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두 12명이 산행에 나섰다.
원래 예정은 트윈픽이었으나 눈 때문에 도로를 막아 Mt. Pacifico로 산행을 바꾸었다.
“아마 정상 근처쯤 눈이 많을 거야.”
퍼시피코 산은 우리 산악회원들에겐 아주 익숙한 산이다.
눈을 감고 그린 등산지도가 있다면 정확할 것이다.
변형시켜 종주를 한 코스도 손금처럼 잘 안다.
밀크릭 ‘포니’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회장을 따라 스트레칭을 했다.
산정엔 눈이 하얗다.
퍼시피코는 건조한 사막의 산이다.
산정에 눈이 쌓인 모습이 이채롭다.
산행을 시작하니 눈 덕분인지 등산로가 촉촉하다.
촉촉이란 낱말을 입안에서 굴려 보니 봄기운이 느껴진다.
축축이란 낱말을 떠 올리면? 하고 스스로 물어 보니, 습기 많은 여름 느낌.
이런 씰데읍는 말장난을 하는 이유는, 온 몸의 세포가 신이 났기 때문이다.
하늘은 파랗지, 바람에는 봄이 담뿍 묻어 있지, 등산로는 촉촉하지... 좋다.
그저.
그런데... 아아, 그런데...
촉촉이고 축축이고 따위는 한방에 사라지고 ‘팍팍’을 만났다.
멸치도 생선이 맞는다면, 순둥이 퍼시피코도 눈 폭탄 맞은 설산이 맞았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이 등산로에 쌓여 있다.
정상근처에서 착용하려 생각했던 마이크로 스파이크를 신었다.
우리처럼 산을 좋아하는 누군가 미완성 럿셀을 해 놓았다.
그 발자국만으로도 길을 알 수 있어 감지덕지 고마운 일이다.
뒤뚱뒤뚱 그 발자국에 우리 발을 맞춰 걸어야한다.
헛 둘 헛 둘, 칙칙폭폭 리듬감이 중요하다.
함께 앞서 만들어 놓은 눈구덩이에 발을 맞춰 나간다.
짝 발로 디딘다면 다음 발을 놓은 폼이 마땅치 않다.
계곡에는 신기루처럼 물철철이다.
이 산을 수태 다녔어도 계곡에 물이 흐르는 건 처음 본다.
문득 PC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종주팀이 걱정이다.
작년엔 이맘 때 종주팀을 이 등산로에서 많이 만났다.
홀애비 사정 과부가 안다고... 말이 좀 이상하다, 주어를 바꿔야 하나?
우째든 우리는 그 PCT 종주팀에게 간식을 털어 주기도 했다.
지금 한명도 없는 게 당연하다.
이 눈을 헤치고 종주에 나설 사람은, 헤라클래스라도 안 된다.
이제 신발에 물이 들어와 촉촉...을 넘어 축축하다.
그래도 기어이 이 산에 올 때마다 한 번씩 쉬는 수분(水噴)봉까지 올랐다.
물론 이 이름은 우리산악회에서 지은 것이다.
이때쯤 가득 찬 방광을 비우는 산이라는 말이다.
한문으로는 水(물 수)와, 噴(뿜을 분)이다.
수분을 끝내자 유회장이 결정을 내렸다.
앞으로 한 시간만 더 오르다 철수 한다고.
정상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산정에 오르면 태평양이 보인다는Mt. Pacifico 정상이 약 올리듯 눈앞에 우뚝하다.
럿셀도 자국도 희미해지고 눈과 얼음 구간을 건너는 위험 때문에 내린 결정.
암봉이 늘씬한 위성봉을 우리는 직등을 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설릉을 오르는 앞 선 회원 폼이, 흡사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자세로 보인다.
전통 등산로보다 불안정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퍼시피코 정상을 1.5마일 정도 앞 둔 위성봉에서 등산을 멈췄다.
설악산을 닮은 바위봉이 늘씬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누가 퍼시피코 산을 안다고 하는가.
바짝 마른 계곡에 물 철철 넘치고, 먼지 풀풀 나던 등산로에 눈이 깊고.
그나마 스파이크아이젠이라도 챙겼으니 룰루랄라 즐거운 거지.
정상은 놓쳤지만 하산 길은 신이 났다.
누군가 돼지 잡을 때 나오는 소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아니, 박자 음정 무시하며 악을 쓴다.
잘 있거라 퍼시피코~~ 눈 녹으면 오리니~~~
뒤풀이에서 맛있는 피자를 많이 먹으려 속을 비우는 것으로 이해했다.
우리의 단골 라운드피자는 언제나 행복이 넘치는 집이다.
그 행복을 만들어 준 시몬회원께 감사드린다.
게시판에 올린 꽃 귀경을 읽고 다음 주 꽃 사냥에 나서자.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거니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