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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 못 따르는 툴럼 초원과 티오가 도로 : 신영철의 세계산책(山冊)-미국 요세미티 툴럼 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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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에 이어 니그리하와, 고티하와, 데비다하까지

티오가 도로에서 바라 보이는 하프돔의 다른 쪽 면.

이쁜이가 좋으냐, 꽃분이가 좋으냐? 이런 질문은 참 난감하다. 짜장면과 짬뽕을 놓고 고민할 때와 같은 기분이다. 미국 서부 국립공원의 요세미티가 좋으냐? 툴럼 메도가 좋으냐고 묻는 것도 이쁜이 꽃분이 중 누가 예쁘냐는 물음이니까. 하지만 질문 전제가 틀렸다. 전체 면적이 3,079㎢로 제주도 보다 두 배 가까이 넓은 곳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이고 툴럼 역시 그 공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답은 없거나 둘 다 좋다가 맞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툴럼 고원

 

 

그림처럼 잔잔한 강가를 따라 걷고 있는 등산객.

이곳이 빙하가 만들었다는 증거로 둥근 돌들이 많이 보인다.

미국 서부의 등뼈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보석이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자연유산인 이곳은 세상의 달력 사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풍경을 지니고 있다. 요세미티 지역을 ‘성스러운 신전(神殿)’이라 부르는 인간들이 있었다. 자연교(自然敎) 신자였던 존 뮤어(John Muir)와 흑백사진으로 요세미티의 풍경을 널리 알린 안셀 아담스(Ansel Adams)가 바로 그들이다.

거대한 이 국립공원은 크게 3개 구역으로 나뉜다. 첫째가 요세미티 계곡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요세미티 계곡만큼 매력적인 곳은 없다. 산이 연출할 수 있는 모든 게 다 존재하는 곳이니까.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다음은 마리포사 글로브 지역이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고생대 나무인 세콰이어 숲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다음이 툴럼(Tuolumne) 고원 초원 지역이다.

요세미티를 찾는 사람들이 대게 이용하는 곳은 교통이 편한 서쪽 출입구 쪽이다. 물론 그쪽도 아름답다. 하지만 서쪽으로 접근해 요세미티 계곡만 보고 다시 그쪽으로 나가는 것은 극장에서 예고편만 보고 본편을 생략한 것과 같다. 나에게 한 곳을 선택하여 1주일간 휴가를 즐기라면 고민되는 일이겠지만, 결국 공원 동쪽 툴럼 지역을 꼽게 될 것이다. 요세미티 계곡은 해발 1,200m 남짓을 넘나들지만 툴럼은 2,800m에 이르는 고원 초원이다.

연중무휴로 개방되는 요세미티 계곡과는 달리 툴럼은 눈 많은 높은 고원이기에 겨울에는 폐쇄된다. 그렇기에 요세미티 계곡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어도 툴럼 고원은 그렇게 정보가 많지 않다. 툴럼 초원을 가로지르며 느릿느릿 흐르는 유장한 강처럼 이곳은 한적함이 참 잘 어우러진 곳이다. 툴럼 강을 끼고 유명한 존 뮤어 트레일이 이어지고 있는데, 눈 밝은 산쟁이라면 이번에 내가 그랬듯 강가를 따르는 오솔길을 선택하여 걸을 것이다. 멈추듯 흐르는 투명한 강물엔 하늘과 구름이 온전히 잠겨있고, 그 구름 사이로 송어떼가 편대 비행을 하고 있었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강을 따라 걷다보면 간단한 싯구 한 구절은 나올 정도의 비경은 끝이 없다. 눈 카메라에 찍히는 풍경은 말 그대로 엽서에 나오는 그림이다. 툴럼 강을 끼고 초원을 가르는 트레일은 산속 풍경에 익숙한 산쟁이에게도 놀라움이 분명할 것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초록 가득한 초원과 강. 낚시꾼 몇 명이 얕은 강물에 발을 담그고 플라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방울을 털며 낚싯줄은 포물선을 그린 채 강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툴럼 초원은 10여km까지 이어졌고, 옥색 물빛은 수시로 바뀐다. 눈부시게 푸르른 날이었고 강물도 그렇게 푸르렀다. 물가에 있던 사슴 한 마리가 나의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숲으로 달아났다.

이 1급수 강물이 툴럼 고원을 돌고 돌아 요세미티의 헤츠헤치 댐으로 유입되어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식수가 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노자(老子)의 말은 옳다. 낙수가 주춧돌을 뚫는다는 속담도 사실적이다. 결국 이런 툴럼 강의 느린 물은 힘이 엄청 세다. 억겁의 세월 동안 땅과 바위를 침식시켜 경이로운 요세미티 공원 풍경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툴럼 메도는 산악인의 천국이라 부를 수 있다. 북한산 인수봉처럼 화강암봉인 램버트 돔(Lambert Dome)은 바위길을 걸어서 2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알봉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는 광활한 툴럼 메도 전경은 너무 황홀하다. 램버트 돔처럼 요세미티 공원의 자연적 예술에서 가장 흔하게 오브제로 쓰인 것은 모두 화강암이다. 요세미티 계곡처럼 툴럼 초원의 고원 지역도 온통 화강암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아득한 옛날 이 일대는 화산분출로 뿜어져나온 화강암들이 굳어진 거대한 암반지대였다. 시간이 흐르자 툴럼 같은 강 하나가 바위에 V자형의 홈을 파놓는다. 그런 후 세 차례의 빙하기를 거치며 그 틈을 넘나든 얼음은 화강암에 조각품을 남겼다. 계란을 반 잘라 놓은 모양의 하프돔과 직각으로 떨어지는 1,400m의 바위절벽 엘캡도 만들었다. 그리하여 요세미티 계곡이 생겼고 현재도 이러한 활동은 진행형인 것이다.

미국에서 제일 높은 도로 티오가

 

툴럼 강을 건너는 다리인데 존 뮤어 트레일과 겹쳐 있다.

자연이 풍요로운 이곳에는 곰 사슴과 함께 원주민 인디언도 살고 있었다. 툴럼이라는 이름도 원래 이곳에서 그들이 거주했던 동굴과 돌집이 모인 마을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인디언은 인도(印度)에 살았던 진짜 인도인들이 아니다. 인도인들 유전자는커녕 한 번도 보지 못한 태평양 건너에 동포를 만들어 준 건 콜럼버스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이곳을 인도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원주민을 인디오 또는 인디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작명가 컬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최초로 밟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믿었다.

툴럼 지역에는 옴스테드 포인트(Olmsted Point) 전망대도 만날 수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요세미티 계곡을 표현한 동판 부조와 빙하의 잔해를 볼 수 있었다. 빙하가 쓸고 가다 남겨 놓은 큰 둥근 바윗돌이 마치 설악산의 계조암 앞 흔들바위처럼 암반 위에 무수히 서 있다. 문외한이 보아도 명백히 빙하가 만든 증거였다. 따듯한 공기가 흐르는 세콰이어 숲과 요세미티 계곡을 만든 게 빙하라는 역설적 설명문을 읽으며 아득한 시공(時空)을 실감한다.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수천 개가 넘는 호수 폭포 계곡이 생겨난 것이다.

 

존 뮤어 트레일을 종주 중인 산악인들과 함께.

툴럼에 많이 존재하는 호수에서 송어를 낚은 탐방객.

툴럼에서는 클라이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에 무수히 솟은 화강암 돔이 유명한 등반 대상지이기 때문이다. 아득한 절벽을 기어오르는 그들이 개미처럼 보였는데 요세미티 밸리의 큰 거벽과는 달리 난이도가 낮은 암봉은 모두 둥근 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램버트, 폴리, 다프, 디프, 페어뷰 돔 등이 툴럼 고원 주위에 솟아 있었다.

앞서 밝힌 대로 우리는 LA에서 120번 동쪽인 티오가 도로를 통하여 툴럼으로 들어왔다. 동쪽으로 들어서려면 LA에서 접근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다. 네바다와 캘리포니아주 경계를 두고 평행으로 북상하는 395번 하이웨이가 있다. 이 고속도로에서 나는 진정한 의미의 지평선을 만났다. 도로 대부분이 광막한 모하비 사막을 달리기 때문이다.

황량한 사막을 달리며 햇볕의 폭력과 땅의 넓이에 감탄 반 질투 반 하다 보니 어느 새 좌측으로 슬며시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산악관광지 종합세트쯤 되는 맴모스 시를 지나고 이스라엘의 사해보다 짜다는 모노 호수 분기점쯤에서 좌측으로 120번 도로가 분기된다.

눈이 오면 닫히는 미국에서 제일 높은 도로 중 한 곳인 티오가 로드다. 티오가 도로는 크기와 높이에 있어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설악산으로 친다면 예전의 미시령 고갯길쯤 되겠다. 산이 높으면 당연히 골이 깊다. 비록 드라이브이지만 고소증이라도 느낄 것처럼 아득한 고갯길을 오르면 세상 풍경이 갑자기 달라진다. 건조하며 나무라곤 한 그루도 없는 모하비 사막 바다가 언제였냐는 듯 아름드리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나무뿐이 아니라 푸른 초원과 화강암봉들과 투명한 호수들도 보인다. 이미 고도를 많이 올렸기에 공기도 선선해지며 주위가 숲바다로 바뀌는 것이다.

드디어 만나는 고개 티오가 패스(3,031m)에는 요세미티 동쪽 게이트 관리소가 있다. 몇 명이 타든 차랑 한 대에 20불의 입장료. 이곳은 고개를 넘으면 가파르게 내려가는 한국 지형이 아니다. 티오가 패스에서 툴럼 고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과 그것을 닮은 한없이 투명한 시냇물이 광활한 초원 지대를 살찌워 사슴들 놀이터를 만들었다. 고도 2,600m이니 백두산 높이인데 탁 트인 툴럼 메도를 만나고 보면 특별하다는 느낌이 절로 일어난다. 또 다른 각성이다. 초원에는 희고, 노랗고, 빨갛고, 연분홍으로 핀 야생꽃이 천상화원을 이루고 있다. 원래 땅속에 저런 색깔들이 숨어 있는 걸까?

티오가 도로가 만들어지기까지

 

 

티오가 도로 좌우로는 셀 수도 없이 많은 트레일이 존재한다.

티오가 도로 곁에는 수 많은 계곡과 트레일이 있다.

이런 풍요롭고 질펀한 초원을 사람들이 그냥 놔둘 리 없다. 풀이 자라는 여름 동안 초원에는 양을 방목하는 목동들이 즐겨 찾았다. 그중에는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시에라클럽 창시자인 존 뮤어도 있었다. 그는 [시에라에서의 첫여름]이란 자신의 책에서 그의 첫 번째 여행을 양떼를 이끌고 툴럼 메도를 찾았다고 기록한다. 1869년이었다. 툴럼 고원에서 요세미티 계곡을 내려다보며 그는 영감을 얻는다. 그리하여 지질학자도 아닌 존 뮤어는 요세미티가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입증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경치가 좋다는 소문은 났지만 당시 툴럼까지는 상당한 체력을 요구하는 고된 산행길의 연속이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요세미티에서 툴럼까지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그러나 아직은 몇 명 되지 않는 탐승객을 위해 험준한 화강암을 뚫고 길을 만들 눈 먼 자본은 없었다. 그러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일대에서 황금이 발견된 것이다.

1849년 골드러시가 시작되자 시에라 산기슭에 통과하는 마차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금광 시굴과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에 대한 동경이 더해져 요세미티부터 도로를 만들자는 동기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눈이 번쩍 떠진 자본이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툴럼에 이르는 마차 도로를 만들었는데 바로 지금의 티오가 도로의 시작이었다.

티오가 도로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특징인 경동지괴의 동쪽에 있다. 땅이 한쪽 부분만 올라가 한 면은 경사가 급한 절벽을 이루고 다른 한 면은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경동지괴라 부른다. 한국의 백두대간 역시 경동지괴 지형이다. 백두대간을 동쪽으로 올라설 때 가파른 걸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티오가 도로 역시 동쪽에서 접근하며 아주 가파른 비탈을 올라야 하는 곳이다. 서쪽으로 갈수록 완만한 고원이 나타나는데 그곳이 툴럼 지역이다.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와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한 도로를 따라 빙하가 만든 호수로 이어지고 있다. 그 도로를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트레일이 존재한다. 시닉 도로, 즉 풍경도로라 할 만한데 요세미티 공원에 존재하는 툴럼 메도는 그 초원의 크기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가장 크다할 것이다.

그런데 이 풍경 도로를 만들기까지 반대는 없었을까? 있었다. 순전히 발힘으로 툴럼에 올랐던 존 뮤어를 비롯한 사진의 대가 안셀 아담스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더할 나위없는 성전에 인간들이 흉터를 남기려 한다”고. 그들은 하이 시에라를 횡단하려는 티오가 도로 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황금은 힘이 엄청 세었다. 환경에 눈 뜬 선각자 존 뮤어와 그 친구들이 “더러운 황금 때문에 진짜 보석에 상처를 준다”고 저항했으나 이미 도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툴럼 고원에는 많은 호수들이 암봉과 어울려 있다.

티오가 도로 곁에 찰랑이는 호수.

티오가 도로는 요세미티가 있는 서쪽부터 시작되었다. 골드러시 때 떼거리로 온 중국인들이 금(金)의 거품이 꺼지며 실업자가 되자 대륙횡단 철도와 티오가 도로 건설노무자로 재활용되었다. 그렇게 ‘위대한 시에라 마차도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화강암반을 깨기 위하여 무수한 발파와 노동자들의 희생 끝에 1883년 9월, 드디어 길은 테나야 호수까지 도달 할 수 있었다. 순전히 손 도구와 화약을 갖춘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진 마차길이었다. 아직 티오가 패스까지 도로는 완성되지 않았다. ‘황금을 돌’로 본 시에라클럽 창시자들과는 달리 ‘돌을 돌’로 본 자본이 만든 마차길은 지금 120번 도로의 절반쯤 산속으로 파고들었다.

길을 만든 자본은 투자금을 뽑아야했다. 그리하여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 동물, 화물에게 통행료를 부과했다. 마차를 끄는 말 두 마리에 5달러, 추가 말 한 필에 1달러, 빈 마차는 50센트, 여행객이 탄 각각의 말엔 2.5달러, 하인은 1명당 1달러, 마차에 실린 말 또는 소는 마리당 50센트, 목동이 모는 양과 염소는 10센트, 돼지는 17센트였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이 도로를 이용하려면 통과료를 내어야 했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마차길을 만든 자본은 도산했다. 거친 황야에 만들어진 도로는 정기적으로 보수가 필요했고, 산사태와 급류로 휩쓸고 가는 자연재해에는 속수무책이었으니까. 거기에 황금러시도 끝났다. 툴럼의 경이로운 자연을 대중들 눈높이로 끌어내리려는 시도 역시 이제 끝난 것 같았다. 요세미티 공원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에 있는 광대한 넓이의 툴럼 초원은 다시 목동들에게 돌아갔다. 동쪽인 티오가 패스를 넘어 접근하는 게 유일한 산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 양을 치는 목동과 사냥꾼들 그리고 탐승객도 부쩍 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면 치안이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공원의 순찰을 위한 도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결국 1905년에 정부가 나서서 도로를 만들었는데, 지금의 노선은 1883년 착공한 때로부터 무려 27년이 걸렸다. 캘리포니아 토목공사에 있어 랜드마크로 불릴 만한 대공사라 할 수 있다.

모든 아름다움은 위험 끝에 있다는 산악인들 말이 있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 위험한 길은 많이 달려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대단한 도로 운전은 처음이었다. 차를 운전하며 느끼는 고도감도 그렇지만 급벼랑길에 조금은 겁도 났다. 도로를 달리며 시에라클럽 골수 회원이었던 안셀 아담스의 말을 떠올렸다. “좋은 기술은 도로를 만드는 기술이 아닌 자연을 보전하는 일이다. 건설 기술을 과시하는 것 외에 아무 실익이 없는 티오가 도로 건설에 대하여 나는 통곡한다!” 그런 눈물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건설되었고 나 역시 편하게 이곳을 오르고 있었다. 이론은 안셀 아담스 생각에 동의하지만 현실은 도로가 고맙다는 이중성. 자연의 진면목을 지키려는 존 뮤어와 안셀 아담스를 후대는 잊지 않았다. 거대한 황야 국립공원 두 곳에 그들의 이름을 붙여 기리고 있으니까.

티오가 도로에서 요세미티 내려다보기

 

 

하프돔 뒷면을 보고 있는데 정상부를 오르는 사람도 볼 수 있다.

티오가 도로는 화강암반을 발파해 만든 높은 도로다.

티오가 도로는 이 길에서 가장 높은 티오가 고개 이름을 딴 것이다. 티오가 패스 표고가 해발 3,031m나 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캘리포니아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가장 높은 도로로 분류된다. 상용 트럭은 이 도로를 달릴 수 없다. 그리고 눈이 오면 도로는 닫힌다. 날짜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대략 첫눈이 오는 10월 말 정도부터 해빙되는 다음 해 5월 봄까지 폐쇄된다. 물론 겨울이라도 가벼운 눈이라면 12월까지 열린 상태로 유지하고 이르면 4월에도 열릴 수 있다. 모든 결정은 미국 도로국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다.

티오가 로드를 따라 퍼져 있는 툴럼 고원 메도에는 이 일대를 관장하는 비지터센터가 있다. 물론 도로가 폐쇄되는 겨울철엔 닫는다. 이곳은 존 뮤어 트레일의 출발지도 겹쳐있는데 다양한 이용시설과 작은 마켓도 있다. 이 도로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옴스테드 포인트 일대다. 그 전망대에 서면 눈 아래 보이는 요세미티 계곡은 물론 이 일대가 단 하나의 단일 화강암으로 구성된 걸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청난 화강암 덩어리에 만든 빙하의 예술적 조각은 웅대한 전망이 과연 무엇인가를 시청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티오가 도로 옴스테드 포인트에서 눈 아래 보이는 요세미티 부조를 본다.

화강암 봉우리 사이의 테나야 호수를 배경으로.

옴스테드 포인트까지 이르는 몇 마일은 티오가 도로에서 가장 극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다. 길을 달리며 자세히 보면 도로는 화강암 경사면을 깎아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세미티 밸리의 상단에 해당하는 높은 고도를 달리는 티오가 도로는 드라이브 자체가 산악관광이었다. 하얀 색 화강암 봉우리는 아득한 절벽을 만들며 서쪽으로 계속 떨어져 요세미티 계곡에 이른다. 한 개의 통바위가 2,000m 이상 높이로 솟아 오른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들.

우리가 서 있는 전망대에서는 상대적으로 북한산 높이보다 깊게 파인 요세미티 계곡이 한눈에 든다. 바위산에 척척 걸쳐진 무수한 폭포들.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악! 소리를 낼 정도로 장관이다. 깊은 화강암 협곡들 가파른 길을 따라 몇 개의 트레일이 운용되고 있다. 구름이 쉬어 간다는 클라우드 레스트, 새도 트레일 등이 그것인데, 위험하다는 경고판도 보인다. 그러나 옴스테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중 가장 극적인 것은 하프돔이다. 2,695m 하프돔을 눈 높이에서 바라다보는 것인데, 그곳을 올랐었지만 동쪽에서는 처음 보는 풍경이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하프돔 앞에 있는 전위봉 서브(Sub)부터 온전히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쇠줄을 따라 하프돔 정상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다.

옴스테드 전망대 곁에서 알봉과 숲에 쌓인 고요한 테나야 호수(Teneya Lake)를 만난다. 역시 예술을 좋아했던 빙하가 만든 것인데, 요세미티 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넓은 백사장이 옆을 두르고 있다. 생각보다 물이 차갑지 않은지 수영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티오가 도로는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게 호수를 끼고 달린다. 시에라 사막성 따가운 햇살과 고도가 높으므로 서늘한 바람이 좋았다. 들쭉날쭉한 화강암 봉우리가 호수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호수를 둘러싼 화강암 봉우리들은 바위 속 운모들이 햇빛을 반사하여 더 희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트레일 중 하나는 테냐야 호수를 온전히 끼고 돌며 요세미티로 떨어지는 32km의 긴 거리도 있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커다란 호수에 사람들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라면 흔할 장사꾼과 가계 하나 없다. 당국이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원측에선 티오가 도로 바로 옆에 많은 피크닉 장소를 만들어 놓았다. 겨울에는 도로가 닫히니 와볼 수 없으므로 여름 한 철 찾을 수 있는 곳이 피크닉에 딱 맞는 테나야 호수였다.

테나야 레이크에서 약 1시간 정도 운전하여 서쪽으로 들어가면 세상에서 현존하는 생물 가운데 가장 큰 세콰이어 수림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는 툴럼 글로브(Tuolumne Grove)를 만난다. 여기서 다시 동쪽으로 도로를 이어가면 요세미티 빌리지에 들어서게 된다. 티오가 도로를 관통하며 이렇게 높고 경이로우며, 아름답고 웅대한 풍경구는 처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에게 요세미티에서 1주일의 휴가지로 선택하라 다시 묻는다면, 이젠 짬뽕이나 자장면의 선택처럼 망설일 틈이 없을 것이다. 툴럼 속살을 보았으니까.

Mini Information

가는 길 LA에서 5번 프리웨이 북쪽을 타고 가다 앤틸로프 밸리로 향하는 북쪽 14번 하이웨이로 갈아타고 계속 가면 395번 하이웨이로 연결된다. 395번 하이웨이를 타고 북상하다 비숍을 지나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빠지는 120번 도로(티오가 패스)를 만나면 좌회전해 이 길을 따라 가면 된다. 10월 중순부터는 출발에 앞서 120번 도로의 폐쇄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영철 편집주간
사진
저스틴 정
  • 관리자2 2021.09.08 17:24
    벌써 8년이 흐른 이야기입니다.
    하프돔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인데 사람만 속절 없이 늙어(익어) 가는 군요 ㅎ
  • 척산 2021.09.08 20:48
    회장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또 일주일간 산악회 회원들을 이끌고 JMT 로 떠나신후 안부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생사확인 이라도 시켜주시니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두달전엔  회장님의 글을 읽고 큰마음 먹고 배낭을 꾸려 JMT를 걷고 Whitney 에 오르며 인생 최고의 눈호강을 했는데  이 article 도 저의 마음을 몹시 설레이게 하는군요, 곧 다녀오리라 다짐해 봅니다.  몹쓸 pandemic 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그래도 조심스레 산행은 하게되어 큰 기쁨이었는데 이번엔 산불로 인하여 California의 산길을 임시 닫는다 하니 참 실망이 크군요..사람이 기술을 뽐내며 바위를 부수고 길은 내어도 이럴땐 아무것도 할수가 없으니 그저 집사람에게 짜증만 부리게 되는군요. 원만한 부부생할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산에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거짓말 1도 안보태어 8년전에 비해서 회장님은 전혀 더 익지(?) 않으셨읍니다. 곧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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