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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앨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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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이 LA마라톤에 갔는지

꽃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 오늘 산행엔 4명이 참석했다.

 

아아,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럴 사람은 한 명도 없겠지만, 힘들 산행에 결석했을 수도 있는 것.

 

Mt윌슨 트레일은 언제나 힘이 든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고도가 4800피트이니 발디 보다 높다.

 

거기에 왕복 14마일.

그러니 왕복 9마일 정도인 발디 봉 보다 더 힘들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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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어떠랴.

비온 다고 밥 안 먹을 수 없듯, 식구 적다고 산행을 하지 못 할 건 없는 일.

 

호젓해서 더 즐거울 수도 있다는 오래 된 생각.

어차피 산행은 홀로 걷는 일인 것을.

 

우리는 빼먹을 수 없는 무릎기도를 경건하게 올리고 산행에 나섰다.

들머리에서 유진순 회원께서 한 마디 하신다.

 

나는 이 흙냄새가 좋아요. 꽃향기도 섞여 있는 봄 냄새.”

킁킁 대니 정말 봄바람 속에 알싸한 꽃향기가 묻어 있다.

 

문득 떠 오른 폴란드 속담.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

일 년 사계절을 여인에 비유한 폴란드의 비유인데 그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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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어머니처럼 모든 부분에서 풍성하다.

가을은 미망인이 느낄 감정처럼 쓸쓸한 것.

 

삭풍불고 무엇이든 꽁 얼려 버린 겨울은 계모처럼 차갑다는 비유.

그러나 봄은 부드러운 처녀라고 한껏 치세운다.

 

물론 봄바람도 부드럽고 꽃잎도, 봄에 솟은 새싹들도 부드럽다.

그러니 봄은 생명이요, 처녀는 생명을 잉태하는 봄이라는 비유일까?

 

길고 긴 트레일을 이어가는 게 즐겁다.

이미 Mt윌슨은 봄이 점령했다는 걸 눈으로 본다.

 

산이, 구릉이, 계곡이, 온통 푸르른 초록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미 산 전체에 봄기운은 푸른 새싹을 무장무장 피워냈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 맞다.

나뭇가지마다 신생의 새순이 돋고 성질 급한 어느 나무는 꽃을 피워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신비롭고 놀라운 일은 없다.

Mt윌슨을 점령한 봄 처녀는 생명이고 불가사의이며 환희가 맞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한국의 봄은 처녀가 아니다.

한국 처녀들이 애를 안 낳잖아.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보다 처녀가 애를 안 나는 현상이 더 무섭다.

폴란드 속담이 맞으려면 한국 처녀들이여! 생명을 잉태하라! 애를 낳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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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이 길을 걸었었다.

오늘처럼 우렁찬 물소리를 처음 듣는다.

 

과연 지난겨울 비가 많았음을 알겠다.

푸른 트레일을, 푸른 물소리를 동무 삼아 훠이 훠이 걷는다.

 

오란차 캠프를 지나고 가파른 만자니타 벤치를 향해 오른다.

힘들지만 온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 좋다.

 

지척의 태평양은 스모그에 보이지 않지만 푸른 나무숲바다는 눈앞이다.

고도를 올리자 건너편 능선 넘어 홀연히 히말라야 연봉이 나타난다.

 

아직 정상부에 눈이 하얗게 쌓인 Mt 발디와 어깨 걸고 있는 온타리오.

푸른 신생의 봄 숲에서 환영처럼 우뚝한 설산을 보다니.

 

지들이 정말 히말라야 연봉이라도 되는 듯 웅장하다.

눈과 대지의 경계인 설선까지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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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윌슨은 양지 바른 곳이라 원래 따듯한 산이다.

눈은커녕 지금 봄이 한창이다.

 

물기 머금은 트레일은 봄처럼 인자하다.

이 산에서는 정말 드물게 물소리가 요란하다.

 

숲은 거대한 천연의 댐이다.

비를 머금어 고맙게 정수까지 한 후 계곡에 내려 준다.

 

하산 할 때는 코스를 바꾸어야겠다.

옛 당나귀 길 계곡을 따라 훠스트 워터까지 내려가야겠다.

 

산에 들어서 속세의 걱정을 하는 사람이 바보다.

걱정의 생각이여 가거라, 슬픔의 날이여 사라져라, 미움의 생각이여 소멸해라.

 

찬란한 봄의 향기와 햇볕을 온 몸에 묻히며 걷는 이 순간에 집중하라.

누렇게 메말랐던 나무 가지에 새순이 돋아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사막성 기후에 우렁찬 물소리는 듣는 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일까.

그렇게 봄을 즐기며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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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부 소방도로가 쏟아진 바위사태로 막혔다.

그러나 길 없는 길을 가는 게 산쟁이들.

 

누군가 샛길을 만들어 놓았다.

하산 길.

애초 생각대로 봄의 진면목을 보기위해 옛길로 내려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계곡물이 요란하게 흐르고 있다.

앞 다투어 흐르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신명나는 굿판 같다.

 

서로 다른 음색과 서로 다른 물결이 어울려 화음을 엮어내는 봄의 교향곡.

우리가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항상 온다.

우리가 바라지 않아도 꽃들은 봄이 되면 혼자 꽃을 피워낸다.

 

그것을 우리는 자연이라고 부른다.

봄이 저 스스로 벌리는 축제에, 나는 그저 찾아 온 손님일 것이다.

 

찾는 자만이 볼 것이요, 걷는 자만이 알 수 있었던 3월의 Mt윌슨 산행.

행복했던 시간은 끝났고 다시 걱정 많은 속세 생각으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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