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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의 산 이야기] 수많은 하이커가 대기표 뽑고 몇 년씩 기다리는 곳

입력 2022.08.08 09:50 수정 2022.08.11 09:45

 

존 뮤어 트레일

재미한인산악회와 함께한 존 뮤어 트레일 북쪽 구간 9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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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 뮤어 트레일JMT을 ‘물의 산맥’이라 한 것은 1,000만 명의 수원이 되는 계곡과 호수를 품고 있어서다. 천섬호수와 시에라 산맥이 환상적인 풍광을 이루었다.

 

맘모스호수 시Mammoth Lakes City는 시에라네바다산맥 동쪽에 있다. 14,000피트(4,267m)가 넘는 고봉을 무려 12개나 품은 시에라산맥. 이 고산준령이 보석광맥이라면, 해발 2,402m에 자리한 맘모스 시는 보석상자다. 존재하는 모든 산악스포츠를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산간도시다. 도시 입구에 우리가 가려는 트레일 이름, 존뮤어John Muir 선생 글이 써진 대형 입간판이 반긴다.

 

어서 와라! 산이 부른다Welcome! The Mountains are calling’

 

74일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해방되어 독립한 인디펜던스데이. 우리도 팍팍한 일상에서 해방되기 위해, 산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맘모스로 모였다. 도시 들머리 방문자센터 뒤쪽 뉴 섀디 레스트 캠프그라운드New Shady Rest Campground가 만남의 장소. 예약된 캠프장에 재미한인산악회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모였다.

 

작년에도 산이 부르는 소리를 좇아 이곳까지 왔었다. 그러나 산불 때문에 존 뮤어 트레일 북쪽 구간 종주를 할 수 없었다. 이번 종주를 주최한 재미한인산악회는, 존 뮤어 트레일을 한국에 처음으로 알린 단체. 40년 전통의 관록답게 그 어렵다는 존 뮤어 트레일 단체허가를 받아 냈기에 가능했던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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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로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장거리 산행에 앞서 재미한인산악회원들과 한 자리에 섰다.

 

미국이 자랑하는 청정 자연보호지역 

56일 동안의 90km 종주에 9명의 산악인이 참여했다. 최고령은 80세인 김철웅 회원. 꾸준한 산행으로 체력관리를 해와 회원들의 롤 모델인 그는 육군 소장 출신이다. 또 한 명의 특별한 여자 회원은 76. 그녀는 산악회 회계를 오랫동안 맡고 있는 고참 회원.

 

종주팀 제이김 대장이 슬쩍 일러 준다. 자신들이 무거운 짐을 나눠지고,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선배들 모시는 효도 산행이라고. 생각이 고맙다. 날이 어둑해지자 먼 길 달려 온 보상으로 모닥불과 함께 LA갈비가 구워지기 시작했다. 축하주가 한 순배 돌자 김철웅 회원이 말을 꺼냈다.

"지난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갔다 왔어요자네들 그거 알아우리가 가는 존 뮤어 트레일은 정말 축복이라는 걸거기에 간다기에 단숨에 날아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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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T는 화첩기행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밀어 내며 한없이 걷는 길이다.

 

김철웅씨는 평생 산을 놓지 않고 올랐다. 국내는 물론 국외의 유명한 트레일을 많이도 찾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려는 존 뮤어 트레일을 으뜸으로 생각한다는 경험담. 나 역시 그 말에 100번 동의한다. 지금도 몇 년째 허가 받기를 고대하며 재수를 하고 있는 한국 산악인들도 그걸 알고 있다.

 

숲속에서 야영하고 맞는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다. 여명이 푸르게 밝아 오며 손발이 척척 맞는 일행은 출발을 서두른다. 산행 들머리까지는 맘모스 리조트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산행 시작은 에그뉴 메도우Agnew Meadow 캠핑장부터였다. 그곳까지 자연보호를 위한 환경문제 때문에 개인차량은 출입할 수 없고 버스만 운행되고 있다.

 

사람 키만 한 배낭을 한 줄로 세워놓고 버스를 기다리는 폼이 그럴듯하다. 버스가 고도를 올리니, 7월임에도 시에라산맥 고봉에는 아직 눈이 보인다. 차에서 내려 만난 세상이 온통 푸른빛이다. 리버 트레일River Trail을 따라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섰다. 트레일 이름대로 강을 따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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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우, 즉 초원을 걸어가는 재미한인산악회 종주대원. 아무렇게나 찍어도 작품이 될 듯 싶었다.

 

중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긴 강은 샌 호아킨 강San Joaquin River이다. 589km 길이의 강은 우리가 가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골골이 발원지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연어처럼 최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중. 산길은 물길을 따라 오르므로 경사도 완만하고 숲이 우거져 폭력적인 7월 햇볕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빛이 있다면 그늘도 있는 법.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이럴 때 머리에 덮어 쓰는 모기장이 퍽 요긴하게 쓰인다. 고도를 올리며 강은 폭포 흉내를 내고 수목 한계선이 가까운지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얗게 포말을 이루며 흐르는 물가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일빵빵 알파미가 주식이다. 계속 알파미를 먹는다는 건 고역이지만 그 식량이 효율적이니 오르려면 먹는 수밖에.

 

세찬 물길을 보면 수백 년 이래 캘리포니아는 가장 심각한 가뭄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다. 그리고 7월의 푸르름은 이 동네가 사막성 기후라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고도를 올리면 당연히 기온은 내려가는 법. 선선한 바람이, 숲에 시나브로 스며드는 햇볕에 행복하다. 언제나 날카롭게 신경을 벼르고 있어 바늘 하나 꽂을 틈도 없던 일상에서의 해방. 두 발로 뚜벅뚜벅 오르는 행위에 넉넉한 마음이 되는 건 무슨 조화일까. 산행이라는 노동은 곧 마음공부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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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호수를 연결하는 개울에도 산 그림자가 반영으로 잠겨 있다.

 

산에서는 누구나 도사가 된다  

곧추 서 흐르던 계곡이 순해지며 서쪽에서 오는 등산로를 만났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이었다. 시에라산맥에서 존뮤어트레일JMT과 만나 한동안 같은 등산로를 사용하고 있다.

 

모처럼 등산객을 만난다. JMT에서는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 외롭다. 5일 후엔 요세미티로 들어서는데 그곳은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 괴로울 것이다. ‘걷는 자의 꿈’ JMT를 하고 싶으나, 허가 받기가 별 따기처럼 어렵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까지 든다. 서로 마주치면 한눈에 상대의 내공을 알아 볼 수 있다. 산속이라 도사나 점쟁이 흉내 내는 게 아니다. 상대의 옷차림이 남루할수록 자동으로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뀌니까. 낡은 등산복은 그만큼 오랜 시간을 걷고 있다는 빼박(빼도 박도 못하다) 증거였다.

 

가팔랐던 산이 수굿해지며 작은 호수를 거쳐 흐르는 개울물도 잔잔해졌다. 그리고 작은 언덕을 넘어서니, 우아! 거기 천섬호수Thousand Island Lake가 둥실 떠오른다. 감탄사가 나온 건 호수에 반영으로 가라앉은 배너피크Banner Peak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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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재미산악회원들과 필자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된비알을 종일 걸어올라 해발 3,000m 넘는 고도에서 만나는 질펀한 천섬호수. 물속에서도 아득하게 솟은 배너피크에도 미련처럼 빙하가 걸려 있다. ‘만년설이다, 아니다는 논쟁은 부질없는 일. 폭력적 사막의 태양에도 녹지 않고 7월 여름을 견디는 눈과 얼음을 무엇으로 부를까. 천섬호수를 처음 봐서 감탄사가 나 온 게 아니다. 몇 번 이 호수를 지나쳤지만 오늘 오른 동쪽 방향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북한산을 100번 올랐다고 다 아는 게 아니라는 말은 탁견. 계절 따라, 밤낮 따라, 비 올 때와 눈 내릴 때, 그리고 기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예전, 천섬호수가 JMT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세간의 평에 동의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이곳을 지날 때 등짐이 죽을 만큼 무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1,000개의 섬이 있는 호수라는 이름도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큰 바위와 짱돌에 불과한 걸 섬으로 부르는 게 우습고 또 그게 호수 이름이 되는 게 맞는가? 그러나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 사람들이 천섬호수를 왜 으뜸으로 꼽는지 오늘에서야 알 것 같다.

 

일행 모두 믿을 수 없는 풍경에 증명사진 찍기 바쁘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트레커들이 호수를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햇살을 퉁겨내며 반짝이는 물비늘과 배너피크를 담은 반영에 취해 한동안 퍼질러 앉아 풍광을 즐겼다. 존 뮤어는 이곳을 빛의 산맥이라 불렀다.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면 JMT물의 산맥이라 부르고 싶다. 그만큼 크고 투명한 호수가 산 속엔 셀 수 없이 많았고, 또 정수해 마실 물이 없다면 JMT 종주는 불가능할 테니까.

 

당연히 트레일은 물길과 호수를 연결하고 있다. 이 유명한 천섬호수가 샌 호아킨 강의 시원始原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샌 호아킨 강물에 기대어 사는 사람 수가 1,000만 명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면 모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배우는 건 또 다른 재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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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패스(3,116m)에서 야영 중인 종주대.

 

풍경을 밀어내며 걷는 화첩기행  

시에라네바다 산길은 화첩기행畫帖紀行인 동시에 특별한 경험과 함께한다. 그게 이 산맥에 요세미티, 킹스캐니언, 세쿼이아 국립공원 세 개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 목적지는 여기까지였지만 여름 낮이 긴 탓에 조금 더 가서 야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바뀐 야영지는 아일랜드 패스Island Pass(3,116m). 이미 고도를 많이 따 놓은 덕에 오름짓은 격렬하지 않을 것이다. 아일랜드 패스는 분수령이기도 했다. 고개를 경계로 우리는 시에라산맥 서쪽에서 동쪽으로 마루금을 넘어 걷게 되는 것. 고갯마루에는 호수가 2개나 있어 캠핑하기엔 적당했다는 옛 기억이 떠올랐다.

 

아일랜드 패스로 올라가는 길을 한동안 천섬호수와 배너피크가 배웅하듯 따라왔다. 미련이 남아 가다 쉬다 뒤를 돌아다본다. 산길을 걷는다는 건 풍경을 뒤로 밀어내며 가는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여 눈에 밟히는 추억을 뒤로 밀어내며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언덕을 넘기 전 또 다리쉼을 하며 천섬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미국의 산은 정상과 고개가 펑퍼짐해 한참을 걸어야 반대편이 나온다. 아일랜드 패스도 두 개 호수 사이가 고원이었다. 천섬호수는 보이지 않고 칼날처럼 뾰쪽한 배너피크가 파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해거름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먹었다. 고개 너머로 내일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설악산 공룡능선 닮은 바위산들이 이빨처럼 가지런히 솟아 있다. 장비가 가득한 배낭을 멘 어깨와 다리는 지옥이지만, 눈만은 천국인 존 뮤어 트레일. 그림 책장을 넘겨가는 ‘JMT 화첩기행’, 내일은 또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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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걸어도 장엄한 경치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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