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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  : 다람살라 - 티벳망명정부의 거처
 글 쓴 이 : 아남카라 등 록 일 : 2008-12-30 오후 12:49:16 조 회 수 : 17
 첨부파일 :

tibet-map.gif

(다람살라의 위치)

 

 

주변이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앞을 보고 앉아있던 사람들이 뒤를 돌아본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달라이라마가 법당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다. 환히 웃는 모습이다. 올해 71세(1935년생)지만 얼굴은 아이와 같이 해맑다. 티벳 불교의 붉은색 가사를 입었다. 약간은 구부정하다.

 

달라이라마의_입장.JPG 걸어들어오는_달라이라마.JPG

달라이라마와_티벳승려.JPG 구부정한_달라이라마.JPG

(달라이라마가 법당에 들어오고 있다.)

 

인도 북부 히마찰 프라데시주(州)의 히말라야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시 다람살라. 티벳 망명정부와 티벳 난민 4000여명이 살고 있다. 이곳의 대표적인 티벳불교 사원이자 달라이라마의 거처가 있는 남걀사원에서 지난 8월 14일 한국인을 위한 달라이라마의 법문이 있었다.

법당에 들어선 달라이라마의 목소리는 바리톤으로 굵직했고 힘있었다. 그는 티벳어로 말하고, 단하의 20대 한국 여성이 통역을 했다. 구부정하게 걷는 모습과는 달리 기력이 넘쳐보였다.

 

다람살라.JPG

(남걀사원에서 내려다본 다람살라. 남걀사원은 다람살라의 윗쪽 도시인 맥그로드간즈에 있다)

 

농담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오신 진옥스님, 어제 암릿사르 통해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눈 붙일 틈은 있으셨는지요”라고 했다. 무슨 답을 들었는지 “그러면 지금 비몽사몽이겠네요”라고 말했다. 법당은 순간 웃음 바다가 됐다. 그는 작년에도 오신 분 손들어보라고 했다. 법당안의 한국인 200여명중 손을 든 이는 불과 10여명. 그러자 올해 처음 오신 분 손들어보라고 했다. 나머지 사람들의 손이 올라갔다. 달라이라마는 이어 법당 밖에 마련된 콘크리트 바닥에 깔개를 깔고 앉아있던 수 백 명의 외국인을 향해 새로 오신 분 손들어보라고 했다. 한국인을 위한 법문인 만큼 법당안에는 한국인의 입장만 허용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법당 밖에서 달라이라마의 설법을 경청해야 한다.

 

 

그는 작년에 이어 ‘입보리 행론’ (入菩提行論)에 대해 말하겠다며 첫날 두 시간 반의 오전 강의를 시작했다. ‘입보리 행론’ 은 인도 날란다대학 출신의 인도 승려 산티데바가 보살의 길을 설명한 불교서적이라고 했다. 필자는 불교 신자가 아니고, 불교에는 문외한이어서 그런지 달라이라마의 법문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큰 스님인만큼 쉽게 풀어서 말씀하실 텐데, 알아듣기 힘든 건, 한국인 통역이 말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남걀사원.JPG

 

(남걀사원 입구. 입구 왼쪽에 '세계 최연소 정치범 판첸라마 석방을 도와달라'고 쓰여있다.)

 

  판첸라마_석방을[1].JPG

(판첸라마 석방을 도와달라!!!)

 

 달라이라마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한국인을 위한 법문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3일간의 일정으로 시작했으나, 근래는 5일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한국 외의 국가로는 대만인을 위한 법문행사도 있다. 한국 정부가 달라이라마의 서울 방문을 허용하지 않아 한국의 불교신도들이 인도 다람살라까지 발걸음을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행사를 주관해온 여수 석천사의 주지 진옥 스님은 “올해의 공식 참석자는 102명, 비공식 참석자는 150명 정도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같이 온 일행외에 소문을 듣고 온 사람도 많다는 말로 들렸다.

 

달라이라마의 설법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는 그의 설법에 영혼이 울리는 감동을 기대한다. 하지만 최근 달라이라마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끄는 건 티벳과 중국의 타협이 임박했다는 소문이다. 티벳에서는 달라이라마가 고향을 방문했다는 설도 나돌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귀기울이는_서양인들.JPG

(영혼의 안식을 찾아 다람살라에 온 서양인들)

 

이와관련 다람살라의 티벳 망명정부 정보·국제관계부의 텐진 팔덴 언론담당관은 중국과의 대화는 2001년부터 지난 2월까지 모두 5차례 있었다면서 다음 대화가 곧 있을 것이며, 진전이 있다고 말했다. 팔덴 언론담당관에 따르면 양측은 2001년 중국내 모처에서 처음으로, 지난해에는 스위스 베른에서, 지난 2월에서 역시 중국에서 접촉했다. 처음 한 두 번의 접촉 때는 매우 분위기가 딱딱했으나 그 이후에는 양측이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경청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도 상당히 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티벳 망명정부는 독립은 추구하지 않되, 진정한 자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팔덴 담당관은 언제쯤 티벳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면서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는데 200여년이 걸렸듯이 우리도 희망을 조급해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남걀사원_옆_거시기.JPG

(남걀사원 옆 도로에는 기도문이 쓰여있는 돌판들이 놓여있다.) 

 

그는 하지만 달라이라마의 중국 방문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달라이라마가 지난 7월 티벳과 접한 칭하이(靑海)성의 북동부 성도 시닝(西寧) 황중(湟中)현의 불교성지 타얼(塔爾)사에 머물고 있다는 소문이 유포된 것과 관련, 그는 달라이라마의 방중을 앞둔 중국 정부의 공작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달라이라마가 실제로 티벳을 방문할 때 주민들의 반응을 미리 테스트해보는 반면, 실제 방문 시에 대비해 사전에 김을 빼는 효과가 기대한 것으로 본다는 분석이었다.

 

티벳망명정부.JPG

(티벳 망명정부 입구)

 

티벳 망명정부는 남걀사원에서 차로 언덕 가파른 길을 약 5분 정도 내려온 데 있었다. 건물군 입구에는 티벳 중앙 정부청사라고 영어와 티벳어로 써있었다. 좁은 포장도로를 걸어서 들어가니 양쪽으로 재무부 정보·국제관계부 건물이 있었고, 정문에서 부터 70,80들어가니 광장이 있었다. 광장에는 티벳식 스투파가 있고, 그 주변의 2,3층 건물 6,7채에는 각종 부처가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내무부, 종교·문화부, 안보부의 간판은 2층인 한 건물에 내 걸고 있어, 마치 학급들이 복도를 따라 자리잡고 있는 것과 같았다. 망명정부 신세이니 오죽하겠는가? 더구나 이들 건물 위에는 티벳 깃발보다는 인도 국기가 더 눈에 띄어 딱해 보였다.

 

망명정부_건물.JPG

(티벳 정부의 국제관계부 청사)

 

 

다람살라의 티벳 공동체는 4000여명. 인도 전역에는 10만명의 티벳인이 있다고 망명정부측은 밝혔다. 다람살라 외에 인도내 티벳인이 몰려살고 있는 지역은 데라둔(우타란찰 프라데시)과 마이소르(카르나타카 주)로, 마이소르의 경우 티벳 승려만 해도 수 천 명에 달한다고 했다.

 

 

망명정부_의회.JPG

(티벳 망명정부 의회 건물)

 

더구나 달라이라마의 나이가 71세에 이른 만큼 티벳 망명정부의 후계 구도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후계자로는 제17대 카르마파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었다. 제14대 달라이라마가 타계할 경우 제15대 달라이라마가 지목되나, 그는 나이가 어릴 것으로 예상돼 티벳망명사회의 중심에 바로 서지는 못한다는 것. 이때문에 과도기를 이끌 지도자로 카르마파가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카르마파란 티벳불교내 주요 세력인 까규파의 수장을 일컫는 이름으로, 현 17대 카르마파는 지난 2000년 티벳에서 인도로 탈출해왔다. 1983년생이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으나 사진으로 본 얼굴이 범상치 않았다.

 

karmapa.jpg

(제17대 카르마파)

 

17대 카르마파를 만나본 지산스님은 카르마파가 한국에도 관심이 많아 개인 교사 주3회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왜 한국어를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달라이라마에게 망명지를 제공한 건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 인도로서는 대중국 견제 카드의 하나로 티벳 문제를 활용하고자는 포석이었다. 실제로 달라이라마가 거주해온 다람살라는 중국으로서는 손톱 밑 가시처럼 신경이 쓰이는 곳이었다. 달라이라마가 강연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1989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으면서 특히 서구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달라이라마가 뜨면서 티벳의 점령자인 중국은 상대적으로 티벳을 억압하는 악(惡)의 화신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중·인도 관계가 정상화하면서 다람살라의 티벳 망명정부 입지는 오히려 좁아지는 분위기다. 제17 대 카르마파의 경우 인도 정부가 상당한 행동에 제약을 두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카르마파의 인도내 본산지인 시킴주 강톡의 룸텍곰파 사원에로의 여행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었다. 인도 정부로서는 베이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길 원치않기 때문이다. 다람살라는 중·인도 관계의 역사적 산물이고, 미래도 그에 달려있다. 

 

 

/최준석 조선일보 뉴델리특파원 js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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