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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산

 

"잘가게, 벗이여" 친구를 요세미티에 묻다

 

요세미티 파노라마 트레일

하프돔 주위를 행성처럼 도는 파노라마 트레일 12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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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진입하면 하프돔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티오가 로드에서 본 하프돔 직벽의 반대편 모습 

 

아버님은 지난 74일 주말에 모셨습니다. 요세미티국립공원 글레이셔 포인트Glacier Point 근처의 경관 좋은 곳입니다.”  

글과 함께 눈에 익은 사진도 볼 수 있었다.

글레이셔 포인트가 아니라면 절대 각도가 나올 수 없는 하프돔Half Dome 사진. 우람한 제프리 소나무 숲. 큰 소나무가 클로즈업 된 걸 보니 그 아래가 화장한 아버지의 산골散骨(화장해 뼛가루를 뿌림)처라는 은유.

 

사람 좋은 웃음이 돋보였던 악우岳友는 이제 GPS 좌표 속 위도와 경도의 숫자로만 남았다. 공원 당국의 허가를 받아 산골을 마치고 돌아 온 외아들의 사진과 글. 그걸 읽으며 가슴 한쪽이 먹먹해져 왔다.

 

추모 산행을 가는데 함께 하시겠습니까?”

시간이 지나고 고인이 회장으로 있었던 산악회에서 연락이 왔다.

조금 있으면 눈이 내려 글레이셔 포인트를 오르는 도로가 막힐 겁니다. 그 도로는 2022년 내내 공사한다는 출입금지 공고도 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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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 눈 앞의 하프돔을 지구와 달의 공전처럼 서서히 원형으로 돌게 될 것이다.

 

골수 산악인산으로 보내다

 

지금이 아니면 2년 후에나 갈 수 있다는 걸, 요세미티국립공원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알았다. 화제는 고인과 함께했던 산행에 대한 추억들. 우리가 가고 있는 글레이셔 포인트는 고인이 요세미티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곳.

 

만약 자신이 잘못된다면 화장 후 뿌려달라는 장소도 그곳이었다. 농담처럼 그러나 확실하게 들었다는 기억도 누군가 소환해 냈다. 나도 그와 요세미티 산행을 함께했었다. 속없이 환하게 웃던 얼굴. LA에서는 흔한 기독교식 장례식을 그는 싫어했다. 산악인 장처럼 산악인들이 다수를 이룬 장례식장이었다. 그곳에선 그가 평생 산에서 찍은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 주었다. 

 

지금은 장성한 아들을 업고 당시 북한산을 올랐던 사진. 인수봉에서의 클라이밍 컷, 사진기는 360° 방향 모든 경치를 한 장에 담을 수 없다. 나누어 촬영을 한 뒤, 옆으로 길게 이어 붙여 만든 파노라마 사진. 인생도 그렇다. 슬라이드에 닮긴 짧고 굵게 살다 간 그의 삶 역시 파노라마와 같았다.

 

조문객 중 누군가는 고인에게 어울리는 품위와 격조 있는 장례식이라고 했다. 우리가 추모 산행을 하려는 트레일 이름까지도 파노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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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보낸 악우 산골을 한 장소를 찾아 GPS 좌표를 읽고 있는 산악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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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많은 산을 오른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묵념으로 달래고 있는 산악인들

 

차로 도착한 글레이셔 포인트는 해발 2,200m. 여전히 눈앞에 보이는 해발 2,695m 하프돔은 상형문자였다. 달걀을 세워 가로로 반 자르고, 남은 걸 다시 세로로 자른 풍경. 우리가 서 있는 눈앞의 하프돔과 우리 사이 마주보는 광활한 공간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다.

 

요세미티계곡 바닥이 1,220m이니 1,000m의 표고차가 나는 돌 절벽에서 만나는 텅 빈 공간. 고개를 절벽 밖으로 내밀면 고도감에 아찔하다. 관광객이 많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만든 철 난간을 잡고 고개를 빼어 보지만, 그 난간에 무게를 싣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랬으니까. 작년 이곳에서 가까운 태프트 포인트에서 셀카를 찍던 젊은 부부가 추락했다. 그후의 설명은 사족蛇足이 될 터.

 

우리는 산골처를 찾아 나섰다. 구글 GPS가 인도하는 좌표를 따라가니 예상대로 파노라마 트레일 입구였다. 사진에서 본 우람한 소나무가 서있었고, 그 가지 사이로 하프돔이 우뚝했다.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고 누군가 혼잣말을 했다. 평생 산만 오른 골수 산악인이 좋아하던 곳에서 스스로 풍경이 되었으니 곰곰 생각하면 그 또한 고마운 일. 고인을 그리는 합동묵념을 올린 우리는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언뜻 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계절마다 요세미티에서는 특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봄이 되면 눈 녹은 물이 우렁찬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폭포 소리가 있다. 그러나 이 깊은 가을은 푸름이 황금빛으로 변하고 침묵이 계곡을 채우고 있었다. 가을은 요세미티가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계절이다. 눈이 온다면 사람들이 사라지고 산도 겨울잠을 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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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셔 포인트에서 본 요세미티 계곡과 파노라마 트레일 입구의 표지판

   

투명한 햇빛과 선선한 기온 속에 걷다 보니 가라앉았던 기분이 풀어진다. ‘뭐 조금 일찍 갔을 뿐인데곧 만날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다 보니 명당 터를 잡은 게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유는 눈앞 풍경 때문. 우리가 이어가는 트레일은 요세미티에서 최고의 등산로 중 하나로 소문났다파노라마 트레일은 하프돔을 중심축으로 삼아 반원을 그리며 이어진다하프돔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코스인 12정도의 풍경 산길.

 

이렇게 웅장하며 탁 트인 전망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요세미티계곡 전체와 무수한 폭포, 그리고 압권인 하프돔과 마주하는 산길. 탁 트인 전망 속 길을 가는 우리 눈에 보석 같은 요세미티의 명소들이 시선을 호강시킨다. 하프돔은 언제나 시선의 중앙에 서있다. 지금은 단애의 절벽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뒤로 숨어 둥근 등만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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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미티 수 많은 산 길중 파노라마 트레일은 유명세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통바위 하프돔을 몇 번 오른 적이 있다. 파노라마 등산로에서 보이는 직벽과는 달리 북동쪽으로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서브돔에서 쇠줄을 잡고 잘 만들어진 등산로를 통해 정상에 오르는 것.

 

정상은 운동장 몇 개가 이어진 것처럼 아주 넓었다. 어느 보름날 하프돔 정상에서 비박하려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노란 보름달 등불 천공에 걸고 요세미티계곡을 내려다보면 느낌이 어떨까.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떠 있을 것이다. 땅에도 보석처럼 영롱한 전등 불빛들이 땅 별이 되어 돋아 난 풍경. 그러나 꿈을 깨고 나면 결말은 언제나 허무한 법.

 

하프돔을 오르는 사람은 늘어만 가는데 잦은 추락으로 사망 사고가 빈발해졌다. 그 이유로 이제 허가제로 바뀌었다. 추첨으로 하루 300명만 등반을 허가하는데 그것 받기가 정말 하늘 별 따기.

 

하지만 그 소원은 변형된 상태로 다가왔다. 그때 하프돔 정상에서 마주 보였던 이곳, 글레이셔 포인트에서 이루어진 것. 당시 MBC 방송 제작진과 이곳에서 한 밤을 보냈다. 하프돔에 걸친 일출을 찍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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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돔이 서서히 그 형태가 바뀌고 있다. 요세미티 사슴들은 사람에 익숙해서 도망치지도 않는다.

   

파노라마라는 말대로 오늘도 눈부신 풍경 속을 걷는다. 산길을 이어가며 회원들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요세미티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등산로. 어느 곳에서보다 웅장하게 보이는 하프돔은 이 트레일의 구심점이자 하나의 행성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 행성을 도는 위성처럼 둥글게 산길을 이어가는 중이고.

 

트레일을 이어가며 보이는 거대한 산군은 하나의 돌덩어리였다. 누구에게 물어도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라는 것에 동의했다. 하프돔은 물론 요세미티계곡을 감싸고 있는 돌산과 절벽들. 무수히 걸쳐 있는 폭포도 돌산을 깎아 내며 생긴 것이며, 눈앞 파노라마 산괴 전체가 화강암 덩어리였다.

   

세계에서 달력 사진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는 요세미티 풍경은 그 화강암 산괴에 빙하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믿을 수 없어도 그게 사실이라는 건 이미 명백하게 밝혀졌다. 2,695m의 통 돌산, 하프돔 반쪽을 싹둑 날려 버린 얼음의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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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걷고 있는 등산로 곁인데도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수영을 즐기고 있는 미국 여성산악인들 

 

내리막길이 시작되더니 점심 먹을 장소로 계획한 일루엣 크릭을 만났다. 역시 이곳도 화강암반과 너덜겅으로 이루어진 계곡인데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계곡 끝에는 폭포가 있고 그 직전에 커다란 웅덩이가 보인다. 화강암반에 쌓인 작은 호수, 소위 알탕이다.

 

그곳에 미국 아가씨 3명이 보인다. 놀랍게도 그녀들은 알몸으로 수영을 즐기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오가는 등산객이 많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부끄러워 서둘러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다리를 건넌 다음엔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일루엣폭포를 지났으니 이제 네바다폭포, 버날폭포를 지날 것이다. 요세미티에는 무려 20여 개의 폭포가 산재해 있다. 이쯤 걸었으면 계곡 건너 왼쪽 바위벽에 요세미티폭포가 보일 텐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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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었을 것이다. 이미 산이 된 악우嶽友와 함께 올랐을 때 찍었던 요세미티 포인트와 폭포 

 

739m의 요세미티폭포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높다. 길을 멈춘 일행이 폭포를 찾았으나 거대한 바위벽에 눈물자국처럼 물이 흘렀던 흔적만 보였다.

 

눈과 얼음이 녹아 폭포수가 흘러넘치는 4~6월에는 물대포처럼 쏟아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건기에는 물이 흘렀던 흔적만 절벽에 걸려 있다. 이제 하프돔 직벽은 사라졌다. 하프돔은 숨어 있던 둥근 옆모습을 보여 주며 흡사 엄지손가락을 세운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하프돔이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는 걸 목격했던 산행. 가파른 하산길이 시작되고 있다. 글레이셔 포인트에서 고도감을 느꼈던 요세미티 밸리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는 길. 길고 멀다. 시나브로 해가 지고 있다.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수량이 없다 해도 네바다폭포라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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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프돔이 처음과 다른 모습이다자세히 보면 유명한 네바다 폭포가 있는데 가뭄 탓에 수량이 매우 적었다.

 

점점 소리가 커지더니 파노라마 트레일과 존 뮤어 트레일이 만나는 메인 등산로를 만났다. 머세드강을 품어 거대한 치마폭처럼 수량이 풍부했던 네바다폭포는 많이 야위어 있다. 계절 따라 변하고 바뀌는 게 폭포뿐일까. 가고 오는 게 어디 사람뿐이랴. 그리운 사람을 반추하며 걸었던 회상의 트레일. 야영장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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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산악회의 노하우 덕에 그 어렵다는 요세미티 어퍼파인 캠프장 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글 신영철 산악문학가, 사진 재미한인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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