했지만 돌아 갈 생각을 하니 아득한데 '요 계곡이 지름길'이라는 말에 심봉사 눈뜨듯 귀가 번쩍 떠졌음을.

                                   살자  

욕심은 죄악을 낳고 죄악은 주검을 낳는다...는 말은, 누가 한지는 모르지만,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가 한 말은 아닌 것은 틀림없겠다. 그리고 나는 미답의 계곡 따라 하산하면서 자꾸 그 말이 떠올랐다. 원래 시작은 재미있고 가벼워야 한다. 그래야 죽을 줄 모르고 덥석 미끼를 무는 법이다. 한 구비 돌아서자 사람의 발길이 없는 이유가 이상하리만큼 조망이 좋았다. 계곡은 조용했고 곳곳의 분청사기 닮은 담과 소에는 송어가 유유자적 헤엄을 치고 있었다.

사행(蛇行)이라는 말이, 뱀이 돌아다닌다, 혹은 흐른다는 뜻 말이듯이 계곡은 연속으로 크고 가파르게 굽이치고 있었다. 양쪽은 대패로 밀어 놓은 듯한 절벽이었다. 그것은 앞으로만 계속 갈 것이냐, 억을 하지만 돌아가느냐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한 구비 돌아서면 새롭게 나타나는 풍광에 바쁜 다리품 판 것이 벌써 3시간.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산 속 해는 짧다. 계곡 속 해는 더 짧다. 나는 그걸 안다.

갈길 먼데 해는 지고, 라는 말 같이 가파른 폭포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절벽을 올라 옆으로 내려 갈 등반 장비도 없고. 돌아서기에는 이미 시기를 놓쳤다. 나를 믿고 따라 붙는 일행..., 내 걱정을 토로한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사실대로 말한다면, 가도가도 나타나지 않는 입구와 험해지는 지형에, 울고 싶은 넘 따귀 때리는 일이 될 것은 틀림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와 담과 폭포가 있는데도 등산로가 없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 앞을 막아선 폭포들이 자물쇠 역할로 기능 하므로서 일반인들 출입이 봉쇄되었고, 또 접근하기에도 너무 먼길이기 때문이었다.

점점 사그러지는 해거름에 마음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기가 막힌 절경이었다. 언젠가 준비 단단히 하여 다시 한번 찾을 생각을 했다. 한편엔 버너 불피우고 청자빛 담에서 노닐고 있는 송어 체포하여 나와 한 몸을 만들어야겠다. 매운탕에 넣는 매운 맛 나는 약초가 뭐였더라. 계피는 아니고... 제피가루인가, 복 날 멍멍이 탕에도 넣는 거였는데. 정말 여름 날 홀라당 벗고 유유자적 헤엄이나 치다가 송어 매운탕에 한잔 걸치면 무릉도원이 이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선녀와 나뭇꾼 있어 내 옷을 감춰주면 더 신나는 일이 될 것이고. 오염되지 않은 처녀지 탐험에서 사내가 옷 벗음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폭포 상단에 앉아 물 고인 담을 바라보며 온갖 상상을 하다가 일행의 채근을 받고 후다닥 현실로 돌아왔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폭포를 돌아 갈 길을 찾고 있는데, 정말 선녀와 나뭇꾼 상상처럼 홀연히 한 가닥 로프가 보였다. 누군가 나 같은 종류가 있어 이곳을 통과하느라 남긴 흔적이 분명했다. 로프까지 기어올라가 잡아 보니 언제적 것인지는 몰라도 많이 낡았다.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는데, 낡았어도 로프는 썩어도 준치였다. 아래서 버티며 줄에 의지하여 하나씩 바위벽을 통과 시켰다. 재미있어하는 일행은 몰라 그랬겠지만 사고는 원래 이런데서 일어 나는 법이다. 아예 어려우면 올라갈 엄두를 내지 않겠지만, 가능 할 것 같이 보이는 이런 곳에서의 사고가 많은 게 사실이다. '줄 믿지 마라. 믿을 넘 하나도 없다' 말도 되지 않는 잔소리가 나왔던 것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겨우 통과를 하고 다시 바삐 아래쪽으로 향했다.

이번에 만난 작은 폭포는 크기에 비하여 돌아 갈 곳 암벽이 만만치 않다. 썩은 로프도 보이지 않았다. 날은 자꾸 저물고 갈 길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각 할 시간이 아까웠다. 앞서 갔던 사람이 로프를 걸지 않은 방법대로 할 수밖에. 그것은 바지를 훌러덩 벗는 것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은 알았어도 생각도 씨가 될 줄은 몰랐다. 송어 매운탕 끓고 있는 동안 우아하게 헤엄 친다는 상상이 현실이 될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이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원래 매듭은 묶은 넘이 푸는 것이니까 이리로 가자고 한 넘이 벗어야지. 엎혀라... 이 인간들아.

겨우 내 결빙되어 묶였던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한 물의 차거움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냥 온 길 돌아가지 않고 새것 좋아하다가 종내는 꽃피는 춘삼월 희귀한 동상 걸리겠다. 역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진리다. 장단지와 그 윗쪽 중요 부분이 한없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일찍이 히말라야에서 경험한 차가움이었고.
  
그렇게 서둘었는데도 결국 날이 저물었다. 저도 놀랐겠지만 물새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며 날아오른다. 깜작 놀랐다. 새는 새답게 지저귀어야지 이렇게 징그러운 울음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 울음에서 받은 느낌은 같았는지, 일행 한 명이 슬며시 묻는다. '아직 멀었어요?' 이런 옘병.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어둠이 계곡 밑에서 스멀거리며 차 오르는 데,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내가 묻고 싶은 말이 그 말이겠다. 우리... 불안은, 어둠처럼 소리 없이 차 오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도 불안감을 참다가 한 말이었기에 대답은 가볍게 해야 했다. '다 끝 나가는 것 같은데...'
그랬으면, 내 말대로 끝이 빨리 나타났으면.

손금 보듯 환한 설악산에서도 해거름이면 겁이 났었다. 어둠은 기력을 쉬 앗아간다. 더구나 이곳은 처음이고 설상가상으로 준비 된 헤드램프도 없다. 어둠이 점점 짙어 졌다. 수수만년 씻기어 하얀 색으로 남은 바윗돌 윤곽 만 어둠 속에서 어스름 보인다. 드디어 일행들이 기진하기 시작했다. 비례하여 어둠은 더 짙어지고, 그리하여 보행 속도도 줄고. 불안한 마음에 추임새를 넣는다고 일행은 여기저기 넘어지며 비명을 지른다. 오만 생각이 든다. 이쯤 되면 '비박'이라는 풍찬 노숙을 생각하여야 할 때다. 먹거리가 배낭에 남아 있었나? 추위를 막을 입을 거리는?. 이곳은 곰이 많다는데...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빛이 영롱하다는 수사는, 이 상황에서 보면 산 넘어 사람 사는 마을 이야기다. 그럼에도 별빛은 아름다웠다. 빠꼼이 열린 계곡 하늘 위로 별꽃이 무수히 돋아났다. 달은 없었고 달이 뜨더라도 계곡까지 달빛을 나누어 줄 여유가 깍아지른 빗장 절벽에는 없어 보였다.
마라톤이나 할 것을... 하는 후회가 일었다. 빠지고, 넘어지고, 더듬거리는 이 꼴이, 엘비스프레슬리 복장으로 마라톤하는 사람과 다를 게 뭐 있을까.
휘파람도 불고 노래도 하였던 것은 내 불안감을 숨기고 싶은 생각에서였지만, 겁먹지 말라는 눈물 나는 배려였다는 것을 일행은 알까.

다른 묘사는 생략한다.
달 없는 밤중, 어머님이 아껴 입으셨던 검은 비로드 치마 같은 어둠은, 더 이상 내가 매달려 응석 부릴 차양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답의 깊은 계곡 밤중 미로 찾기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할 마라톤이었다. 등불도 없는데 조난 당하지 않고 살아 나온 것은 촉감과 후각등 오감을 총 동원 한 것은 확실하다. 코끼리 다리 더듬듯. 유도 낙법 연습하듯 연실 넘어지고, 허방다리에 뒤뚱이며 우리는 기어이 골인지점에 도달했다. 그것은 다른 이름으로, 기계체조 묘기 부리며 결승점을 통과하는 미국적 개성이 돋보이는 마라톤이라 불러도 무방했다.

기다시피 도착한 파킹 넛에서, 홀로 외롭게 기다리며 서 있는 내 차를 보며 반가움에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는 느낌도 생략한다. 시간은 오후 9시 정각이었다. 벌써 끝났을 마라톤에 참가했더라면, 유모차를 밀며 달렸더라도 12시간이면 골인 했을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아래 사람 사는 마을 로스앤젤리스 야경이 그날따라 참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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