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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이 글을 시작할까.
통도사 극락암 삼소굴 앞에서 뚝뚝- 하혈을 시작한 동백 꽃 단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이야기부터 할까. 아니면 아직 살아 있는 동강의 전설 이행복 할머니의, 강물처럼 유장한 아라리 노래를 부르는 것부터 시작할까. 그게 청승맞다면, 이 땅 낮은 산허리가 슬그머니 바다를 만나고 봉우리들은 꽃으로 남아 기어이 섬이 된 다도해부터 시작해도 되겠지.

나그네길은 여여(如如)로워야 된다.
길 떠남은 약속이 아니기에 님 찾아가듯 혹은 기다리듯 바쁜 마음이어서는 안된다. 목월의 싯귀대로 구름에 달 가듯 천천히 흐르듯 가야 된다. 그런 걸 알기에 우리는 그렇게 길을 떠났고 이제 그 긴 여행을 마쳤다. 먼 길 일부러 에돌았는데도 산하는 충만한 봄기운에 그야 말로 다투어 피는 꽃 싸움으로 난리가 났다.

그래, 오늘은 꽃 이야기부터 하는 것도 괜찮겠다..
미국에서도 한참 시작한 꽃잔치는 역시 한국에서도 마찮가지였다. 미국의 꽃들을 보며 '이름 모를' 이라는 수식이 필요하다면, 한국의 꽃은 그런 것이 필요 없는 낮 익은 꽃들이기에 눈물바다 건너온 나그네들...는 어서 오라 손사래치는 반가움이겠다.

공항에서 곧바로 강원도로 갔기에 이때쯤 만개했을 진달래를 찾는다고 시종 두리번거렸었다. 산 깊어 골 깊은 강원도는 결빙에서 벗어난 강물들이 프르름으로 흐르고 있었다. 붉은 색으로 북으로 진격을 시작한 화신(花信)을 막아내려는 듯 겨울의 끝은 갈래 친 계곡 속에 게릴라처럼 숨어 버티고 있었다. 봄기운이 상기 일러 강원도에서는 보이지 않던 진달래가 남쪽으로 내려오며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경주를 지나면서부터는 온 산이 진달래 불꽃으로 활활 타올랐다.

어디 진달래뿐일까. 산수유 산목련이 보이더니 화르르 산벗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길가에 심어진 개나리의 노란색은 폭포처럼 쏟아져 넘치더니 그 노란 색은 다랑치 밭의 유채 꽃에 옮겨 붙었다. 과수원 배꽃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나 은하수처럼 피어 낮은 산등성이를 덮고 있다. 봄볕의 찬란함에 얼굴 마저 붉힌 복숭아꽃의 바다. 눈 높이에만 꽃이 있는 건 아니었다. 행여 밟을세라 삼가졌던 연두색 제비꽃. 노란 민들레.

세상은 울긋불긋 꽃 싸움이었다,
말 그대로, 그야 말로 온 산하에 봄이 무르익어 난리가 났다.  

전라남도 보성과 구례 사이의 고찰 대원사 가는 길은 벚꽃으로도 터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여수 돌산반도 끝에서 날마다 해를 기다리고 있는 향일암엔 해당화가 잎보다 많이 피었었다. 청해진의 고장 완도 상수리천연기념물 숲 역시 해당화 잔치였다.

그러나 남쪽으로 갈수록 벚꽃은 짧은 개화를 끝내고 낙화를 시작했다. 꽃잎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까 라는 애절한 말대로 바람은 벚꽃을 눈처럼 날리고 있었다.
강진 땅 김영랑 생가의 인위적 복제에 식상한 사람들은 본 채 뒷 작은 울을 꼭 볼 일이다.

인위적 조성이 아닌 동백나무는 김영랑 시인이 그 동백나무 그늘에서 모란이 피기까지라는 절창을 다듬었을 장소로 어울리겠다. 몇 백년은 좋이 되었을 동백나무 아래는 대궁 채 떨어진 꽃봉오리들로 말 그대로 선연한 핏빛이었다.    

유명한 해태 식당에서 대낮인데도 몇 병 더 비워진 소주는 순전히 그 동백꽃 때문이겠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만난 선창가 주점 여인의 제 설움에 겨운 인생의 반추는 급기야 눈물로 피어났고 또 동백꽃처럼 떨어져 내렸다. 비릿한 갯내음에 그렇게 취해 방파제를 걸으며 본 다도해 이름 모를 섬들도 연꽃처럼 바다에 피어났었다.

훠이훠이 살가운 산하를 돌고 돌다 일행과 헤어져 도착한 정일근 시인 은현시사 앞뜰에도 연산홍 붉은 꽃은 환장하게 피어있었다.
그러나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다.
그예 지고 마는 꽃 그늘에서 눈을 들어 먼 산을 볼 줄 아는 마음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 오늘 저녁엔 그 꽃들이 은현시사 앞마당에 또 한번 무수히 피어 날 것이다.

                                            4월 7일 은현시사에서

  • 이 준해 2004.04.24 08:31
    영철아,
    5월에 오면 Mt.Shasta 가자꾸나, 재일이 흥식이 하고..........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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