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微笑는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웃음을 말한다.
보건체조 끝나고 ‘무릎아 오늘도 잘 부탁 한다’는 만트라를 외우고 나선 산행.
푸른 자연 속을 훠이훠이 걷고 있는 건 행복한 상상이 아니다.
실상이고 현실이며 지금이다.
8명의 회원이 나왔고 JMT훈련 차림의 유진순회원 걸음이 씩씩하다
눈에 마주치는 모든 것.
우람한 제프리 소나무, 기세 좋게 쏟아지는 샌 안토니오 폭포, 이름 모를 작은 꽃, 멀리 우뚝 서 있는 발디 정상, 스치는 바람, 아직은 폭력적이지 않은 눈부신 아침햇살, 산처럼 좋은 악우嶽友들.
입가에는 소리 없는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누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미소가 없는 인간이라고.
다리쉼을 하기 위해 들린 스키헛이 가까워졌다.
슬며시 미소가 나온 건 72세의 Mr 댄을 발견했기 때문.
그는 Mt발디의 레전드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강희남 형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던 것도 지금처럼 발디를 오르던 중.
발디를 오를 때마다 자주 만날 수 있어 이제 서로 얼굴을 안다.
“헤이~ 댄. 오늘이 몇 번 째 발디를 오르고 있는 거요?”
“천 사백 육십 구번 째”
스키헛 마당에서 휴식을 취하던 등산객이 그 말을 듣고 눈들이 휘둥그레진다.
인요카운티에서 레인저로 근무하다 은퇴.
발디를 1469번째 오르는 중이라는 그를 보며 쓸데없는 계산을 한다.
발디 정상 높이1064ft x 1469회 등정= 댄이 여태 오른 높이 1,563,016ft.
1,563,016ft ÷ 에베레스트 높이 29,032ft = 에베레스트를 53.8회 오른 높이와 같다.
비교 상상이 유치하고 엄두가 안 나지만 미소가 나온 이유는 다르다.
Mr 댄의 ‘키’ 때문이다.
통계로는 전설이고 거인인데 실제 키는 아담하다.
그러므로 작은 고추가 맵다는 한국 속담은 맞다.
미소 2
스키헛을 출발하여 너덜지대를 횡단하고 첫 번째 가파른 고개를 오르던 중.
처음에는 하산중인 여자를 보며 가파른 비알길을 내려오느라 허리를 굽힌 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서자 다리까지 주름 깊은 할머니였다.
적어도 팔순은 넘겼을 허리는 자연적으로 굽어 진 상황.
그런데도 배낭에 성조기를 꼽고 트레킹 폴에 의지해 하산하는 씩씩한 모습.
비록 허리는 굽었으나 저 분은 산에서 단련된 몸이다.
정상을 올랐는지, 중간에서 하산을 하는가 하는 건 쓸데없는 상상.
우리가 원하는 게 저런 모습 아닌가?
산의 허리이던 정상이든 나의 산을 즐기는 여유.
그렇기 위해 스트레칭 끝에 ‘무릎아 오늘도 잘 부탁 한다’고 주문을 외우지 않았던가.
할매 배낭에 달린 성조기가 저렇게 예쁠 수도 있다는 새로운 눈뜸.
노파의 하산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니 입가에 미소가 또 번진다.
미소 3
좋은 날 건강한 땀을 흘리며 오른 정상은 만원이다.
“발디 정상부는 수억 원짜리 분재 박물관 같아요”
함께 오르고 있는 회원이 한마디 하신다.
그 말이 맞다.
수백년 한자리 지키며 모진 풍상에 비틀어지고 휜 소나무들의 군락.
울타리도 없으니 보고 싶으면 이렇게 발품 팔아 올라 만나면 될 일.
우리는 그걸 소유하지 않았고, 줘도 잘 키울 능력도 없다.
너희는 부자라고, 욕심 버리면 언제나 부자라고 발디가, 아니 산이 말한다.
정상에서 인증샷 찍으려 기다리는 중, 땅위에서 사랑을 발견한다.
누군가 주변 돌을 모아 하트를 만들어 놓았다.
저런 아이디어는 낸 사람은 누굴까?
여자일까? 아님 남자일까.
우리 산악회 회원 한명도 산정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 소식을 듣고 미소가 나왔듯, 돌 하트를 보며 또 맑은 미소가 번진다.
미소 4
코로나로 중국 봉쇄에 애를 끓던 세라가 공장운영 때문에 중국행을 결정한 모양.
PCR을 3번이나 받고 격리 3주.
세상에!!
중국행 비행기 값이 만 삼천불.
그게 왜 놀랍냐 하면, 편도에 이코노미 석이라 그렇다.
라운드 피자집에서 뒤풀이가 있었다.
배고픈 사람이 웃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반면에 배가 부르면 웃음이 헤프다.
금테두른 중국행 비행기표 이야기를 하며 세라가 웃는다.
당번을 자청하여 세라가 계산했다고 미소가 나온 게 아니다.
밝은 그 표정 때문이겠다.
그리고 덤으로 맛있는 피자와 맥주 덕분에 미소가 번졌을 것이다.
환하게 웃는 세라.
건강한 모습으로 미국 산에서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