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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 카드로 끊으면 깍아 준다는데, 고맙게도 나...는 엘지 카드가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십퍼센트 깍은 값이 일인당 오만 사천원이었다.
세명이니 자그마치 십육만이천원! 다시 한번 엘지 카드가 없다는 것에 행복한 감정이 되었다.
내 돈은 아니지만 그 돈 내고, 내가 돈 낸 것 이상 충격 받았다.
입장료가 비싸 받은 충격뿐이 아니라, 피 같은 돈 내고 놀/랐/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째서, 왜 놀랬느냐고?

들어라.

인사동 골목에 '섬'이라는 주막이 있다.
그 집 주모도 반쯤 히말라야에 미친 사람이고 본인... 옵빠라고 부르는 관계로 서울에 거 할 때면 열심히 사람 모아 그리로 간다. 물론 느끼한 목소리의 옵빠는 아니다. 울산 양산박처럼 서울의 뱃장 맞는 도반들의 집합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코크고 피부 하얀 인간들이 그 집에 보이기 시작했다.
지들이 무슨 하멜 흉내내어 조선으로 표류하여 온 것도 아닐진대 갈 때마다 보이는 것이었다.
한 잔 되면 우리끼리 춤도 추고 소리도 하며 도도한 취흥을 즐기는데, 어쭈 이 인간들도 한 수 한다.
딱 보면 척- 안다고 이 인간들도 한 애술 하는 집단인 모양이다.
예술이 아니라 '애술'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차 날라 온 떼거리라 했다.
돈 많은 미국 넘들이 싸구려 집을 자주 찾는 걸 보면 역시 예술이 아니라, 애 먹여 배고픈 '애술'이 맞다. 한번 와라. 그래 갈 께. 그래서 찾아 간 곳이 세종문화회관 곁에 새로 지은, 통째로 한 건물인 3층 높이의 공연장이었다. 장기 공연이고 순전히 이 공연을 위하여 만든 건물인데 그 공연 끝나면 세종문화회관에 기부한다고 했다. 수 십억은 틀림없이 들어갔을 건물이었다. 그 만큼 번다는 말인데...
그래서 간 것이고 나같이 경박한 호기심이 많은 인간들로 공연장에 꽉 찼다.
영어 참말 좋다. 이 공연은 영어로 스탠딩 관람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오만사천원 내고 한시간 반을 서서 보라는 것이다.
좌석도 없고 서 있는 장소도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선정하라는 주최측의 고마운 배려다.

갑자기 조명이 나가더니 칠흑 같은 암흑이다.
징 소리 닮은 깊은 음색의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요상하다. 겁부터 준다.
얼마나 어두운지 시험하려고 슬쩍 앞의 아가씨를 건드리니 까-악, 소리를 지른다.  
붉은 조명 한줄기 비치며 줄의 매달려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종이로 만든 천정 사이로 희미하게 나타났다. 그 모습은 마치 태아가 엄마의 뱃속에서 유영하듯, 소리 없이 꿈틀대며 천정을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정면도 아니고 벽면도 아닌 천정이 무대라니... 시작부터 파격이다.

관객들은 이쯤에서 숨소리를 죽인다.
잠시 후 갑자기 종이 천정을 뚫고 튀어나오는 손 하나.
사람들은 먹이 달라는 종달새 새끼 맹쿠로 입을 모아 비명을 지른다.
갑자기 천정이 갈라지며 수많은 공들과 지폐들이 쏟아지고 공연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그 틈에 배우 한 명이 거꾸로 떨어지듯 내려와, 관객들 중 여자 한 사람을 낚아채 다시 천정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엽기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줄 알았지만 비명을 지르며 두 다리를 버둥대면서 천정으로 사라지는 여자.  한참 혼을 빼 놓다가 이윽고 천정이 완전히 없어지면서 광란의 파티가 시작된다.

쿵쿵대는 테크노 음악과 함께 로프에 의지한 채 두 명의 배우가 벽을 운동장 뜀박질 모양 달리고, 다른 배우들은 천정에 달린 밧줄에 의지한 채 높은 고도를 격렬하게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진짜로 빗물이 떨어지고, 바람이 부는 사이, 배우들은 온 몸을 마치 타악기처럼 리듬에 맞추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하며 곡예를 해댄다. 공연이 절정에 이르면 단원들은 모여든 관객 속으로 들어가 또 그 중 몇 명을 낚아채서 공중으로 올라가 비행을 한다.

신기한 서커스를 보는 듯 격렬한 장면이 지나가고 공연장에 다시금 고요한 음악이 흐르면 관객들은 그 제서야 숨을 돌린다. 공연장 정면 스크린에 붉은 색 조명이 비춰지고, 여자를 밧줄로 공중에 묶은 남자단원은, 종을 치듯 밧줄을 잡아당겨 여자를 스크린에 수 없이 부딪치게 한다.
일렁이는 스크린이 흡사 물결처럼 출렁인다. 압권이다.
또 음악 조짐이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양복을 입은 남자와 알몸의 남자가 판자를 사이에 두고 아래 위로 매달려서 천정에서 내려온다. 그러더니 다시 아수라장.
다시금 단원들은 천장에 매달려 공연장 안을 비행하며 합창한다.
마지막으로, 공연장 양쪽에서 날아온 두 명의 단원이 공중에서 서로 랑데부를 하며 돌면서 1시간 20분의 '델라구아다' 공연은 막을 내린다.

전통적인 뮤지컬에서의 댄스처럼 기교를 사용한 춤이 아닌, 타악기에 맞춰 온 몸을 사용하는 '몸짓'으로 사람 자체가 하나의 타악기처럼 사용된다. 마치 제사의식에서 단체로 추는 듯한 강렬함과, 레이브(rave) 파티에서 몸을 흔드는 현대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줄에 매달려 공중을 나를 때나, 벽을 빠르게 탈 때의 단원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춤 이상의 에너지가 있으며, 물이 떨어지는 발판 위에서는 마치 봄비를 맞는 개구리 마냥 즐겁게, 그리고 격렬하게 쪼그렸다 뛰어 오르며 탭 댄스를 춘다.  
특히 타악기의 리듬에 맞추어 많은 단원들이 합창을 하며 발을 구를 때는, 관중들로 하여금 즐겁게 그 퍼포먼스에 동참 시키는 구실을 준다.
  
비 맞은 중 투덜대듯 돈 내고 물에 젖어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엇에 홀린 듯 밝다.
'델라구아다' 전용극장은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임대주차장 부지에 위치한다. 건물 면적 250평, 3층 건물이며, 철제 구조물로 기본 골격을 세우고 알루미늄 복합 판넬과 커튼월 외장을 덮어 현대적이며 실험적인 공연의 이미지를 최대화하였다.
델라구아다 공연의 특징상 공연장의 천장이 높아야 하므로 전체 일반건물의 5층에 버금가는 높이 17m. 면적은 약 1,000평 정도 되는 공간을 공연장으로 만들어 배우들의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안전성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설계 건축하였다.

뮤지컬이랄 수도 그렇다고 가벼운 오페라일수도 연극일수도 없는 이 정체 불명의 공연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썰은 이렇다.

안일함에 대한 반격, 파괴와 충격의 퍼포먼스.
발디누와 제임스가 참여한 언더그라운드 공연그룹의 모토는 파괴와 충격을 선보임으로써 안일하고 소심한 일상에 젖어있는 관객들... 충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작업은 점점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989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에 위치한 기념비 오벨리스코 (Obelisco)를 기어오르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25,000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게 된다. 이후 기념유적지에서의 공연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고 발디누와 제임스의 언더그라운 그룹은 국제페스티발 순회에 들어간다.

엘지카드가 없는 사람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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