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카몽가 산행을 위해 10명의 회원이 약속장소 라운드 피자 앞에 모였다.
산행을 다음 주로 미룬 채 얼굴 보러 왔다는 강희남회원 반가운 얼굴이 진짜 반갑다.
메이퀸에 밀려 4월은 흘러갔다.
하루 만에 다시 만날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어제까지의 기억.
“4월은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었다 /차라리 겨울에 우리는 따뜻했다...
T. S. 엘리엇의 시.
겨울 숨죽여 죽은 땅에서 어린 새싹이 움을 틔우는 걸 고통으로 이해하라는 걸까?
시인의 주장은 그가 쓴 시의 의도와는 다르게 천배정도 복잡한 해썰+해썰을 낳을 터.
하루 사이에 잔인한 달에서 점핑하여 계절의 여왕이 된 5월 첫날이다.
변덕도 이런 변덕이 없다.
어쨌든 어떤 썰가는 ‘신록예찬’에서 5월을 이렇게 찬양한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산행을 이어가며 그 말이 정말 맞다는 걸 시청각으로 보고, 듣고, 느낀다.
5월은 신록의 계절이 맞다.
아이스하우스 캐년은 온통 초록세상.
오늘은 진짜 물 좋은 한국 북한산 정릉계곡을 빼다 박았다!
산행도중 잠시 걸음을 멈추고 파란 잎이 짙어가는 생동의 농담濃淡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같은 초록이 아니다.
초록에도 짙고 옅음, 굵고 여림, 즉 농담이 한 색깔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서울 북한산 정릉계곡이라는 별명이 오늘따라 더 실감나는 아이스하우스 캐년.
5월 신록을 담뿍 담은 계곡물도 목소리를 높여 귀를 즐겁게 한다.
등산로 곁 만자니타 관목들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
촛불을 켜듯 유카 꽃봉오리들도 꽃 대궁이 솟기 시작했다.
크렘폰 걱정했던 빅혼을 에둘러 가는 응달의 등산로는 이제 눈길이 아니다.
지난겨울이 그리워서 일까.
군데군데 버짐처럼 잔설이 고여 있다.
흙바람 먼지가 쌓이고 낙엽에 지저분해진 곧 녹아 사라질 눈의 초라한 잔해.
지난 겨울, 여기 순백의 산을 오르며 예찬했던 설국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잔설이다.
갈 때를 알고 가는 게 왜 중요한 일인지, 버짐처럼 남은 잔설이 슬쩍 한방 후려 갈긴다.
그러나 그 또한 계절의 여왕을 돋보이게 하려는 자연의 장치인지도 모른다.
정상까지 오월이 점령했다.
비행기 창에서 보듯 쿠카몽가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온타리오 시가지는 장관이다.
늘 푸른 소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
소나무에도 가지마다 송화를 피울 채비를 하고 있다.
세상이, 산이, 5월이 시작한 날 펄펄 살아 있었다.
푸릇한 초록의 비린내를 온 몸에 묻힌 채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는 계절의 여왕 오월 첫날을 쿠카몽가 초록산속에서 보냈다.
여왕을 알현하고 뻐근한 다리품을 팔 수 있음에 시퍼렇게 행복한 날.
뒤풀이를 만들어 입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어준 한영홍회원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