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고속도로 끝에서 샌 개브리얼 산맥이 깨어나고 있다.
서늘하고 히붐한 새벽빛과 태양을 해산하려고 붉게 물든 동녘.
나 홀로 달리지만 온전한 신새벽의 이 시간이 좋다.
빨리 가려면 홀로 가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래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옳다.
그래서 나는 우리 산악회가 소중하다.
연중 계획이 나오고 그 계획대로 산행을 이어가는 산악회.
매주 약속장소에서 만나야하는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
그 약속은 기분 좋은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산악회는 ‘오래가고’ 또 ‘함께’ 오른다.
그런 강제성이 불편하여 홀로 산행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결국 산과 멀어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 산악회의 약속은 복음이다.
아주사 만남 장소에는 10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반가운 얼굴도 보인다.
이명헌 선배님와 총무로 산악회에 봉사했던 이정호씨.
산악회에 새롭게 조인한 사람들도 반갑다.
하지만 나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더 믿는다.
카풀로 도착한 크리스탈 호수 캠프장이 완전 봄 날씨다.
1월 하고도 하순인데 눈은커녕 소나무 숲만 청정하다.
2년 전, 우리는 오늘 오르려는 산정에서 기가 막힌 설국을 체험했다.
과연 오늘도 그런 눈 호강을 시켜줄까?
작년엔 사상 최대의 눈과 비가 내렸다는데 올해는 완전 가뭄.
“무릅아 오늘도 잘 부탁한다”는 통성기도문을 합창하고 산행 시작.
이명헌 선배님 체력이 예사롭지 않다.
몰래 체력 단련을 하셨는지 바람처럼 걷는다.
윈디갭에 도착하니 빈약한 눈이 병든 아이 얼굴에 번진 버짐처럼 듬성듬성 보인다.
세상 쉬운 산행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슬립도 8000피트가 넘으니 백두산 높이다.
힘들게 올라 선 정상엔 계란프라이 만큼의 눈이 덮여 있다.
그러나 멀리 카타리나 섬도 보이고 다운타운 빌딩 숲도 보인다.
눈 아래로는 크리스탈 호수가 파란 눈을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좋다. 그저 좋다.
갑자기 상투적인 북한 말투가 나온다.
“세상 부럼 없어라”
진짜 무엇이 부러울까.
우리가 정말 부러워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하산은 조금 멀지만 위디갭 반대편 아이슬립 리지로 시작했다.
한마디로 경치가 “아주그냥 쥑여 줘요~” 다.
훠이훠이 길을 가르며 휘파람을 분다.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사고~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자~”
하산을 마치고 뒷풀이는 이명헌 선배님이 부담했다.
이정호 회원과 함께 산악회 복귀 기념으로 쏘신 것.
유회장과 이명헌 선배님 궁합이 주(酒) 찬송으로 잘 맞는다.
술과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금언이 맞는다는 걸 새삼스레 알았다.
그리고 우리 홈페이지 최초로 뒤풀이 결재 사진을 올린다.
왜? 고마우니까. 그리고 이명헌 선배님이 그렇게 시켰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