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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3월호 
  • 653호

3억 년이 만든 ‘기적’…감탄사조차 군더더기

신영철
  • 입력 2023.07.25 07:50
  •  
  • 수정 2023.08.01 10:44
   
 

[신영철의 산 이야기] 美 유타주 아치스국립공원
연간 200만 명 찾는 세계 최대 사암공원

델리케트 아치. 아치스국립공원에는 조각품 같은 2,000여 개의 자연 아치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델리케트 아치다. 해발 1,474m 산정에 있다.
델리케트 아치. 아치스국립공원에는 조각품 같은 2,000여 개의 자연 아치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델리케트 아치다. 해발 1,474m 산정에 있다.

아치스국립공원Arches National Park 들머리 도시 모압시市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온통 붉은 땅이었다. 산도 붉고 바위도 붉었다. 사람도 붉을까? 홍인종이라고도 불렸던 원주민 인디언들. 햇볕에 그을린 그들 얼굴도 내 눈엔 역시 붉게 보였다. 

원주민 인디언 말로 ‘산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을 지닌 유테Ute가 유타Utah주가 되었다. 유타주에는 보석 같은 5개의 국립공원과 43개의 주립공원이 있다. 국립공원은 모두 콜로라도 고원 지대에 속하는데 나는 이 붉은 땅 유타의 국립공원을 좋아한다. 미국에서는 일개 주州지만 면적이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크기다. 그런 유타주에 사는 인구는 겨우 300만 명을 조금 넘으니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난다. 

우리가 도착한 모압시는 아치스공원 때문에 먹고 사는 동네라고 했다. 혹시나 했던 공원 캠프사이트는 역시나 만원. 모압시에서 좀 떨어진 통나무집 숙소를 얻어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이튿날 서둘러 미리 입장을 예약해 놓은 아치스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차를 타고 들어섰지만 시작부터 오름길이었다. 우리 차는 고원으로 올라섰다. 고개를 넘어 서자 사방이 붉은 암벽이었다. 바위로 만든 붉은 세상이 요술처럼 나타났다. 아치스 시닉드라이브Arches Scenic Drive를 따라 달리는 내내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속에 아치들이 보였다. 붉다. 바위도, 등산로의 모래도, 멀리 보이는 아치들도. 무수한 자연 아치를 탐방할 수 있는 트레일 표지판이 친절하다. 사막이라 물을 충분히 지참하라고 권하는 표지판도 있다. 

델리케트 아치 트레일 입구. 델리케트 아치는 유타주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다.
델리케트 아치 트레일 입구. 델리케트 아치는 유타주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다.
 

나무는 없고 바위봉들이 숲을 이룬 곳. 그늘이 없는 알봉 산행인데 이 넓은 공원에 상업시설이 없다. 아주 오래 전 이 공원을 방문했을 때 랜드마크 중 하나인 랜드스케이프 아치Landscape Arch를 본 적이 있었다. 더블 오 아치Double O Arch 트레일에서 만났던 세상에서 제일 길다는 랜드스케이프 아치. 그 아치는 이미 무너져 돌무더기가 되어 있었다. 

유타의 개선문 델리케트 아치

우리는 이 공원의 상징이자 유타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도 그려진 델리케트 아치Delicate Arch를 먼저 찾기로 했다. 늦게 가면 주차장이 꽉 찬다는 정보는 맞았다. 운이 좋아 겨우 주차할 수 있었으니까. 델리케트 아치의 유명세를 알 것 같았다. 

1,474m 산정까지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었다. 트레일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며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길’이 아니라 ‘돌’이다. 이른 아침이지만 앞서 가는 사람이 많다. 완만한 바위를 오르는데 뜨거운 태양에 땀이 난다. 

방문자센터 실내에 코끼리 아치를 실물처럼 전시해 놓았다.
방문자센터 실내에 코끼리 아치를 실물처럼 전시해 놓았다.
 

직접 아치까지 걸어가 가까이서 감상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 공원 안에 있는 2,000개의 아치 중 가장 묘하며 경이로운 것으로 손꼽히는 돌다리였으니까. 아치까지 왕복 트레일은 5km 정도지만 가파른 바위등산을 해야 한다. 아치스 돌산 트레일 끝으로 나왔다. 흡사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도로처럼 반질거리는 돌길이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산정을 오르는 동안에도 제법 규모가 있는 아치가 더러 보인다. 하지만 많은 아치를 만나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다. 오히려 수만 년 풍화로 조각된 돌산과 솟은 돌기둥이 보기 좋았다. 그건 이곳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이 공원의 놀라운 풍경은 방문자센터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사전적 알음알이가 필요 없는 곳이 아치스국립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석이 풍화되어 돌다리가 되기까지 최소 연도가 수천 년이라니까. 길어도 100년 사는 인생이 이해하기엔 너무 긴 시간 아닌가. 

막막한 생각 속 돌길이 끝나는 돌 커브를 돌아서자 숨어 있던 델리케트 아치가 훅-하고 갑자기 나타났다. 마치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신기루처럼, 개선문처럼 돌산 산정에 델리케트 아치가 솟아 있었다. 7층 건물과 맞먹는다는 20m 높이. 정말 이건 극적인 반전이었다. 

아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바위벽. 동굴 같은 바위벽이 풍화에 의해 아치가 된다. 완성까지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바위벽. 동굴 같은 바위벽이 풍화에 의해 아치가 된다. 완성까지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산 정상에 저런 자연의 거대한 구조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놀라움은 서서히 묵직한 감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운 풍경이다. 아치를 중심으로 흡사 로마의 원형극장처럼 움푹 들어가 있는 바위광장. 아치 아래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사람 때문에 아치의 크기가 가늠된다. 

유타주에 들어서며 달리는 차량마다 번호판에서 만났던 아치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 그리고 일부러 조각품으로 만들어 놓은 듯 보인다. 자세히 보니 아치의 왼쪽 기둥이 좀 더 풍화가 되어 있었다. 그게 내 눈에는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그래서 델리케트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내 눈에 위태롭게 보인 이유는 바로 랜드스케이프 아치의 소멸을 알기 때문이다.  

아치 구멍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정말 압권이다. 거대한 구멍 뒤편으로 배경처럼 만년설을 하얗게 쓴 라셀산맥이 보인다. 아치 속으로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날엔 사진작가 수백 명이 찾는다는 이유를 알겠다. 이 아치가 생성된 세월을 대략 6,000만 년이라고 추정한다. 그 오랜 세월이 걸려 파리의 개선문을 닮은 아치를 만든 자연은 언젠가 다시 이것을 자연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랜드스케이프 아치처럼. 

이집트 파라오를 닮은 바위. 델리케트 아치 트레일에서 볼 수 있는 비경이다.
이집트 파라오를 닮은 바위. 델리케트 아치 트레일에서 볼 수 있는 비경이다.

더블 아치의 윤회

이 공원에서는 직경 1m 이상의 구멍이 되어야 아치로 계산하는데 1970년 이후 42개의 아치가 침식해 붕괴하였다고 밝힌다. 우리는 델리케트 아치를 뒤로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물론 공원의 주인공인 아치들 순례가 목적이지만 볼거리는 너무 많았다. 고층 건물을 방불케 하는 우람한 석탑과 조각들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였다. 

더블 아치Double Arch는 이 공원에서 제일 우람한 십자형으로 이어진 아치였다. 그곳으로 달리는 도중 가든 오브 에덴Garden of Eden이 나타난다. 에덴의 정원이라더니 이쪽도 놓칠 수 없는 멋진 풍경구였다. 

2,000여 개의 아치 중 접근성이 좋은 것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2,000여 개의 아치 중 접근성이 좋은 것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기도 한다.

붉은 절벽에서 암벽등반에 열심인 클라이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빌딩을 연상시키는 암벽들이 도열해 있는 에덴의 정원은 거대한 바위조각들 세상이었다. 사람은 절대로 만들 수 없어서 상상 속 에덴의 정원이라 이름한지도 모른다. 

그곳을 떠나 두 개의 창문처럼 아치가 겹친 윈도 아치를 찾았다. 이곳 안내판에서 아치들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붉은 벽에 2개의 둥근 윈도가 보였고 그 곁에 아직 구멍이 뚫리지 않은 초기 아치들도 보인다. 

3억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만들었다는 아치스국립공원. 아치 하나에도 수천 년이라는 아득한 풍화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설명은 허무하다. 짧은 인생은 그 구멍이 커가는 것도 볼 수 없는 일. 정말 시간이 위대하다는 걸 누구나 느끼게 되는 아치스공원이다. 

붉은 땅, 붉은 바위 세상인 아치스국립공원은 자연의 놀라움을 보여준다.
붉은 땅, 붉은 바위 세상인 아치스국립공원은 자연의 놀라움을 보여준다.

우리가 의식하거나 하지 않거나 자연의 손길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아치를 만드는 그 작업은 멈추지 않는 걸 눈으로 본다. 그렇게 아치의 탄생과 소멸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더블 아치에 도착했다.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km쯤 걸어야 아치를 만난다. 아치 중에 이곳이 가장 크고 높은 곳이다. 

모래가 많은 트레일을 걷다 보니 더블 아치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이 가기까지 더블이라는 느낌의 모습은 아니었다. 다만 점점 더 커가는 아치의 규모가 시야를 압도하고 있다. 드디어 아치 속으로 들어섰다. 아치도 돌바닥도 돌 곁에 보이는 언덕도 온통 돌이다. 높이 100m에 두께 5m인 돌다리. 나는 바닥에 앉아 내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구조물을 올려다보았다. 두 개의 돌다리가 십자를 이루며 하늘을 가르고 있다. 

아치스국립공원의 불가사의라 불리는 더블 아치. 두 개의 아치가 서로 이어진 거대한 자연의 예술 작품이다.
아치스국립공원의 불가사의라 불리는 더블 아치. 두 개의 아치가 서로 이어진 거대한 자연의 예술 작품이다.

아치스국립공원에서 델리케트 아치와, 더블 아치가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십자를 이룬 돌다리 사이로 파란 하늘이 깊다. 초자연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터. 그리고 원래 그랬듯이 언젠가는 모든 아치가 무너지고, 다시 원래 고향이었다는 바다 속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 후손들은 사진으로만 이 아치를 감상할 것이다. 아치는 만들어졌으므로 언젠가는 붕괴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실망할 이유는 없다. 이 드넓은 공원 어디선가 또 다른 아치가 만들어지고 있을 터이니까. 

악마의 정원이라는 이름답게 온갖 독특한 바위 조각들이 빼곡히 차 있다.
악마의 정원이라는 이름답게 온갖 독특한 바위 조각들이 빼곡히 차 있다.

거듭되는 자연의 순환 고리. 둥근 아치처럼 지구별 자연이 돌고 돌았던 윤회가 그것 아닌가. 종일 이어진 고된 발품도 시간과 침식이 만든 위대한 자연을 만나며 힘든 걸 잊었다. 붉은 땅, 붉은 바위, 붉은 아치, 붉은 산. 세계에서 가장 큰 사암 공원이자 연간 2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는 아치스는 유타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가장 멋진 매력적인 국립공원일 것이다. 이렇게 많은 수의 아치들이 한 곳에 모인 곳은 지구별에서 유일할 테니까. 

아치스국립공원 뒤로 배경처럼 펼쳐지는 라센산맥. 능선의 흰 눈은 만년설이라 녹지 않는다.
아치스국립공원 뒤로 배경처럼 펼쳐지는 라센산맥. 능선의 흰 눈은 만년설이라 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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