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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앨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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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히킨스 산행 카풀 출발지, 아주사에는 6명이 모였다.

산행 들머리 크리스탈 레잌으로 가는 웨스트 폭 계곡과 산은 한국 봄 산을 닮았다.

 

공기 속에도 초록 빛깔이 묻어 있는 듯하다.

오월이라면 이곳은 지글거리는 태양 때문이라도 누런 산야가 제철일 터.

 

이런 연초록 색상의 풍경은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리는 도중에도 는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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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나듯 날리고 있는 는비’.

가늘게 내리는 비를 '가랑비'라고 한다.

 

이슬처럼 내리는 비는 '이슬비

실같이 가늘게 내리는 비는 '실비

 

바람이 없는 날 가늘고 성기게 내리는 비는 '보슬비

가랑비보다도 더 가늘어, 마치 안개처럼 보이는 는비가 흩날리는 것이다.

 

이런 비를 한국 토속어로 '는개' 혹은 '는비'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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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할 때 유회장이 크램폰을 챙기라고 일어 줬다.

고도를 올린 산에는 간밤의 비가 눈이 되어 쌓여 있을 터.

 

착한 회원들은 그 말에 모두 크램폰을 챙겨 넣었었다.

산행 들머리 크리스탈 레잌 주차장에 도착하니 하늘의 구름이 복잡하다.

 

통성기도문 무릅아 오늘도 잘 부탁한다로 아멘하고 힘찬 산행 시작.

햇볕이 나는 가 했는데 안개가 덮어 버리고 계곡 구름은 산정을 향해 치솟고 있다.

 

우리는 이 산을 수십 번쯤 오른 경력이 있다.

많이 가본 산이지만 그럼에도 늘 새롭고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날씨에 따라 다르며, 동행한 사람들이 누군가에 따라 다르다.

분명히 말하건 데 나는 단 한 번도 똑 같은 산을 간 적이 없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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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빠져 나와 길게 트레버스를 하는 트레일에 몽환처럼 안개가 뒤덮고 있다.

트레일이 뭐야, 산까지 점령해 버린 안개.

 

김승옥 소설가의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그 말처럼 우리를 감싼 안개는 점령군처럼 산을 지웠다, 드러냈다하며 시야를 희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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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계곡에서 피어나는 구름과 합치더니 아이맥스 영상처럼 비현실적 그림을 그려낸다.

이러니 수십 번 왔음에도, 우리는 처음 경험하는 산이 되는 것이다.

 

바람목인 윈디갭에 올랐다.

지금쯤이면 4월에 멕시코 국경을 출발한 PCT 팀이 한창 이곳을 통과해야 할 시기다.

 

그러나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 눈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지미캠프에서 야영을 한 보이스카웃 소년들이 보인다.

 

여기서 유회장이 걱정했던 눈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미련 때문에 트레일을 좀 더 이어 갔지만 눈은 점점 깊어진다.

 

이렇다면 목적한 히킨스 봉까지 가파른 응달 사면을 3마일 정도 이어가야 한다.

우리는 모험대신 눈앞 우뚝한 아이슬립 봉을 오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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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이게 산밖에 모르는 복 받은 우리의 신의 한 수축복이었다.

가끔씩 나타나는 설벽을 피해 길 없는 가파른 능선을 택하여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산의 지형은 눈을 감고도 훤한 자신감이 있어 방향과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고도를 올리고 맞바람 부는 능선에 서자 상고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람 때문에 굽자란 소나무등걸이 철갑을 두른 듯 꽁꽁 얼음을 두르고 있다.

도열한 듯 맞바람 속에 서있는 잘생긴 소나무들 가지에 무장무장 피어 난 상고대.

 

3년 전, 우리는 오늘 오르려는 아이슬립 산정에서 기가 막힌 설국을 체험했다.

그때의 황홀했던 설국 풍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과연 오늘도 아이슬립 정상은 상고대를 가득 피워 내 눈 호강을 시켜주고 있다.

그럴 것이다.

소나무 숲 가지마다 온통 피어난 상고대 풍년, 서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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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란 무엇인가?

겨울 산에서는 나뭇가지에 하얗게 피어난 눈꽃을 자주 만난다.

 

그러나 크리스털 닮은 상고대는 눈꽃이 아니다.

그렇다고 상고대가 얼음꽃이라는 말도 아니다.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서 공기중에 존재하는 안개나 물방울이 만든 서리꽃이다.

안개와 비가 나뭇가지나 풀에 눈처럼 내려 만들어진 서리꽃이 상고대다.

 

한자로는 수상樹霜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air hoar’라고 부른다.

너무 이뻐 나뭇가지에 피어난 상고대를 가만히 살펴보면 서리가 분명하다.

 

상고대는 아주 빠른 시간에 냉각되므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서리처럼 서로 붙으려는 힘이 약하다.

 

그래서 나무나 풀에서 쉽게 떨어진다.

적요한 산속에서 상고대 서리꽃 낙화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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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운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과연 운이 좋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유회장이 그예 한마디 한다.

요지경처럼 아름답기는 하지만 해가 뜨면 신기루처럼 금방 녹아 없어지겠네요.”

 

그 말이 맞다.

그렇게 짧은 시간만 관찰할 수 있는 서리꽃을 우리는 만난 것이다.

 

영원이라는 게 없는 자연에서 무릇 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안개 무자 무진기행처럼 진군하는 안개와, 날씨와, 온도와, 바람이 만든 상고대.

그러므로 수십 번 오른 산인데도 이제 처음으로 이런 장관과 상견례를 하고 있다.

 

상고대는 마치 한자어처럼 생각되지만 순 우리말이라는 것도 미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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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화가답게 샤론씨 카메라도 바빠졌다.

한 폭의 겨울수채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우리 스스로 그림이 되었던 행복한 산행.

 

눈이 없는 양지쪽 하산 길.

정상에 도열하듯 서 있는 소나무들에 자주 눈이 갔다.

 

세상 쉬운 산행은 어디에도 없다.

아이슬립도 8000피트를 훌쩍 넘어서니 백두산 높이다.

 

다리 뻐근한 산행과 눈 맑아지는 풍경에 행복했던 하루.

그 꽉 찬 하루의 끝을 우리 단골집에서 맥주로 축하 했다.

 

 

 

새로 조인한 이규영씨가 쏘려했지만, 샤론씨 부부가 양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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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뒤풀이 자리를 마련해 준 샤론씨 부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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