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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 영철

 

 

끝없이 이어진 고개마다 새로운 풍경 몸은 힘들어도 눈은 호강
트레일 코스 최대 고도 포레스터 고갯길은 황량한 풍경의 연속
시에라 산속의 밤엔 불현듯 짜증나는 일상이 그리워진다
       
존 뮤어 트레일(JMT)은 끝없이 이어진 211마일 산길이다. 2020년 8월, 그 중간쯤 되는 프로랜스 호수에서부터 휘트니포털까지 남쪽 산행에 나섰다. 유경영회원이 리더였고 케이트 민 회원과 신영철회장이 대원이었다. 그동안 정기산행에서 제법 힘든 훈련을 해왔다. 신영철회장은 키어사지 패스를 통하여 본대와 합류하기로 했다.

물소리 바람소리만 가득한 시에라네바다 산속을 걷다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트레일은 상념의 길이고 사색의 길이기도 하다. 시에라 산속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한 수레의 책을 읽는 것보다 좋다’고 존 뮤어는 자신의 책에서 말했다.

쉬지 않고 며칠을 걷고 텐트를 치면 짜증나기만 하던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코비드 때문인지 그 많던 외국인들은 거의 없고 미국인 트레커들은 많았다. 트레일에선 바로 위쪽이 정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곳에 도달하면 또 그 위쪽으로 길은 이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 지그재그 길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풍경은 마약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모퉁이를 돌면 또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라는 기대.

산과 개울과 호수는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몸은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눈은 천국이다. 그러므로 누구 말대로 ‘눈 천국 다리는 지옥’이라는 말은 맞다. 6박 7일째, 유경영 본대와 신영철회장이 약속한 대로 만났다. 이제 휘트니 포털까지 함께 할 것이다. 숲과 초원과 꽃길은 언제나 호수와 호수를 잇는 길이다.

드디어 포레스터 고개(Forester Pass)를 올랐다. 해발 4,023미터로 존 뮤어 트레일에서 가장 높은 고개다. 이 고개는 킹스 캐년 국립공원과 세코이아 국립공원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힘들게 올라 선 고개 양쪽은 깎아지른 절벽에 트레일을 걸어 놓은 듯 보인다. 수목한계선을 넘어선 이곳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마치 혹성탈출이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고개 마루 반대편으로 다시 우리가 거쳐야 할 호수가 햇살에 반짝인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한 번도 똑같은 풍경은 없다.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보면 때로는 무기력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발걸음일 때도 있지만 또 때로는 기쁨이고 환희에 젖는 시간이다. 트레일은 끝없이 걸어야하는 고행의 연속이지만 주변 풍경 속으로 녹아들며 행복한 느낌도 얻는다. 그동안 길에서 배운 공부일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건강한 땀을 흘리는 이 시간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고, 또 두렵지도 않다.

세코이아 국립공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바위산을 깎아 지그재그로 만든 가파른 트레일은 고도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이 깊은 산속 바위를 깨고 트레일을 만든 누군가의 고생이 고맙고 놀랍다. 산을 내려와 빅혼 고원 평원을 따라 멀리 눈 아래 보이는 푸른 숲으로 향했다. 숲이 있는 곳엔 언제나 물이 있다.

여름의 긴 해가 기울어 가는 늦은 오후 기타 호수를 만나 또 하루를 접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크릭 옆엔 많은 종주자들이 야영을 하고 있다. 말을 걸면 누구나 산처럼 좋은 사람들이다. 천막 세우는 곳마다 합법적 숙소이자 평생을 꿈꿔 온 그림같은 야영지.

이제 아침이면 휘트니 정상을 올랐다 포털로 하산 할 것이다. 마지막도 만만치 않은 거리다. 크릭 물소리와 바람소리만 가득한 시에라네바다 산속의 밤하늘엔 별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늘 사람과 부대껴야 하는 일상이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는데 이젠 그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이제 내일이면 그들을 만날 것이다.

이곳의 고도가 만 피트가 넘기에 모닥불은 피울 수 없다. 모닥불은 야영의 꽃이다. 나무를 하러 먼 곳을 헤맬 이유도 없다. 바로 곁에 쓰러진 세코이아가 지천이었으니까. 그 가지를 태울 때 마다 잣나무 향기가 났다. 그걸 못하는 게 못 내 아쉽다. 존 뮤어 트레일에서는 언제나 모닥불 중독자가 되었었으니까.

텐트 안에서 자장가를 듣는다. 크릭의 물소리다. 시에라 산속은 물이 흔했다. 시에라 산맥은 사막의 산이 아니라 물의 산맥이라 불러야 된다. 호수천지, 계곡천지, 물천지다. 따라서 옥의 티 같이 모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이상기온으로 온도가 낮아 그런지 모기가 없어 방충망 모자가 필요 없었다.

참 무던히도 많은 나라 산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여태 경험한 산들과 존 뮤어 트레일을 비교한다면 이곳은 종합 선물세트다. 누구나 와서 눈으로만 즐기라고 보석 상자를 통 째로 개봉해 놓은 곳이다. 종합 선물 속을 자고 깨면 걷는 행정.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저 고개 넘어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기대가 바로 환각제 역할이다.

이튿날 휘트니 정상을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 우리도 정점을 찍었다. 때로는 지쳤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발걸음이었지만 해냈다. 걸어 온 길을 돌아봤다. 아득하다. 우리가 걸어 온 시에라 산군은 그냥 서있는 게 아니다. 시퍼런 날을 세우듯 제 멋대로 삐죽삐죽 솟았다. 작두날처럼 예리한 능선은 차라리 선이다. 그 선을 따라 존 뮤어 산길은 사람과 산 사이를 이렇게 이어오고 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북 그으면 쭉- 찟어질 것 같은 푸른 하늘. 가짜 같다. 어떻게 그 흔한 구름 한 점 없는가. 그리고 이렇게 파란가. 실력 없는 사진작가가 포토샵으로 처리한 비현실적 그림 같은, 미국본토 최고봉 휘트니의 하늘.

그렇게 2020년 8월의 재미한인산악회 존 뮤어 트레일 남쪽 구간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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