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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자金剛子

잘 오셨습니다. 여기부터는 봄의 나라입니다. 지금 하늘에서 물을 내려 주고 있는 것은, 겨우내 목말라 했던 새순들이 기다리든 '젖'입니다. 포석정 도로 곁에 도열해 있는 벗꽃 나무들을 보십시오. 앙증맞은 꽃망울들이 실눈 뜨고 여러분을 맞고 있다는 것을 알 겁니다. 아아 그중 한 녀석은 성급하게 꽃을 틔웠습니다 그려.

때 맞춰 오신 여러분들이 보름 달밤에 이곳을 찾은 것이 오늘로 백 번째가 된다면서요?. 짧지 않은 시간이겠습니다. 백회를 맞아 기획한 달바라기 영월제 성공을 기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달님은 보여 드릴수가 없겠네요. 착한 아기 젖을 줘야 얼른 커서 환한 웃음 같은 꽃을 틔우지요. 비 내리는 봄의 나라 경주 남산 방문을 환영합니다.

계절은 이렇게 온다. 봄비에 대지가 수런거리며 살아나고 남산 능선이 운무 속에 잠겨 있다. 돋아나는 새순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경의로운 일이다. 가만히 귀를 열고 들어 보면 온갖 초목들의 새순끼리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도 하다. 그들의 윤회를 이끌어 내는 알 수 없는 기운은 숲 속은 충만해 있다. 남산은 오락가락하는 비와 안개로 덮여 있다. 틈수골 따라 오르는 등산로엔 살아 난 청솔가지 솔 향기가 싱그럽다.

천룡사지를 지나고 열반재에서 수리봉으로 이르는 능선을 가다보면 용장골이 보인다. 계곡에서는 쉴 사이 없이 구름 같은 안개를 피워 올린다. 겸재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이 강조 된 몽환적 풍경이다. 언 듯 안개가 벋겨지는가 했더니 하얀 암릉들이 나타난다. 남산의 등뼈를 이룬 저 바위에 신라인들은 그들 천년의 비원을 새겨 놓았다. 그것은 역사가 되었고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닿아 있다. 축축히 젖어든 남산은 많은 우리 일행을 받아 드리고도 고즈넉했다.

나는 끝없이 높이만 지향해 왔다. 무수히 히말라야에 발 품을 팔며 높이에의 추구야말로 내가 이루어내야 할 최선의 것이란 사고에서 자유스럽지 못했다. 그 산행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남산을 알았다. 고작 494미터 높이의 구릉에 불과한 남산은 내게 산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났다. 그이와 함께 남산을 만났다. 나를 알아준 인연으로 그분의 회사에 재직을 하게 되었고, 한동안 일에 몰두했었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또는 조직을 위하여 헌신하게 된다. 주말이면 그이를 모시고 남산엘 왔다. 횟수가 거듭 될수록 남산이 주는 교훈에 나는 겸허해졌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히말라야가 신들의 영역이라면 남산은 사람의 산이었다. 히말라야가 높고 험하다면 남산은 깊고 그윽했다. 히말라야가 변방에 있다면 남산은 사람의 중심에 있었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그 흔적이 남산 골짜기마다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말 한대로 골짜기마다 불상과 탑이 넘쳐 난다는 것을 발로, 눈으로 보았다. 남산에 관한 서적을 뒤지고 전문가를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다. 아마추어 남산 사학자가 된 것이다.

뜻을 같이 했던 도반들...도 남산은 산 이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낮 시간이 모자라 보름달 휘황한 밤에도 산행을 했다. 새로운 해석도 시도했다. 시인은 시로 화가는 그림으로, 무용가는 춤으로, 음악가는 음률로 남산을 풀어냈다. 들어 갈수록 남산은 깊고 넓고 높았다. 그 흡인력은 대단했다.
나는 더 이상 높이를, 히말라야를 말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산을 말하고자 노력한다.
그런 남산 사랑 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는 천연기념물 138호인 모감주 나무를 심었다.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그것으로 염주를 만드는 모감주 나무는 남산에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 들었다. 골골 찾아다니며 참 많이 심었다. 우리가 오르는 능선 계곡 쪽에도 심었다.
나는 이내 그것을 찾아내었다. 일행 모르게 잡아 본 그 나무 우듬지는 벌써 양손으로 잡아야 될 만큼 커버렸다. 녹음이 짙은 7월초가 되면 나무는 노란 꽃을 무수하게 피워 낼 것이다. 지금 오락가락하는 빗금처럼. 영어 이름도, 그래서 'golden rain tree'라 부른다. 황금의 비가 쏟아지는 것 같다는 뜻이다.

수많은 황금 꽃이 수정이 되면 세모꼴 초롱모양의 꽈리 닮은 열매가 달린다. 얇은 종이 같은 껍질 속에 까만 열매가 생긴다. 모감주나무의 씨앗은 금강자金剛子라고도 불린다. 금강석의 단단하고 변치 않은 특성에서 금강경의 이름도 붙었듯 이 나무의 열매도 여간 단단한 것이 아니다. 이 열매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고려 숙종은 상자사常慈寺에 머물면서 금강자와 수정염주 각 한 꾸러미를 시주하였다. 조선 태종6년에는 명나라 사신이 금강자 3관을 예물로 바쳤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렇게 생긴 모감주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 금강자 염주는 큰스님들도 아끼는 귀한 애장품이었다. 불국토를 이루겠다는 비원이 담긴 남산에 바람이 불면 염주소리로 가득 채워라. 그런 마음이 나무를 심게 만들었다. 아주 즐거운 노동이었다. 몹시 바빴지만 마음 통하는 사람끼리 근무했던 일도 즐거웠다. 우리 회사는 그때 독일과 기술 도입을 막 끝낸 상태였다. 기술료로 건네 준 것보다 더 많은 돈이 초기 투자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전화를 받았다.  
그분이 돌아 가셨다는 전화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온후한 미소를 띈 얼굴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심근경색이었다. 그때도 하늘에서 이렇게 비가 왔었다.
그분은 남산 사랑의 중심에 늘 있었다. 우리 철없는 도반들 중심에도 늘 있었다.
그때 나무를 심던 도반들과 부인이, 더 나이 든 선배들이 함께 이렇게 남산을 찾았는데 그이는 없다.
그때 심은 모감주 나무는 이렇게 싱그러운데 나무를 심은 손은 없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그이와 함께 우리가 심은 모감주 나무에서 금강자 염주가 울릴 것인가.

                                           2

                                          안녕

꺼이꺼이 울다가 웃다가 퍼마시다가, 볼 말간 고  1짜리 외동 계집아이 호곡에 아득해 지다가, 이제 영정으로만 남은 녀석의 얼굴을 속 울음 삼키며 망연히 보다가,  이승을 떠난 녀석이 마흔  두 살이라는 데 너무 억울한 심사에 화를 내다가, 실성한 놈처럼  몽롱한 가운데 여명이 밝아왔다.  

고향 선산으로 가기 위해 유족은 어두운 새벽부터 출발을 서둘렀다. 녀석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이 마지막 의식을 집전하고 있었고 한편에선 관을 영구차에 옮기기 위해 하얀 장갑을 나누어주었다. 모두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다.
관을 들고 문밖을 나서니 새벽공기가 차다.

어디선가 이명처럼 희미한 종소리가 들렸고, 나는 문득 김태화라는 가수가 부른 '안녕'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문밖 문밖을 나서니 싸늘한 새벽아침
코트 깃을 세우고 휘파람부니
이슬인지 눈물인지 내 눈가 적시면
나즈막히 다시한번 안녕
나즈막히 다시한번 안녕...

산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 녀석과 보낸 수많은 날들이 낡은 필름처럼 머리를 맴돈다. 늘 낙천적이면 서도 한편으론 소심했던 놈. 큰 덩치와 거침없는 육두문자가 퍽 어울렸고 재기발랄한 유머가 넘쳐 주위의 사랑을 받던 후배. 각별하게 나를 따랐고, 어쩌다 호되게 야단을 쳐도, 그 큰 눈만 껌벅이며 뜬 금 없는 소리로 그예 웃게 만들던 녀석.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진단을 받고 병원을 전전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는 여유. 병상으로 문병을 간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했다는 증언을 듣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여유가 대체 무슨 소용일까. 하늘과 땅 사이가 이렇게 아득한데.

너무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며
그대 잠든 얼굴 바라보다가
그대 이마에 입맞춤하고
나즈막히 속삭였네  안녕

산 자가 죽은 사람을 그려내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
어찌하다 보면 눈앞의 영정처럼 가버린 사람 얼굴은 그려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깊은 심성까지 표현 할 수는 없다. 난 살아있고 넌 죽었다. 영정의 흑백 미소가 맞는다면, 그렇게 네가 살아 온 세상을 보았다면, 넌 이제 네가 그토록 기다렸던 자유다. 넌 해방이고 구차한 나는 아직 산다는 갈등의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그래도 풍진 세상 외롭지 않게 어깨동무하고 좀 더 껄껄 웃다 가면 얼마나 좋았을까.

문을 문을 열다가
아쉬움 남아
다시한번 그대를 바라보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종 소리에
나즈막히 다시한번 안녕

이 땅 저 땅, 정 못 붙이고 헤매는 역마살이 탓에 그 녀석의 입원 소식은 들었지만 쉽게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눈부신 현대 의학으로 무장 된 종합 병원을 믿었다. 큰 덩치에 어울리는 낙관과 여유는 팍팍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므로 떠 매어 들어갔던 병원 문을, 씩- 웃으며 제 발로 걸어 나올 줄 알았다. 그 놈은 그래야만 되었다.  
그런데 그게 헛된 바람이었다니... 그의 부음을 듣고 허방다리 건너듯 허둥거리며 도착한 병원이었다.

그러나 그 놈은 늦은 나를 흑백 웃음으로 반겼다. 사진 속에서.

헤여지긴 정말 싫어
사랑이란 오직 그대
하지만 떠나야 하는 나를
붙잡진 붙잡진 말아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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