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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3월호 
  • 653호

[하롱베이] 007·아바타·킹콩의 무대

신영철
   
 

[신영철의 산 이야기]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섬 혹은 산, 2박3일 크루즈 여행

2박 3일간 승선했던 오키드 크루즈. 배 뒤편에 레저용 보트를 타고 다닌다. 좁은 섬 사이를 둘러보기에 최적화된 크루즈이며, 전망이 가장 좋은 배 뒤쪽 방에 묵었다.
2박 3일간 승선했던 오키드 크루즈. 배 뒤편에 레저용 보트를 타고 다닌다. 좁은 섬 사이를 둘러보기에 최적화된 크루즈이며, 전망이 가장 좋은 배 뒤쪽 방에 묵었다.

지난 11월, 베트남 하롱베이국립공원Halong Bay National Park은 수묵담채화였다. 장판처럼 주름 하나 없는 잔잔한 해면과 그 위로 솟은 제각각의 섬, 섬, 산. 안개 속 미로처럼 얽힌 수로를 2박3일 동안 달렸던 크루즈 유람선 여행. 침실과 욕실의 대형 창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뀌는 수묵담채화 전시장의 자동스크린이었다. 

먹물로 농담 효과를 살린 수묵화에 엷은 채색을 더한 담채화 풍경.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도, 산도, 물도 안개와 어울려 시시각각 색조를 바꾼다. 크루즈 회사는 자고 깨는 침실과, 목욕을 하면서도 이런 풍경 속이라는 걸 강조하려 통유리로 꾸며 놓았을 것이다. 미국처럼 대형 크루즈라면 좁은 이곳에서는 운행하지 못할 것이다. 

푸른빛 바다와 골목길 같은 절벽 미로를 작은 배이기에 운전면허 시험 보듯 돌아다닌다. 이곳 하롱베이국립공원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베트남은 연이은 전쟁으로 문화와 자연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 이제 하롱베이는 세계적인 미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 자연공원에 등재됐다. 세계자연유산위원회는 2000년에 지질학적 가치를 추가적으로 인정해 세계유산 목록에 재차 수록한다. 

세상 많이 변했다. 하노이의 번화가에서 한국말이 여기저기 들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미 한국의 생산 기지가 되어 수천 개의 기업이 진출했다. 한류와 함께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밀착되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한국 군인이 떼거리로 바다를 건너와 총질을 해댄 아픈 기억. 그걸 어느 창고에 쟁여 놓았을까.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 매우 우호적이다. 크루즈의 책임자 역시 삼성의 스마트폰 공장과 축구 박항서 감독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가이드가 말한 섬의 수가 총 1,969개라는 기억을 떠올리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섬’과 ‘산’은 동의어라는 생각. 바다 속이 얼마나 깊은지는 모르지만 저렇게 솟대처럼 솟아 있는 섬은 물이 없다면 산이 될 터. 울릉도나 제주‘섬’이 한라‘산’이라면, 섬이 산이 된들 이상할 이유는 없다. 무수한 섬 혹은 산들이 파도를 막아 주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이곳은 소문 들어 진즉에 알고 있었으나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다. 넘치는 영상과 사진을 보며 대리만족으로 그치려 했다. 그러나 빗금이 오락가락하는 몽환적 풍경 속을 항해하며 알았다. 섬이 산이 될 수 있고, 해벽 클라이밍 종합세트라는 각성. 시간이 지나며 늦게 온 게 후회되었다. 

배에는 작은 풀장이 있고 호텔 5성급에 준하는 시설이었다.
배에는 작은 풀장이 있고 호텔 5성급에 준하는 시설이었다.

깊고 푸른 바다와 섬

섬과 산을 품은 하롱베이는 무슨 뜻일까? 하롱降龍이란 이름은, 즉 용이 내린 곳이란 의미였다. 베이Bay는 만灣이란 뜻의 영어표기였고. 세상 모든 자연에 붙여진 이름에는 당연히 전설이 담겨 있다. 옛날 외적의 침략이 잦았던 이 지역에 용이 내려와 적을 물리치고 보석을 얻었다. 용이 입에서 내뱉은 보석들이 무수한 섬 혹은 산으로 변했다는 이야기. 

안개가 스치는 푸르고 깊은 바다에는 전설과 잘 어울리는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겹친 섬들의 윤곽이 농담濃淡으로 정말 동양적이다. 단풍이 끝난 11월, 아직 산엔 충분한 눈이 내리지 않았기에 찾아 온 하롱베이. 바다에는 엄청난 숫자의 관광선이 떠있다. 

그만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증거. 당연히 이곳은 수많은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바타, 007 네버다이, 인도차이나, 킹콩까지 이곳에서 제작한 영화는 독자들도 거의 봤을 것이다. 크고 작은 섬들로 빙 둘러싸여 있는 까닭에 하롱베이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 같았다. 

크루즈 회사들이 하롱베이 지역을 더 넓게 보이려 기술적인 운행을 했는지는 모른다. 2박3일을 같은 곳을 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넓이의 수역을 돈 느낌.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보여 주는 움직이는 와이드 화면을 장착한 배들.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정말 많기도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길 같은 미로 찾기. 당연한 말이지만 자연이 조각해 놓은 작품은 복제가 없다. 그래서 바다만 보이는 미국의 크루즈처럼 지루하지 않다. 

원근으로 보이는 수많은 섬 혹은 산이 제각각 다르고 또 합쳐져 풍경이 되고 있다. 가만 생각하니 중국 계림桂林을 무한확대해 놓은 풍경과 닮은꼴이다. 석회암 산봉우리들을 끝없이 침식시킨 리강漓江이 만들어 놓은 풍경구 계림.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지만, 작은 백사장을 걷거나 카약도 즐길 수 있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지만, 작은 백사장을 걷거나 카약도 즐길 수 있었다.
 

또 있다. 쿤밍昆明의 석림石林과 아바타 촬영지 장가계張家界. 이 기막힌 풍경구는 석회암 기암괴석 봉우리가 숲을 만든 곳. 하롱베이 역시 석회암이 침식되어 만들어진 카르스트 지형이니 닮은꼴이다. ‘물의 길’이란 아바타 최신 개봉작처럼, 장가계에 물을 채워 놓으면 하롱베이가 될 것이라는 상상에 미소가 나온다. 

원고를 정리하며 찾아 본 지질학 자료를 보고 무릎을 탁 친다. 역시 석림과 계림 그리고 하롱베이가 거대한 한 덩어리 석회암 지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에 약한 석회암지대 하롱베이의 섬과 산에도 동굴이 많다. 그러나 동굴은 실망. 우리나라에도 석회암 지역에는 석회동굴이 많다. 삼척의 환선굴, 단양의 고수동굴에 비한다면 하롱베이 석회동굴은 귀여운 정도. 

베트남의 이순신, 쩐흥다오 장군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는 동안에도 크루즈는 달리고 있다. 동강이 깎아 만든 ‘뼝대’ 같은 절벽이 오락가락하는 운무 속에 몽유도원도를 실시간 보여 준다. 노르웨이 피오르드처럼 수로마다 절벽이 서있는 잔잔한 바다. 이런 지형이 형성되는 과학적 설명은 가능하나, 종합적 해석은 또 다른 시선일 것이다. 

잔잔한 이 바다에도 아픔은 존재한다. 중국과의 국경이라는 특수성과, 바다로부터 본토로 이어지는 입구라는 특성. 베트남 역사에서 하롱베이는 침략자들과 벌인 해전의 주 무대가 되어 왔다. 

임진왜란 때 섬 많은 다도해 수로를 활용해 백전백승한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에게 거북선이 있었다면, 베트남의 이순신이라 불리는 ‘쩐흥다오’ 장군에게는 쇠말뚝이 있었다. 

무수한 섬들 가운데 같은 모양의 섬은 하나도 없었다. 며칠 동안 늘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무수한 섬들 가운데 같은 모양의 섬은 하나도 없었다. 며칠 동안 늘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1288년, 베트남군은 쇠 창날을 입힌 창을 미리 물속에 꽂아 놓았다. 그곳으로 몽골 함대를 유인한 후 전투시간을 끌며 간조를 기다렸다. 물이 빠지자 몽골군 배 밑이 뾰족한 쇠창에 뚫려 모조리 침몰했다는 기록. 쩐흥다오 장군은 이곳의 얽히고설킨 수로를 이용해 중국 군대와 세 번 붙어 세 번 모두 이겼다. 역사는 채색되어 기억되지만 더욱 심각한 아픔이 이곳에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베트남전 중의 일이다. 전쟁 중 미군이 섬들 사이 수로에 기뢰를 쫙 깔아 놓는다. 그 기뢰 중 아직 수거되지 않은 게 상당수에 이른다. 잘 먹고 잘 보자는 유람선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 숱하게 외세의 침략을 받아온 점도 한국과 베트남은 닮은꼴. 

우리도 그렇지만 고대에서 근세까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베트남을 괴롭혔던 것은 중국. 한국처럼 베트남도 대국 중국에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런 외세를 견디고 독립국가를 만든 한국과 베트남. 

근대에 들어서면서 19세기에 프랑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 그후 또 다시 프랑스와 미국이 번갈아 베트남을 침공하고 지배했다. 최고의 열강들을 상대로 끝내 독립을 지키고 통일을 쟁취한 베트남인들의 용기와 애국심. 놀라운 일이다. 

그런 저력은 감탄할 따름이지만 한때 원수였던 나라들과 손을 굳게 맞잡는 반전. 거기에서 무서움마저 느껴진다. 1억 명 가까운 젊은 나라 베트남. 베트남에선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하다. 베트남은 2021년 중국·미국에 이어 한국이 수출을 가장 많이 한 세 번째 국가였다. 

한국 기업 3,234개가 진출한 나라도 베트남이다. 삼성 베트남의 수출 규모는 2020년 말 기준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20%를 기록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수치 같은데 사실이다. 현지 공장에서 한국어를 하면 월급 3배를 받는다는 건 상식. 

배의 앞머리에서 본 풍경. 가까워지는 섬 혹은 산이 너무 아름다웠다.
배의 앞머리에서 본 풍경. 가까워지는 섬 혹은 산이 너무 아름다웠다.

한국과 베트남의 닮은꼴

과거를 묻고 부강한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그들의 강인함과 현실 감각은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 한국과 닮은꼴이 있다. 우리나라에 조선조 이李씨 왕조가 있었듯 베트남에도 리李 왕조가 있었다. 하노이에서 리 왕조의 태조 리꽁우언李公蘊의 동상을 본 적이 있다. 앞서 말한 베트남의 이순신, 쩐흥다오 장군은 리李 왕조를 멸망시킨 쩐陳 왕족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잔인하게 상대편을 숙청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 리 왕조의 후손은 쿠데타 왕조인 쩐 왕조 때 거의 몰살되었다. 왕위를 찬탈한 신흥왕조는 구왕조였던 리李씨 일족을 철저하게 제거하려 했다. 언제 다시 복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 

그 탓에 지금 베트남에는 리 왕조 후손이 없다. 살아남은 왕자 리 롱뜨엉李龍祥은 일족을 이끌고 중국 송나라로 망명한다. 그러나 일행을 실은 배는 표류를 시작했다. 도착한 곳이 한반도 서해안 옹진반도의 창린도猖麟島. 베트남에서 한반도까지의 거리는 3,600여 km. 비행기로 5시간의 거리를 표류했으니, 이들의 한반도 도착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현지 어부의 배. 일은 고단하겠지만 기막힌 절경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현지 어부의 배. 일은 고단하겠지만 기막힌 절경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당시 한반도의 지배자는 고려였고, 임금은 고종. 고려 조정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안남국(베트남) 왕자 일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베트남 보트피플인 셈이다. 몽골元이 침략하자 베트남 이주민들은 전투에 참가해 용맹하게 싸워 공을 세운다. 

고려 조정은 리롱뜨엉李龍祥을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하고 고려 여인과 결혼시킨다. 화산 이씨의 스토리가 여기서 시작되는데, 베트남 언론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로서는 단절되었다고 믿은 리 왕조 후손이 한국에서 발견된 것. 지금 베트남 정부에서도 화산 이씨 후손을 리 왕조의 후예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리 왕조가 출범한 음력 3월 15일에 정부는 행사까지 열고 있다. 이제 먹고 살 만한 나라가 된 베트남. 전쟁통에 잊혔던 하롱베이 같은 자연과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득히 떨어져 있는데도 한국과 베트남은 많은 공통점과 닮은꼴을 공유하고 있었다. 

면적이 한국의 1.7배, 인구 1억에 풍부한 자원. 닮은꼴 베트남에도 한국처럼 쨍쨍한 해가 뜰 날이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지막 닮은꼴이 눈앞에 나타났다. 영월 동강 연포나루 뼝대, 석회암 절벽 닮은 하롱베이 섬, 아니 산이 뱃전에 닿을 듯 스치고 있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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