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형 스마트 폰을 쓰고 있는데 우리 산악회원들은 다르더라.
신형 아이폰 14나 갤럭시 23울트라를 쓰고 있더라.
나는 괜찮다. 그냘 구형폰을 쓰면 되지 뭐... 신경쓰지 마라.”
마더스 데이를 맞아 모두 스마트폰 선물 받으러 가셨는지 산이 조용하다.
오늘 발디 산행에는 6명이 참여했다.
어제 밤 ChatGPT(챗GPT)에게 물었다.
“내일 발디 정상을 가려 하는데 크렘폰이 필요한지 알려 줘.”
“크렘폰은 필요 없습니다.”
쳇 GPT는 분명히 혁명적으로 발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유치원 수준이고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잘 한다.
그래서 쳇 GPT 주장과는 반대로 보관했던 크렘폰을 꺼내 배낭에 넣었다.
언제나 꽉 차는 맹커플렛 주차장이 한가하다.
모두 선물 받으러 간 모양.
산 안토니오 폭포는 여태 본 중에 가장 거대한 물줄기를 보인다.
폭포소리가 지축을 울릴 정도.
산정에 쌓인 눈이 시나브로 녹아 물길을 키운 거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스턴 시에라와 요세미티는 이런 상황이라 문을 닫았다 열었다.
이번 메모리얼 데이 캠핑은 정말 그림속을 거니는 기막힌 산행이 될 것은 분명하다.
산야가 온통 초록이다.
스키헛까지는 눈이 없었다.
쳇 GPT가 맞는 말을 한 거 같아 반대로 한 게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스키헛을 지나자 눈이 깊다.
첫 번째 새들을 오르기가 힘들다.
발이 푹푹 빠지므로.
거기를 넘어 고도를 높이자 눈이 얼어 발이 빠지지 않는다.
쳇 GPT 말을 듣지 않고 챙겨온 크렘폰이 제 역할을 한다.
하늘은 너무 파랗고 세상은 눈부신 하양이다.
복사광에 얼굴이 따겁다.
그저 좋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긴 옷과 함께 반바지를 갈아입으려 했다.
그런데 바닥은 한 겨울이지만 바람도 없고 공기는 완연한 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월도 중순 아닌가.
바람도 훈풍이다.
그냥 반바지로 정상에 올랐다.
수없이 정상에 섰어도 반바지 반팔은 최초의 일이다.
정상에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대로 산정에는 아직 눈이 깊다.
올 겨울 발디에서 4명이 죽고 14차례 구조대가 출동했다.
1월 1일 우리도 정상에서 화이트 아웃을 만났었다.
그런데 반바지라니.
지옥도를 연출했던 한 겨울 발디도 가는 세월을 어쩌지 못한다.

가고 오는 게 계절뿐일까.
눈이 녹아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을 안토니오 폭포.
폭포의 힘찬 물도 겨울이 오면 다시 눈이 되어 산정에 쌓일 것이다.
행복한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