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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등반지

 

글: 신영철회원

 

 

눈뜨면 걷고 또 걷고‘고난의 갸라반’시작

절벽 - 산길돌아 끝없는 빙하길… 당나귀도 힘겨운 듯 방귀까지





▲ 절벽 길을 올라 산 구비를 돌아가는 길은 힘들다. 사람 몫 두 배를 지는 당나귀도 등짐이 무거운지 방귀를 푸르르 뀐다.



아침엔 우리 팀에 고용되려는 포터들로 막영지가 붐볐다. 그들이 생활인 목축과 농사보다 등짐 지는 것이 더 큰 수입이 되므로 그랬다. 그렇게 시나브로 전통사회는 허물어지는 것이다. 한국도 당연히 그런 해체의 과정을 겪었으니 그런 현상을 나무랄 수는 없겠다. 

사진을 찍기 위하여 아스꼴리 마을의 미로 같은 돌담길을 일부러 찾았다.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셀러리맨처럼 마을 아이들이 양떼를 몰고 풀밭을 찾아 출근하고 있었다. 그들의 주식인 짜파티 원료가 되는 소중한 밀밭에 양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돌담을 쌓아놓았다.

고단한 노동이 되었을 게 뻔한 돌담 사이 골목길은 양떼로 가득 찼다. 양떼에 막혀 그 가운데서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런들 대수랴. 도시의 꽉 짜인 시간에서 이미 해방되었는데. 마을 주민들 역시 무슬림이지만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 따위는 없다. 역시 산골 인심은 어느 나라고 후한 법이다. 마음이 느긋해지는 건 이런 오지에선 덕목이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오늘의 야영지 ‘졸라’까지 가는 길엔 우리 짐을 싣고 터벅터벅 걷는 당나귀와 한동안 함께 했다. 가이드 겸 쿡 한 명에 포터 열두 명, 사람 몫 두 배를 지는 당나귀 두 마리가 우리 팀이다. 
새벽에 길 떠나는 건 부지런해서 일찍 서두른 게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전등불이 없으니 일찍 자는 수밖에 없고 그러니 일찍 눈 떠지는 것이다. 또한 아직도 열기를 간직한 한낮의 태양 볕을 피하기 위하여 일찍 떠나는 것이다. 

자고 깨면 걷는 일. 모름지기 이런 지구촌 오지 트레킹을 즐기려면 걷는 일을 사랑해야 한다. 
만약 그런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살아 지옥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뜨거운 햇빛, 밤 되면 떨리는 한기, 가도 가도 끝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빙하 길. 단애의 절벽을 돌고 고개를 넘고, 텐트 잠에 비위생적 음식. 화장실의 지저분함. 거기에 보너스로 고소증이라는 몸살을 주는 길이다. 
그러나 그걸 견디어낼 자신이 있다면, 자연은 사람들에게 웅혼한 자연의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마음 속 꿈꾸었지만 이룰 수 없던 자유를 줄 것이며 얼마나 인간이 보잘 것 없나 자아를 성찰하는 시간을 줄 것이다. 

햇빛이 하얀 설산 꼭대기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더니 점차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길 가에 앉아 얼굴에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랐다. 
아무리 자연이 좋아도 언젠가는 사람 사는 동네로 내려갈 수밖에 없으니까. 껍질이 벗겨지다만 얼굴로 뭇 시선을 받기 싫으면 
이 일은 매일의 일과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막영지 졸라까지는 참 멀었다. 강이 파놓은 절벽 길을 올라 산 구비를 돌아가는 길은 힘들었다. 함께 걷고 있는 당나귀도 등짐이 무거운지 방귀를 푸르르 뀐다. 발토르 빙하 상단에 있는 콩고르디아까지 갔다 오면 말발굽을 갈아줘야 한다고 마부는 자신이 맨 배낭을 툭툭 쳐 보인다. 
이 당나귀는 어떤 전생이 있기에 평생 이 빙하를 오르내리는 고역을 치러야 할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당나귀의 일생 아닌가. 아니다. 물리적 무게는 비록 힘겹지만 인간의 머리에 있는 감당키 어려운 온갖 생각의 무게가 당나귀 등짐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 그것도 복잡다단하게. 

시원한 맞바람 맞으며 이런 상념을 하는 것도 트레킹의 백미다. 멀리 비아포 빙하에서 내려오는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보인다. 졸라 브리지다. 그 곁에 있어 눈앞에 보이는 막영지는 왜 그렇게 먼지. 첫 날이라 그럴까. 결국 바위 틈 그늘에서 일행 기다리며 한숨을 늘어지게 잤다.

우리 일행은 아니지만 함께 캬라반을 하는 러시아 부부가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하도 길어 외울 수 없지만 애칭은 기억한다. 
남자는 유리, 여자는 올가라 했다. 이런 오지 길을 나선다는 자체가 서로 소통하는 정신의 교감이라 친구가 되었다.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는 것이 자고 깨면 만났기 때문이다. 

유리는 러시아에서 유명 산악인이자 영화감독이었다. 
그가 길을 나선 까닭은 작년 이맘 때 K2 등반을 하다 숨진 절친한 친구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으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걷는 이 길을 스스로 걸어 올랐으나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사람의 길 끝난 곳에 산길이 열린다. 사람들은 그것을 등반이라 부른다.

결국 만나겠지만 지금도 K2와 브로드 피크에선 한국팀 등반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그들의 취재와 발토르 여름 풍경을 스케치하러 온 것이고 유리는 친구를 추모하러 왔다. 보기엔 장엄하고 아름다운 산들의 정점에 서기 위해 목숨을 건 등반가들에게 결국 영원한 차가운 잠을 자게 만든다. 

그들 중 잘 아는 후배가 있다. 예전 한라산 적설기 훈련을 함께 했기에 너무 잘 안다. 브로드피크 한국 초등을 위하여 출국한다기에 배낭 싸서 보냈더니 돌아온 것은 바람뿐이었다. 그 후배의 동료가 몇 년 후 추모 동판을 K2 산악인 묘지에 붙여 놓았다. 거기에 유리 친구 추모비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계획대로라면 함께 히말라야 바람이 된 동료를 위한 참배를 할 것이다. 

빠유는 해발 3,700m였다. 예전, K2에서 내려올 때 빠유의 초록색이 반가워 코가 매워진 적이 있다. 불모의 빙하와 흑백의 산속에 섬처럼 떠 있는 초록색 숲. 그렇게 발토르 빙하를 통 털어 이곳만 나무숲이 있다. 빠유는 등반을 끝내고 하산하는 대원들과 오르려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발토르 빙하에 유일한 초록 숲은 포터들의 칼질에 없어질 뻔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머지않아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포터들은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칼로 무지막지하게 나무를 잘라 짜파티를 구웠다. 앞으로 땔감이 없으니 나무가 있을 때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숲은 얼마 못가 없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럴 것이라는 예측은 고맙게도 보기 좋게 빗나갔고 빠유는 건강한 숲을 간직하고 있었다. 석유 버너를 쓰게 한 법이 주효했을 것이다. 계곡 따라 서있는 아름드리 미루나무 고목 등걸엔 아직 그때의 상흔이 보였다. 

이곳에서 하루 쉬는 것이 관례라지만 우리는 하루 밤을 보낸 후 다시 길을 재촉했다. 숲을 빠져나와 언덕을 넘어서니 왼쪽으로 트랑고 타워산군이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있어 이렇게 붉은 화강암으로 군청색 하늘을 찌르듯 빗어 놓았을까. 저 암벽을 오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클라이머들은 가슴 설랬을까.
그렇게 보니 이곳 산군은 모두 침봉이다. 흡사 밀가루 반죽을 질게 한 후 손바닥을 딱-떼어내면 나타나는 형상처럼, 거의 날카로운 침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K2 등정에 성공한 후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한국 여성 K2 원정대. 왼쪽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산악인 오은선 대장, 네팔인 쿡 뚜르바 따망, 이영민, 김애란, 홍미경 대원.



신영철(소설가·재미한인산악회원) 

미주 한국일보 연재. 1-2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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