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Mount Wilson) 산행
오늘 비님이 오락가락 하는 산행엔 9명이 참여했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내렸던 비는 오늘도 가랑비입니다.
하지만 이 비님은 봄을 맞은 초목들에게 달고 단 ‘젖’이 되었을 겁니다.
산 아래부터 봄은 시작됩니다.
봄은 점점 산정을 향하여 진군하며 꽃들이 다투어 피워 낼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산행을 시작하자 큰 놈, 작은 놈, 무리진 놈, 홀로 핀 총천연색 꽃 들.
까막눈이 알아 볼 수 있는 게 노란 유채꽃뿐이군요.
평소와는 다른 계곡 물소리가 우렁찹니다.
계곡엔 많은 폭포들이 생겨났고 하얀 포말을 뿌리며 거세게 흐릅니다.
트레일 주변은 온통 초록세상입니다.
들여 마시는 공기에 초록물감이 있다면 콧구멍도 초록물 들 거 같네요.
예전엔 졸졸 흐르던 계곡이 세찬 물로 건너기가 쉽지 않습니다.
습기 먹은 트레일을 이어 가는 게 즐거운 노동입니다.
오늘은 약 4800피트의 고도차가 있는 왕복 약 15마일입니다.
발디 보다 고도차가 더 크고 또 길이도 훨씬 깁니다.
하지만 햇볕도 없고 초록색 세상길이니 축복 받은 산행입니다.
계곡 물소리를 동무삼아 오차드 캠프에 도착했으니 반 쯤 온 셈이지요.
이곳부터는 급하게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드디어 우리산악회에서만 통용되는 ‘벤치’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이름은 만자니타 리지Manzanita Ridge입니다.
여기부터는 눈이 조금씩 보였고 가랑비는 우박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산 아래 꽃은 상기 일러 아직 피울 생각도 못 하고 있습니다.
소방도로에는 제법 깊은 눈이 보입니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준비한 스파이크 크램폰을 신을까 잠시 헷갈렸습니다.
그렇게 눈이 깊었고 정상 주차장으로 오르는 길이 제 각각이었습니다.
우리도 직등으로 메인 주차장 근처의 파빌리온,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맑은 날에는 로스앤젤레스 분지의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죠.
그런데 고도 차이를 일깨우려는 듯 눈보라로 바뀌었습니다.
산행을 시작할 때는 가랑비, 고도를 높이자 우박으로 변하더니 이젠 눈보라.
손이 곱아 밥이 초록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없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구절이 떠오르네요.
봄이 온 건 분명한데 봄 같지 않은 봄이라는 은유.
눈은 오지요, 길은 미끄럽지요, 갈 길은 아득하니 상황도 춘래불사춘입니다.
그렇다고 하산을 하지 않을 방법도 없습니다.
손이 시려 장갑을 꺼내 끼었습니다.
등산화가 젖어 물이 스며드는 모양입니다.
봄에 오는 춘설(春雪)의 낭만은커녕 춥습니다.
살려면 후딱 하산해야 합니다.
꺼이꺼이 다시 오차드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눈이라는 건 눈을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기온도 올라가 장갑도 벗었습니다.
계곡 물소리도 여전했고 또 초록세상이 보기 좋습니다.
불과 몇 시간 차이로 기쁨과 불만이 오가는 현상.
참 사람 마음 간사합니다.
공원에는 당번인 유진순회원께서 근사한 뒤풀이 음식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모두의 콧구멍, 아니지... 목구멍을 호강시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