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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명이 산행에 나섰다.

카풀로 도착한 맹커플렛 주차장에는 성큼 겨울이 와 있다.

 

다음 주 비 예보가 있는데 발디에는 첫 눈이 내릴 확률이 높다.

오는 겨울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막을 수 없다면 목 빼어 기다리는 게 슬기로운 산 생각.

 

샌안토니오 폭포 물이 많이 줄어 있는 것도 겨울을 예비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태양이 뜨자 금방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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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정말 파랗다.

도심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심연 같은 파란하늘.

 

가끔은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작은 깨우침과 여유도 산이 주는 선물.

 

우리 산악회는 유독 발디를 좋아한다.

해마다 시산제를 발디에서 지낸 게 벌써 수 십년.

 

발디 산신령이 영험해서 인지 여태 무사고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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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헛에서 숙박한 팀이 있었던 모양.

우리 산악회도 스키헛에서 하루 묵은 적이 있었다.

 

밤 새 소나무를 휩쓸고 가는 바람소리가 흡사 바닷가에서 들었던 파도와 소리 같았다.

 

정상 가까이 이르자 김공룡회원이 내려온다.

미리 출발해서 정상을 올라 우리를 기다렸는데 너무 추워 하산을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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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정상엔 겨울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곧 설국으로 변할 발디봉은 올 해 마지막인 굿바이 산행이다.

 

내년 1월 설국으로 바뀐 발디 첫 신년 산행이 우리 산악회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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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을 마쳤는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올 겨울 발디봉에선 3명이 조난사를 했다.

 

그중엔 유명한 영화배우도 있어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많은 양의 보도를 쏟아 내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 산악인 정진택씨 조난 소식이 알려졌다.

 

당연히 모든 보도 매체에서 난리.

놀랍게도 설산 비박 2틀을 견디고 정진택씨는 구조되었다.

과연 기적적인 일이다.

 

하산해서 트레일 입구에서 그분을 만나 것.

뒤풀이는 발디 레스토랑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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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환한 정진택씨는 거듭났으므로 1살 돌잔치,

생일을 맞은 키 큰 회원은 생일잔치.

 

산이 맺어 준 인연은 그저 얼굴만 봐도 즐거운 법.

 

 

뻐근한 발디 아듀 산행도 행복했지만, 건강한 회원들 얼굴 마주하는 것도 큰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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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산악인 기적의 생환] 눈보라 속 58시간 비박…핫팩 4개로 버텼다

신영철
  • 입력 2023.04.10 07:20
  •  
  • 수정 2023.04.13 10:02
   
 

LA 인근 발디봉(3,308m) 폭설로 조난 후 구조된 재미 산악인 정진택씨

재미대한산악연맹에서 주최한 생환 환영회에 참석한 정진택씨.
재미대한산악연맹에서 주최한 생환 환영회에 참석한 정진택씨.

재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30년 만의 큰 폭설이 내린 미국 LA 인근 시에라네바다산맥에서 조난된 재미교포 산악인 정진택씨가 조난 58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것.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돌아온 75세 생존자를 LA에 거주하는 한국 산악인 신영철 필자가 만났다. -편집자  

지난 2월 22일 LA 한인타운에서 재미대한산악연맹(회장 오석환)이 주관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1월 22일 마운틴 발디(3,308m)에서 조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 온 정진택(75)씨를 초대한 환영 자리였다. 

그는 체감온도 영하 30℃를 넘나드는 폭풍설 속에서 실종. 눈 속에서 2일간 비박 후 58시간 만에 살아 돌아온 기적의 주인공이다. 코끝,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까맣게 변질된 동상을 입은 정진택씨를 만나 처절했던 생환 과정을 들었다. 월간<산> 2월호 ‘신영철 산 이야기’에서 썼던 것처럼, 같은 시기에 발디봉 정상에서 필자도 똑같은 위험을 맞았다. 그렇기에 감정이입이 남달랐다. 

정씨는 종이에 발디봉 등반 루트를 그려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LA의 북한산’이라는 별칭답게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발디봉. 그만큼 겨울산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위험이 상존하는 산이기도 하다. 이틀 밤의 눈 속 비박과 길을 잃고 낭떠러지 계곡을 헤맨 사실적인 증언들. 그 산을 잘 알기에 ‘정말, 이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올랐던 루트는, 겨울에만 올라갈 수 있는 ‘발디볼’이란 직등 루트입니다. 출발했을 때 강풍에 눈보라가 심했지만, 그동안 다섯 번인가 그 루트로 오른 경험이 있어 강행했지요.”

30년 만의 폭설이 내린 LA 인근 발디봉(3,308m). 사고 당일 눈보라가 심해 시야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정씨가 직등으로 오른 설벽은 경사각이 평균 40° 정도 된다.
30년 만의 폭설이 내린 LA 인근 발디봉(3,308m). 사고 당일 눈보라가 심해 시야가 극도로 좋지 않았다. 정씨가 직등으로 오른 설벽은 경사각이 평균 40° 정도 된다.

‘발디볼’ 루트란 정상부터 쓸려 내려온 경사각 40°쯤 되는 600m 정도의 설벽을 말한다. 추락사가 잦은 곳인데 이번에도 2명이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일 정씨는 샌안토니오 폭포의 등산로 입구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차경석 북미산악회 전 회장과 다른 일행 한 명이었다. 그들은 스키장 리프트를 타고 노치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정씨는 설벽을 직등한 후 백본 트레일을 따라 스키장 커피숍으로 내려 갈 예정이었다. 

“오전 8시 30분쯤 설벽에 도착해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그리벨 12발짜리 크램폰과 피켈을 지참했지요. 등반 시작이 좀 늦은 감은 있었으나 자주 온 곳이라 걱정은 없었습니다. 내가 길을 잃을 것이라고는,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설벽은 강추위로 군데군데 청빙으로 바뀐 상황. 눈보라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크램폰 발톱도 먹히지 않는 얼음을 피해 조심스레 움직였다. 발을 뗄 때마다 눈 밑의 얼음을 확인하느라 운행이 늦어졌다. 오전 11시경 정씨는 기어이 정상 능선에 올라섰다. 

마라톤 풀코스 100번 완주한 체력

눈보라는 더 심해지고 설편이 비수처럼 날아 다녔다. 아래위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 완전한 화이트아웃 상황. 일행과의 약속 장소로 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눈에 익은 대표적 루트인 대피소 방향이 낫겠다 싶어, 방향을 틀어 하산을 서둘렀다. 

“시속 80km가 넘는 눈보라가 불고 도저히 내려갈 방법이 없더라고요. 세상이 온통 하얀색 속에서 마침내 길을 잃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어요. 그래도 본능적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려갈수록 가팔라지더군요. 이대로 내려가면 추락해 죽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는 이미 해넘이가 시작된 오후 4시경. 정씨는 해가 있을 때 비박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신의 한 수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가 내려 선 곳은 등산로의 반대쪽인 ‘샌안토니오 폭포’ 계곡이었다. 

이 폭포골은 내려갈수록 직벽으로 이루어진 험악한 골짜기. 만약 정씨가 하산을 고집했다면 추락으로 상황은 종료되었을 것이다. 얼음으로 도배된 이곳에서의 조난은 구조대도 시신 수습하는 데 애를 먹는 곳. 

“가파른 비탈에 소나무 두 그루가 달라붙어 있었어요. 그 줄기 아래쪽 눈을 다지고 배낭을 깔고 앉았습니다. 우모복과 아래 위 오버트라우저를 입었습니다. 곧 어두워졌고 헤드램프를 켜 머리에 쓴 모자에 달았어요. 움직이다 보니 헤드램프가 나뭇가지에 걸려 벗겨졌습니다. 쏜살같이 추락하는 게 보였습니다. 까마득한 아래에서 불빛이 보이더군요. 다행히 여분의 헤드램프가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정진택씨는 마라톤 풀코스를 100번 넘게 완주한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물론 산악마라톤도 즐겨 했다. 정씨를 처음 만났던 곳은 작년의 재미산악연맹부설 등산학교에서였다. 

미국의 주요 TV 방송과 신문에 기적적인 정진택씨의 생환 소식이 속보로 보도되었다.
미국의 주요 TV 방송과 신문에 기적적인 정진택씨의 생환 소식이 속보로 보도되었다.

청주가 고향인 정씨는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자인 고상돈 대원과 고등학교 동기생이라 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1번 학생으로 손주뻘 되는 아이들과 클라이밍 교육을 받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산행경력은 많지만 클라이밍은 익숙하지 않아 배우려 입교했다는 말.

“등산 준비는 좀 철저히 하는 편입니다. 배낭 속에는 여분의 옷과 물과 간식이 있었지요. 핫팩 4개와 에너지 젤과 바도 있었고요.”

비벼주면 몇 시간 동안 뜨거워지는 핫팩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바람은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핫팩을 넣으려 장갑을 벗다가 그만 놓쳤다. 장갑 역시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설상가상 얼음도끼 피켈도 추락해 버렸다. 또 다른 헤드램프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정씨는 무릎을 끌어안고 구부린 채 지옥 같은 어둔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파워젤을 하나 입안에 넣었는데 먹을 수 없더라고요. 바람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불어댔어요. 눈은 그쳤지만 강풍에 눈 표면의 설편들이 날아왔습니다. 금방 내 등에 10cm가 쌓일 정도였어요.”

그때쯤 만남의 장소에서 기다리던 차경석씨는, 나타나지 않는 정씨의 사고를 예감했다. 레인저에게 상황 설명과 실종 신고를 했다. 즉시 미국의 주류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발디봉에서의 조난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기록적인 사고 때문이다. 

이미 한국인 재럿 최씨(43)와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줄리언 샌즈 등 3명이 최근 목숨을 잃었던 상황. 관할 샌버나디노 셰리프국은 한 달도 안 된 짧은 기간 동안 이 산에서 등산객 15명을 구조했다. 이로 인해 주류 언론이 정씨의 실종 보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비몽사몽간에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때도 지독한 바람은 멈추지 않더군요. 등산로를 찾으려 했으나 온통 백색의 화이트아웃 세상에서 원근도 구별되지 않았고요. 다행히 바람이 좀 잠잠해져 다시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사각이 얼마나 급한지 내려가다 장갑 한 짝과 등산 스틱 한 개가 또 추락해 버렸습니다. 그게 이 손이 동상에 걸린 원인이지요.”

두 번째 죽음의 비박

정진택씨의 오른손 손가락은 그 끝이 모두 까맣게 변했다. 전형적인 동상의 흔적. 양말을 벗은 발가락도 역시 까맣게 변해 있다. 살려면 추락의 공포를 이겨내고, 길 없는 길을 만들어 하산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 

그때 환청처럼 차량의 소음이 들렸다. 행동을 멈추고 귀를 세우니 분명히 차의 소음이었다. 화이트아웃으로 방향 감각은 없으나 이 산을 오를 때의 기억을 복기했다. ‘샌안토니오 폭포’ 근처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하산이 거의 끝났다는 고마운 징표.  

“등산로 입구 가까운 폭포라면 이제 살았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수십 미터의 직벽을 어떻게 맨 몸으로 내려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살아 내려 온 것도 운이 좋았는데, 얼어붙은 바위벽에서 그 행운이 계속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재미 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한 생환 황영 행사에서 조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정진택씨.
재미 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한 생환 황영 행사에서 조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정진택씨.

정씨는 바위벽 하산을 포기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앞에 보이는 능선만 올라서면 그 너머에 완만한 흐름이 있을 것 같았다. 오르는 일은 볼더링처럼 위태로운 바위타기였다. 한 발을 딛고 옆으로 트래버스해서 다시 한 발 오르기를 반복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능선은 멀기만 했다. 찢기고 구르며 계곡을 건너고 눈앞 능선을 향해 악착스레 올랐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다시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산 아래 발을 구르며 기다리던 차경석씨도, 구조대도 철수했다. 

그때쯤 정씨는 또다시 밤을 보낼 장소를 찾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 비박처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때까지 먹은 건 에너지 바 한 개. 배낭에는 몇 개 더 있었으나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물도 떨어져 눈을 먹으며 갈증을 피했다. 다시 어둠속에 배낭을 깔고 앉았다. 손과 발엔 감각이 없었다. 그날은 폭풍이 끝났는지 별이 차갑게 반짝였다.  

큰 관심을 보인 미국 주류 언론 

“두 번째 밤을 보내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차 소리를 들었다는 안도감? 도로가 가깝다는 생각만으로 위안을 느꼈는지도 모르지요. 불안한 마음이 없어지고 평온한 기분이 되더군요. 물론 얼음처럼 추운 밤이었고 무릎에도 동상기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죽는다든지, 억울하다든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깜박 졸다 깨보니 날이 밝아 오고 있더군요.”

인터뷰 내내 곁에서 정진택씨 증언을 듣고 있던 차경석씨가 거들고 나선다.

“매일 구조현장으로 갔었습니다. 24시간이 지나고 50시간이 지나자, ‘정도사’도 이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씨가 험악해 헬기도 못 뜨는데, 그가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었지요. 구조대도 그런 의견이었습니다.”

정도사는 차경석씨가 붙여준 애칭이다. 정씨는 국선도를 20여 년간 수련하며 마음공부를 한 사람이었다. 등산학교에서 암벽공부를 한 것과 마음공부를 한 것도 생존에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정씨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환상방황,’ 즉 하이포서미아(저체온증)로 죽어가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탈진해서 혼미해진 정신과 오히려 포근하다고 착각하는 환상방황은, 당사자들은 모른다는 특징이 있다. 정씨 구조 과정은 LA의 모든 산악인에게 실시간 전해지고 있었다. 차씨 말처럼 50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정씨의 생존을 포기했다. 

“두 번째 밤을 보내고, 하나뿐인 등산 스틱에 의지해 목적한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그때,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저 멀리 산 아래 눈에 익은 아스팔트가 보이더군요. 아이스하우스 캐니언 들머리에서 발디 산행 들머리 중간 어디쯤일 겁니다. 도로를 목표로 내려가기 시작했지요.”

동상 걸린 손가락과 발가락은 조금씩 회복 중이었다.
동상 걸린 손가락과 발가락은 조금씩 회복 중이었다.

한 살로 환생한 정진택씨

그때가 오후 2시쯤이었다. 하이킹하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정씨가 도와달라고 소리치며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들도 반갑다는 듯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정씨의 절박한 손짓을 인사로 알고 그냥 가버린 것. 도로와 가까워지고 남녀 커플이 보였다. 그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경찰에게 연락해 달라고 고함을 치니 알았다는 표시를 해왔다. 

“1시간 뒤쯤 구조대가 올라오더군요. 구조대원은 안전벨트, 하네스를 내게 채우고 자신의 몸에 확보를 했어요.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주변에서 58시간 만에 구조된 거라고 하더군요. 그게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오후 5시쯤 구급차로 이송해 포모나밸리 병원에 입원시키더군요.”

정진석씨의 기적적인 생존과 구조 소식 역시, 주류 언론에서 속보로 다투어 보도가 이어졌다.  

정진택씨 손발에 동상이 심하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의 간호사 딸이 발 빠르게 나섰다. LA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정평이 난 동상전문병원으로 정씨를 이송한 것. 그것이 효과를 본 덕분인지 의사는 손가락, 발가락을 자르지 않고 정씨를 치료했다. 겹친 행운이었다. 

“오늘은 정진택 선배님이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그래서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하나만 켜겠습니다. 오늘 한 살이 된 정진택 선배님은 우리 후배들보다 더 오래 사실 겁니다.”

거의 죽었다 환생했으니 한 살이라는 오석환 재미산악연맹 회장의 덕담이 의미심장했다. 연맹이 준비한 선물도 있었다. 발디산에서 장비를 몽땅 잃은 정씨에게 새 등산장비를 마련해 준 것. 

그러나 웃고 있는 오석환 회장의 심경은 복잡했을 것이다. 정씨가 한 살로 환생한  그날, 시애틀 근교의 콜척 피크Colchuck Peak에서 큰 사고가 났다. 그 산에서 뉴욕의 한미산악회원 세 명이 눈사태로 사망했다. 한미산악회 역시 재미산악연맹의 가맹단체이고, 사망한 사람들은 오 회장이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사상 초유의 눈 폭탄을 맞은 캘리포니아의 산. 하얗게 흰 띠 두른 설산에서는 그렇게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있는 중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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